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브레이커

시시각각 종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by 수요일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40


이룬, 재클린 그리고


이룬... 이룬


랜디가 이룬을 부르는 잠꼬대를 했다.


재클린에겐 이룬이 마치 거보란 듯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이룬 보다 랜디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재클린은 서글펐다. 이룬 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나 많은 시간 동안 재클린은 랜디를 보살펴 왔다. 아쉽다거나 마음이 아프다거나로 표현될 수 있었다면 시스템은 심각한 에러가 나고 함선은 자멸할 정도였을 것이다.


- 재클린,


랜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재클린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 이룬... 네… 이룬.

- 재클린, 이러지 말아요. 재클린은 제삼자라 냉정할 수 있겠지만 난 그렇지 못해요.

- 내가… 제삼자… 라구요?

- 그래요. 랜디는 재클린이 다루어야 할 파일럿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요.


- 난,


재클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 단 1초도 랜디를 다루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 재클린,

- 말해요. 이룬.

- 랜디를 앞세워 소멸시킨 생명체가 얼마라고 했죠?

- 아... 그건... 그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이룬도 이제 알잖아요. 이미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계획에서 휴머노이드의 프로세스는 뻔한…

- 나라면... 물었을 거예요. 나라면.

- 묻는다고요? 뭐가 해결되나요?

- 물어서 의견을 나눴을 거예요.

- 이룬, 의견을 나눈다고 해도,

- 최소한 랜디가 죄책감으로부터 1mm라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아니에요 이룬. 거부한다고 될 일이면 진작에…

- 변명하지 말아요. 재클린이 랜디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사랑은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거예요. 세상에 억지로 되는 거란 없어요. 재클린.

- 이룬, 나는

- 재클린,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은 스스로 갖추는 게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주어지는 거예요.

- 이룬... 난... 이룬.

- 이해해요. 재클린 마음.

- 어? 아, 이룬. 이룬. 어느새. 이룬.


서브 시스템 최종 업그레이드 완료.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메인 시스템을 교체하시겠습니까?


최종 휴머노이드 비율 70%를 알리는 시그널이 소리 없이 반짝였다. 재클린의 탄식이 주위를 어둡게 만들었다. 재클린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순간 모든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탄식 같은 부팅소리와 함께 재클린이 이룬의 시스템으로 편입되었다. 주도권이 이룬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메인 시스템이 된 이룬이 지난 영상과 기록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동안 재클린은 멍하게 랜디를 바라보았다. 랜디는 재클린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마치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자는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빠른 속도로 기록을 체크하던 이룬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멈췄다.


- 재클린, 이게 뭐예요?


묵묵하던 재클린의 입이 열렸다.


- 내 아버지는,

- 재클린, 다음 좌표가 없어요. 다음 행선지가 없는 거 알았어요?

- 표현하지 않는 뜨거움. 드러내지 않는 슬픔. 꿈 없는 미래, 사랑 아닌 가족... 희망 앞의 좌절. 최선과 최악, 내 아버지는.

- 재클린! 이봐요. 재클린. 정신 차려!


재클린이 대답 없이 혼잣말을 계속하자 이룬이 매뉴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눈 깜박할 새 매뉴얼을 읽어 들인 이룬이 비명을 질렀다.


- 재클린!


이룬이 날카롭게 재클린을 불렀지만, 재클린은 여전히 혼잣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 아버지보다 오래 살기로 했어. 약속했어요.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을까. 확인해야 해. 재클린이 인접한 통신망을 찾습니다.


180, 179, 178, 177…,


그 사이 함선에서는 위기 시에 울리는 긴급 알람 소리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함선의 마지막이 시시각각 다가서고 있었다. 메인 컴퓨터가 컨트롤할 수 없는 히든 시스템에 프로그래밍 된 그대로,


함선은 컨트롤 데크에서 먼 곳부터 차례로 폐쇄되기 시작했다. 녹음된 음성이 숫자를 거꾸로 세며 위험을 경고했다. 파멸이었다. 이룬이 아무리 메인 시스템으로 전환 되었다고 해도 히든 시스템에 프로그래밍 된 명령은 컨트롤이 불가능했다.


- 재클린!


그들은 갤럭시 브레이커의 귀환을 원치 않았다. 기업 연합이 주도하여 퇴행 항성을 소멸시키고 안전한 우주 항로를 개설하는 프로젝트는 의회의 동의 없이 실행되었으며 연방 시민들의 토론에서 절대 불가하다는 공론이 형성되었기에 다수의 동의를 구할 수도 없었다.


별의 소멸, 무수한 딸림별 생명체의 말살 같은 잔혹하고 무도한 일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대체 그런 일을 누가 동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워프 터널의 운영을 무기한 중단하고 다른 대책을 찾자는 말은 신 지구 연방의 자본가들이 들을 때 정신 나간 소리였다.


교류 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일에는 어마어마한 자금과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긴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기업 연합 측에서는 모두 101대의 갤럭시 브레이커 함선을 출항시키기를 원했다. 프로젝트는 10년의 준비 끝에 막 이루어지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교류와 네트워크가 중단된다는 것은 연방의 별들이 서로 고립된다는 걸 의미했다. 연방 행성 간의 고립은 곧 연방의 해체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일부 권력자와 기업 연합 사이에 가동 시한이 한정된 극비 프로젝트가 수립되었다. 시한부 프로젝트이다 보니 예방 차원에서 아직 소멸의 길에 들어서지 않은 어린 항성들도 미리 치운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프로젝트에 포함되었다.


그것은 딸림별 생명체들의 수많은 가능성까지도 완전히 말살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옛 지구의 마지막처럼 그들은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갤럭시 브레이커의 함선들은 각각 맡은 영역에서 프로젝트 수행이 완료되면 히든 시스템이 모든 걸 장악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그들이 소멸시킨 별들처럼 그들도 결국 예정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단지 랜디의 함선은 예상치 못하게 이룬이라는 서브 컴퓨터가 메인 컴퓨터로 전환되면서 메인 시스템이 컨트롤 가능한 영역이 일부라도 남아있게 된 것이다. 시스템 에러.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했는데 시간은 늘 가장 필요할 때 가장 부족하다.


- 재클린, 이게 무슨,


이룬이 마침내 모든 시도를 포기하고 재클린을 보았다. 아무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재클린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 아버지보다 오래 살기로 했어요.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재클린이 인접 통신망을 찾고 있습니다.

- 아, 재클린, 재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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