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브레이커

나중에라니… 나중이 있을까

by 수요일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이룬, 랜디 그리고 재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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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경광등이 번쩍이는 실내가 다가올 마지막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룬이 랜디를 깨웠다.


- 랜디 일어나요. 랜디, 래~앤디. 일어나요. 어서. 랜디!

- 재클린, 왜 또 이룬을 흉내 내는 거야.


랜디가 머리를 흔들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수면 가스의 영향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재클린, 커피 마시자.

- 랜디, 지금 커피보다 급한 일이 있어요. 랜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조금씩 눈이 열리고 귀가 뜨인다. 온통 붉은 빛깔의 회오리가 물결치듯 주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지잉지잉 거리는 경고음도, 시간을 헤아리는 목소리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무슨 일이지?

- 랜디 함선이 폐쇄되고 있어요. 시스템이 말을 안 들어요.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아무래도... 자폭 명령 같아요. 재클린도... 이상해졌어요.

- 자폭?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네가 재클린이잖아?

- 랜디 그 이야기는 나중에, 아... 나중이라니.


나중이라니... 이룬은 할 말을 잊었다. 나중이라는 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이란 사실을, 왜 갤럭시 브레이커의 휴머노이드가 되었는지를... 랜디에게 이야기해 줄 시간은 이제 없었다. 랜디의 뒤를 따라온 그 이유, 끝까지 함께 있고 싶어서. 그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있음으로. 몸을 버린 이유를.


- 재클린, 이 상황을 설명해 봐.

- 랜디, 재클린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 재클린, 장난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재클린?


시스템 에러로 반복적인 중얼거림을 계속하던 재클린이 기적처럼 랜디의 부름에 응답했다


.- 랜디?

- 그래 재클린, 무슨 일이냐고.

- 아버지를 찾고 있어요. 랜디.

- 아버지?

- 아버지, 표현하지 않는 뜨거움. 드러내지 않는 슬픔. 꿈 없는 미래, 사랑 아닌 가족... 희망 앞의 좌절. 최선과 최악,

- 재클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일단 이 상황을 정리해.

- 랜디, 여길 벗어나야 해요. 어서!


이룬이 랜디에게 소용없으니 어서 탈출 준비를 하라고 소리쳤다. 랜디는 두 목소리가 확실히 다름을 깨달았다. 한목소리에서 랜디는 그리움 기다림 슬픔과 사랑을 들었다.


- 누구?

- 랜디, 누군지는 알 것 없어요. 어서 벗어나야 해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이 함선은 곧 폭발해요.


이룬은 랜디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차라리 모르고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 랜디, 착륙선을 타요. 보급기지로 돌아가요. 어서. 서둘러요

이룬이 도크를 열고 로봇을 움직여 랜디를 강제로 착륙선으로 밀어 넣었다. 경고음은 이제 남은 시간이 불과 10초임을 알리고 있었다.


- 재클린이 근접 통신망을 찾고 있습니다. 재클린이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재클린이 근접 통신망을,


아... 이룬이 깊은 탄식과 함께 착륙선을 모선으로부터 배출했다. 모니터에는 어리둥절한 채 캡슐 속에서 모선 쪽을 보는 랜디의 얼굴이 보였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이룬에겐 눈물을 만들 가슴도, 눈물을 퍼 올릴 심장도, 그 눈물을 흘려줄 눈도 없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이룬에게서 안녕, 이라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안녕, 랜디. 나의 랜디…


캡슐 속에서 모선을 바라보던 랜디의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렸다. 긴박한 상황에서 탈출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마치 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아련하지만 따뜻한, 이건 뭐지... 라고 생각하던 랜디에게 자신을 착륙선으로 밀어 넣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 랜디, 래~앤디 늦었어요. 어서 일어나. 응? 어서 일어나요. 랜디!


아, 또 재클린이? 아니야 재클린이 아니야. 랜디는 일부러 그 이름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캡슐의 팔이 착륙선 벽을 쳤다.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캡슐의 얼굴 부분이 하얗게 젖어간다. 캡슐에 달린 헬멧을 벗었다. 눈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속이 타올랐다.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입술을 악물었다. 아니 혀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름. 그 이름을 악물었다.

랜디의 눈이 모선으로 향했다. 모선이 소리 없는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폭발하고 있었다. 그 잔해가 탈출선보다 앞서서 보급기지의 땅으로 낙하를 시작했다. 마치 길 안내라도 하는 것처럼.

트트트트트트 트트트트틋, 선체를 스치는 모선의 잔해들에서 수없이 사라져갔던 빛나는 별들과 그 딸림별에서 말살된 생명체들의 마지막 인사가 들리는 듯했다. 랜디의 손이 창을 스치는 잔해를 어루만졌다.


아... 아... 나의…나의


마지막 그 이름이 입술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잠겨 착륙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랜디의 고개가 숙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고개를 가눌 수조차 없었다.


이룬…


그때 마지막으로 컨트롤 데크가 폭발하는 모선의 한 귀퉁이에서 반짝하며 또 하나의 탈출선이 배출되었다. 랜디의 착륙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작은 선체는 랜디의 뒤를 따라 보급기지가 있던 별로 유성처럼 끝없이 낙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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