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브레이커

아빠? 당신이 아빠라고요?

by 수요일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35


아페와 엘리, 크리스


- 끄응… 어쩔 생각이에요?


엘리가 묶인 손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자 포기하고 아페에게 말했다. 아페는 와인 잔을 들어 엘리에게 건배하듯 제스처를 건네고 한 모금 마셨다. 뭐라고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일까. 엘리는 도대체 왜 자기가 아페의 볼모가 되어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름 신 지구 연방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늘 그 자리에서 빛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고 멘탈까지 탈탈 털려가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었다. 언니.



100년의 동면을 거쳐온 지금 언니는 이미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연방 대학을 마치면 몇 년간 커뮤니티에 내려가 의무 근로를 마치고 자유로운 신분으로 거대 기업에 스카우트 되어 큰돈을 벌고 언니의 짐을 덜어주며 행복하게 살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릴없이 나이만 먹고 말았다.


지금이 몇 년이에요? 엘리의 말에 아페가 안세어봐서 모르겠는걸. 요즘은 도통 시간 가는 걸 모르겠단 말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 그들도 모두 죽일 셈인가요?

-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을 텐데

- 그거야 우리도 뭐 다를 바는 없지 않나요?


아페가 엘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사악한 기운이 가득 차서 보는 엘리를 섬뜩하게 만들어야 정상인데 그의 눈은 백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지적이고 고요하기만 할 뿐 악한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 그들만이 아닙니다.

- 그럼 또 누굴 죽일 건데요?

- 나는 이 지구라는 딸림별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을 부숴버릴 생각입니다.

- 터무니없어. 무슨 이익이 있다고 그런 짓을. 옛 지구 좋아하시니 잘 알겠지만 여긴 그 세 배나 되는 별이라고요. 게다가 여기 사는 생명체들은 그 수가 무려…

- 상관없어요.


네? 말이 막힌 엘리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중얼거릴 때 아페의 말이 이어졌다.


- 내 어머니는 그런 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어요.

- 그게 무슨?

- 어머니는 늘 고향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온갖 곤충들이 밤을 지새우며 짝을 찾는 이야기,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먹이를 유혹하는 나비와 바람에 자식들을 날려 번식을 꿈꾸는 나무들…

- 그곳이 어디예요?

- 여기서 멀지 않은 곳, 워프 터널 공사가 진행 중이던 어느 경로의 은하, 황금빛 뿔이 찬란하게 빛나던 NJ24825. 그 아름다운 별이 어느 날 들이닥친 신 지구 연방 함대에 의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답니다.

- 워프 터널 공사는 백 년도 아니지 이백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어떻게 가능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차라리 소(설을 쓰지)…

- 그게 시작이었어요. 터널 제작 비용을 아끼려고 이후에도 신 지구 연방의 함대는 워프 터널 공사 예정 경로에 존재하는 별들을 소멸시키고 다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 증거는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만.

- 에이, 그깟 돈 몇 푼에 일단 의회가 그런 일을 승인할 리가 없고요.

- 별 하나를 돌아서 터널을 만들려면 몇 배의 비용이 들지요. 아마 그들은 그 비용은 전부 받아내어 착복하고 모든 일을 비밀에 부쳤을 거 아니겠어요. 더구나 의원들이 뭘 알아요. 틀어박혀 문 앞의 일도 관심 없는 허수아비들. 이건 워프 터널 공사를 맡은 기업 연합에서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지. 인간의 욕심이 만든 비극…

- 그럼 그놈들을 찾아서 죽이면 되지 왜 전부…

- 지구인이 저지른 짓은 지구인이 갚아야지.


그 말을 하는 아페의 옆 모습은 어쩌면 허무해 보였다.


- 어머니는 어떻게 탈출을 했어요?

- 어머니는 군인이었어요. 통상적인 훈련 과정으로 별에서 잠시 나와 있다가 돌아가는 길에 별이 사라진 걸 알았다고 해요. 처음엔 엉뚱한 좌표에 도착한 줄 알고 당황했는데 세 번 네 번 좌표를 입력하고 다시 돌아와도 늘 그 자리였대요. 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거지.

- 그럼 어머니는 어떻게 당신을…

- 소형 비행정이었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우주 항로까지 갈 연료도 없었다고 해요. 그래도 관성으로라도 최대한 가보자는 마음에 최소한의 분사를 해가며 보름을 떠돌았답니다. 가진 식량이라고는 비상 구조용 에너지바가 몇 개뿐. 아껴 먹어도 7일 만에 식량이 떨어지고 연료가 사라진 비행정은 우주를 떠도는 돌멩이처럼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채 막막한 우주를 헤매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지기 직전 지나가던 화물 우주선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답니다. 그들은 지구 연방 소속이었고 어머니는 지구로 오게 되었죠.

- 아…


엘리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지구 연방의 모든 생명체를 멸살하려는 아페의 망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래도 엄마를 구한 건 지구인인데…


엘리가 미련이 남아 아페를 설득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컨트롤 데크로 들어왔다. 어? 누가?


아페가 일어나 엘리의 속박을 풀었다. 속박이 풀린 엘리가 손목을 주무를 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 아빠

- 그래 어서 와. 곧 올라가는 거지?

- 네. 가기 전에 뵈려고 왔어요.

- 인사해라. 크리스. 네 선배 엘리자베스님이야.

- 안녕하세요. 크리스입니다.

- 안녕하세요. 엘리라고 불러주세요.


(크리스?) 엘리가 당혹감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크리스가 인사를 꾸벅하고 방을 나갔다.


- 아아 아빠요? 당신에게 저렇게 어린 아들이 있어요? 백 년이나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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