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이 아니야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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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이 끝나자 함선의 한복판으로부터 쐐기 같은 빛줄기가 별의 코어를 향해 죽창처럼 쏘아졌다. 아니 그건 까만 암흑을 일직선으로 꿰뚫는, 빛줄기보다는 불줄기였다.
불꽃놀이라면 거대한 빛의 페스티벌이고 소멸이라면 어마어마한 빛의 소멸이 아무 소리도 없이 새카만 공간을 가득 채웠다.
랜디의 광대뼈로 붉은 빛이 흩어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함선과 불줄기를 맞은 항성 사이의 거리가 충분하기에 그 폭발은 꿈인 듯 환상인 듯 지나가고 있었다.
랜디는 이룬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벌어진 구식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었다. 빛이 아닌 불의 축제. 이룬과 강변에 서서 바라본 송년 불꽃놀이는 밤하늘의 매캐한 화약연기와 냄새 사이로 찬란한 불꽃송이들을 수도 없이 암흑의 하늘로 흩뿌렸다. 오래전 구식무기인 화약을 복원하여 재현한 불의 축제라고 했다.
랜디의 고글에 백색섬광이 크게 원을 만들고 시야 가득 확산되다가 점차 사그라지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랜디가 시선을 창밖에 둔 채로 말했다.
- 몇 번째지.
- 기억 못하는 걸 억지로 떠올릴 필요는 없어요.
스으으으읏
미세한 기척이 트트트트틋 트트트트 하며 안전거리까지 물러난 함선을 기어코 건드리고 지나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 저기 저 별에 의지한 생명체가 있다면... 있겠지?
- 보고서에는 저 항성계 딸림별의 생명체는 모두 소멸된 상태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 그거야 뭐, 꾸미기 나름 아닌가.
- 우리가 거기까지 알 수는 없어요. 그저 지목된 별이 폭발하기 전에 소멸시키는 것뿐.
- 너무 매정해. 우리의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제 우리는 다 잊은 거 같아.
- 하지만 그냥 놔두면 인류가 또다시 큰 피해를 입어요.
- 인간이 살자고 거기 무엇인지 모를 생명을 온통 소멸시킨다고?
- 놔둬도 어차피 딸림별들은 저 별에 끌려들어가서 소멸됐을 거예요.
-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면 그렇게 될 때까지 놔둬야 하는 거 아닐까? 모르잖아. 만약 저 태양계의 어느 별에선 옛 지구처럼 마지막 탈출이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아니 어쩌면 막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있었을 거야. 그 가능성을 인간이 뭐라고 말살하는 걸까?
- 우리는, 신이 아니에요. 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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