꽃비 18

단편소설

by 수요일

단편소설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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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꽃비_18

모든 이야기엔 끝이 있다. 꽃도 그렇다. 흐드러지게, 피어날 땐 사랑도 넘치지만 추락했을 땐 발에 더럽혀지고 구정물에 떠다니다가 큰 비를 만나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도, 사랑도 꽃 지고 내린 비.

삐걱,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다시 나사가 풀렸는지 조금씩 삐걱거렸다. 꽃비가 현수가 씻고 있는 욕실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사람을 들여놓지 않겠다더니 그 마음을 먹게 한 꽃사슴이 또 저기에서 씻고 있다. 들어간지 한 시간, 아마 또 잠들었나보다. 지난 시간 자신의 행동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떠오른 건 분명 현수의 얼굴이었다. 고개를 흔들어 부인하고 거부했을 뿐 거부해도 그 그리움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샤워 물 트는 소리가 들리면서 꽃비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어? 그러고 보니 자고간다는 말도 안 했는데 마치 자고갈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피식피식 웃고 있는데 현수가 욕실문 뒤에서 불렀다.

꽃비야, 옷 줘.

아차, 부지런히 옷을 찾아 꺼냈다. 그날 입은 그 옷, 삶아서 햇살에 바짝 말렸던 옷이었다. 옷을 욕실 앞에 놓는데 꽃잎 하나가 속에서 날려 떨어졌다. 바싹 마른 꽃잎이었다. 주워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안 줘? 그냥 나간다?

아냐. 아냐 문 앞에 놔뒀어.

또 문이 벌컥 열릴까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역시나 문이 벌컥 열렸다. 현수가 침대 앞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현수야?

응?

대머리는 누구며 왜 쫓겨다녔는지, 사고는 얼마나 크게 당했는지. 집은 어딘지... 궁금한 게 무척 많았지만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사라질 것 같아서. 눈 앞에서 또 갑자기 사라질 것 같아서. 휴우... 꽃비가 가만히 숨을 내쉴 때 현수가 폰을 눈 앞에 내밀었다.

뭐? 충전? 알았어.

아니, 충전 아직 안 해도 돼. 번호 줘.

아... 그래.

생각하니 정말 번호조차 몰랐어. 알았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꽃비가 번호를 적어서 돌려줬다. 받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창을 열고 바깥을 보고 있었다. 가로등 때문에 밖은 꽤나 밝았다. 가로등이 늘어선 그곳은 꽃비의 유일한 호사인 전망 좋은 공원이었다.

꽃비야 와봐,

꽃비가 일어나 현수 곁에 섰다.

꽃비가 내려.

벚꽃잎들이 봄바람이 휘날릴 때마다 한 번씩 비처럼 떨어졌다. 가로등에, 달빛에 꽃비는 아름답고 숨막히게 지상으로 낙하해갔다.

아, 예쁘다.

꽃비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꽃비 너도 예뻐.

예쁘긴. 근데 너 춥니? 몸이 차.

아니,

그럼?

나 귀신이야.

악!

꽃비가 화들짝 놀라서 물러났다. 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농담이야.

아악 이 나쁜 놈! 너 죽을래?

아니, 너랑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서 농담한 거야.

현수야,

응?

여자가 이런 말 먼저 하면 안 되지만 그냥 할게.

응,

보고 싶었어.

응,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를 기다린 건 아니지만 뭔가가 아쉽다.

끝?

응? 뭐?

응 그 다음엔 아무 말도 없는 거?

아, 나도.

아 참 나, 괜히 말했네.

현수가 팔을 들어올렸다. 꽃비가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현수가 고개를 돌려서 팔을 더 올렸다. 쳇. 꽃비가 콧방귀를 끼고 팔 아래로 들어갔다. 현수가 그런 꽃비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꽃비야,

응?

나 여기서 살게 해줘.

어? 아, 그 그건... 응,

오케이,

두 사람이 꽃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았다. 현수가 고개를 돌려 꽃비의 볼에 뽀뽀했다. 꽃비가 가만히 웃고 현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다시 바람이 불어 꽃비를 날렸다. 내일은 비라도 내리려나보다. 달무리가 동그랗게 검은 하늘에 일어났다. 아름다운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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