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였다

소리를 보는 사람

by 수요일


귀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였다

1.
소란은 멀고 고요는 눈앞에 있다. 눈앞은 늘 어둡거나 잠잠한 소요, 소란은 고요 안에 숨었다가 들켜 소리를 지른다. 고함을 질러도 고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귀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소란을 멀리 두었다. 오랜 대화는 길지 않았고, 그 사이 안심이 되었다. 궁금한 것이 많지도 않아. 먼 소란이 다가와 귓가에 소리를 지른다. 그만해. 그만 됐어. 괜찮아. 괜찮아. 더 할 것도 없다.

2.
여자는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느라 사방을 훑어보며 동전이 떨어진 곳의 위치를 기억하려 애썼다. 애초에 그녀가 떨어뜨린 검은 비닐봉지는 묵직하긴 했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여자의 검은 비닐봉지에 무릎을 부딪친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는다고 악악거리고 그 곁을 지나던 여자가 무릎을 붙잡고 주저앉은 남자의 악다구니에 급히 119에 신고 하였다.

3.
동전이 쏟아지는 소리가 꽤 컸을 것이다. 남자가 무릎을 거머쥐고 죽는다고 악을 쓴 소리도 꽤 컸을 것이다. 그 소리에 다급하게 119를 부른 여자의 목소리도 컸을 것이고 큰 길건너 소방서에서 급히 달려온 119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꽤나 컸을 것이다. 그 소란들이 정점이 되어 술집에서 막걸리 마시던 사람들, 고기 구워 먹던 사람들,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던 부부까지 모두 튀어나왔지만 난 소란 속의 고요가 되어 모든 소리를 눈으로 듣고 있다.

4.
내 발밑에도 한두 개의 동전이 가로등에 삐끔 모습을 드러낸다. 밤이 깊어 가로등빛에 그 모든 동전을 줍기란 무척 어려움이 많을 것인데 소란에 튀어나온 사람들이 한 마음처럼 동전을 주워주기 시작하니 금세 흩어진 것들을 다시 모아 담을 수 있었다. 막걸리집 아줌마가 들고 나온 비닐봉지도 검은색이다. 거기 동전을 쏟으니 촤르르 소리가 들렸겠다. 그 소리는 망막을 통과해 뇌로 들려온다. 금액도 꽤 클 것이다. 내가 주워 준 동전들은 전부 오백원짜리였기 때문이다. 모두 오백원짜리일 것이다. 비닐봉지가 묵직하게 처진다. 무릎이 나갈만도 하다. 자판기 사장인가.

5.
소란이 지나가고 큰길 안쪽 오목한 공간은 다시 적막하다. 아니 적막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막걸리를 마시거나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 돌아갔고 부부도 국수를 먹으러 들어갔다. 비닐봉지를 든 여자가 오목한 공간을 지나 다른 큰 골목으로 빠져나가 이제 나 혼자 그곳에 서있었으므로 적막하게 보였을 것이다. 퇴근한 귀는 아침 출근 후에 돌아오겠지만,

6.
회사를 그만 둔 지 오래 된 난 출근할 곳이 없다. 출근할 곳이 없으니 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귀는 휴가를 내고 잠시 떠난 게 아니라 명퇴를 하고 영영 사라진 것이다. 아니 사라질 것이다. 난 소리를 듣는 귀가 떠남으로 소리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소리를 잘 보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집중 집중. 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다.

7.
귀는 퇴근하였고 난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큰길 가에 사는 나에게 자동차 오토바이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가 일으킨 소란은 내내 스트레스였다 이제 그로부터 자유로워졌는데도 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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