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브레이커 42

그렇다면 내가 네 아빠가 된다.

by 수요일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랜디, 이룬, 재클린 그리고 크리스



42


- 여긴 어디죠?


깨어난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신체를 고정했던 장치가 풀리자 여자가 앞으로 픽 쓰러졌다. 랜디가 그 몸을 받쳐 의자에 앉혔다. 랜디의 얼굴을 본 여자의 눈이 동그래지며 눈물을 흘렸다.


- 랜디?


랜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맞아 나 랜디야. 백 년 만에 만났는데 왜 울어. 이제 괜찮아.

- 아 당신이군요. 랜디. 보급기지 탈출에 성공했군요. 잘됐어요. 정말 잘 됐어.

랜디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를 토닥여주었다. 여자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 우는 거랍니다. 랜디. 여자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백 년 만의 콘택트.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여자가 다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엘리와 에밀, 랜디… 그리고…


- 그분은요?


랜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엘리나 에밀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다른 캡슐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캡슐에 다가간 그 여자가 캡슐에 있는 사람을 보며 아… 하는 침음성을 냈다.


- 이분이… 그 사람이군요.


컨트롤 룸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엘리가 돌아보니 크리스가 룸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잠시 상황 파악을 하려는 듯 둘러보는 게 보였다. 순간 엘리는 랜디를 한 번 보고 크리스를 또 보며 역시! 그랬어! 라고 중얼거렸다.


뭐가 그래요?


에밀이 그 작은 소리를 듣고 엘리에게 말했다. 엘리는 이 순간 번뜩이는 예감이 맞았음을 느꼈다. 처음 자신이 크리스토퍼라고 소개했던 랜디가 마치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라고 느꼈다. 그게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크리스가 들어오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다.


- 저 사람 얼굴을 봐요.


엘리의 말에 에밀이 크리스를 돌아보았다. 잠시 얼굴 모습을 익히는가 했더니 아! 하며 랜디를 보았다. 랜디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 아빠는 어딜 갔죠?


크리스가 모르겠는 상황은 집어치우고 선배라고 소개한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가 아빠는… 이라고 말할 때 비로소 랜디가 크리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 저 황금빛 눈동자는 마치 보스를 보는 것 같군요. 엘리 저 사람의 아빠가 누군데요?

- 아, 저 사람은 크리스토퍼라고 하고 제 연방 대학 후배라고 들었어요. 아빠는…


아빠는 이라고 하며 랜디를 슬쩍 본 엘리가 말했다.


- 아까 달아난 아페가 아빠라고 하네요.

- 아까 그 남자요? 닮은 데라고는 1도 없는데?


에밀도 랜디를 슬쩍 보고 말했다.


- 아빠가 달아나다니요? 당신들은 누군데 그런 말을 합니까?


크리스가 격앙된 톤으로 말했다.


- 랜디, 이 사람 랜디와 닮은 얼굴인데 본 적 없어요?

-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아페의 아들인가요.

- 그렇다고 들었다는 거죠 이룬님 인스톨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아페가 저를 강제로 동면시키고 자신도 동면에 들었다가 깨어난 게 오늘 아침이었어요. 아페가 말하기를 자기의 아들도 자기처럼 동면을 시켰다고 했어요. 대신 조금 먼저 깨어나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오늘이에요.


크리스가 화가 나서 외쳤다.


- 강제라니요. 아빠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아빠를 함부로 말하면 아무리 선배라도 그냥 있지 않겠어요.


엘리가 그런 크리스에게 손가락을 흔들고 말을 이었다.


- 아페가 99명의 휴머노이드를 살해한 게. 그리고 동시에 갤럭시 브레이커 함선들은 모두 자폭했을 거라고도 말한 게 바로 오늘 아침.


살해라는 말에 크리스가 흠칫 놀랐다. 아빠는 늘 자신을 사랑했고 늘 자신의 삶을 이끌어 주었다. 아빠를 천인공노할 희대의 살인자로 매도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당신들!


크리스가 뭐라고 소리치려 할 때 엘리가 문득 손가락을 탁 튀기며 크리스에게 물었다.


- 아! 진짜 당신이 아페를 직접 본 게 언제죠?

- 그…그게 무슨 말입니까?

- 아빠를 얼마나 만나봤냐고요. 내 말이 어려워요?


크리스의 말문이 막혔다. 크리스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하자 동면 시스템에 익숙한 에밀이 나섰다.


- 아, 이제 알겠다. 그런 케이스는 동면 센터에서 흔한 일입니다.


에밀의 말에 크리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 아이가 성장하기 전에 어떤 이유로 동면에 든 부모는 자신들 없이 아이가 고아처럼 자라는 게 싫어서 아이도 같이 동면에 들게 하고 자신이 깨어나면서 아이도 같이 깨어나게끔 예약을 해둡니다. 그러면 백 년이 지나든 이백 년이 지나든 아이를 케어할 수 있으니까요.

-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저는 비록 아빠와 영상으로만 만났지만 스무 살이 되면 아빠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고요. 당신들은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고요.


그때 랜디가 크리스 앞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랜디는 크리스의 얼굴에서 그리움을 만났다. 엘리가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을 비교해보며 에밀에게 말했다.


- 크리스는 이룬의 아들이에요.


이룬이라는 말에 랜디가 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 이룬의 아이?

- 맞아요. 이룬님을 인스톨 하기 전에 출산을 도왔는데 크리스를 낳으면서 가수면을 스스로 풀어 모두를 놀라게 했었죠. 그리고 아이를 눈앞에 두고 크리스… 크리스… 라고 하고 실신했어요.


엘리의 말에 랜디가 다시 크리스를 보았다. 자신을 닮은 눈동자, 이룬의 머리색.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가 이룬을 꼭 닮은 얼굴.


- 그럼 내가… 네 아빠가 되는 것이다.


랜디의 말에 크리스가 랜디의 눈을 외면하고 말했다.


- 제 아빠는 아페님입니다.


그 말에 엘리가 혀를 찼다.


동면에서 갓 깨어난 여자는 한구석에 서서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감각을 익히려고 애썼다. 백 년을 육신 없이 정신만으로 산다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에밀이 문득 떠오른 기억을 들고 그 여자에게 갔다.


- 혹시…

- 네?

- 혹시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지 않으신가요?

- 언니가 있었어요. 이제는 없겠지만.


그녀가 처연한 음성으로 회상했다.


- 언니는 늘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나를 감싸며 대신 매를 맞았어요. 온몸에 멍이 들고 피가 튀어도 절대 물러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데려갔어요. 어디로 갔는지 왜 데려갔는지도 모르게... 헤어지고 말았어요.

- 어쩌면 언니를 아직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언니가 맞다면요. 언니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그녀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며 이름을 기억해냈다.


- 언니는… 언니는 언니 이름은 케이트. 케이트예요.

- 케이트 아이렌.

- 당신이 어떻게 알죠? 아이렌을?

- 케이트님은 제 할머니세요. 그리고 아직도 생존해 계십니다.


재클린. 재클린 아이렌이 에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 당신은 누구죠?

- 저는 에밀이라고 해요. 제 아버지는 마르코. 마르코 아이렌.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할머니의 성을 부여했어요. 저는 재클린님의 이름을 보며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아이렌은 흔한 성이 아니라서.


언니가 살아있고 눈앞의 남자가 손자뻘이라는 사실에 재클린의 마음이 북받쳤다. 고생하고 힘겹던 그 오랜 세월이 이제야 보상이 되려는가. 재클린이 두 팔을 벌려 에밀을 안았다. 에밀도 재클린 할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엘리가 크리스와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때 랜디가 재클린과 에밀에게 다가와 두 사람을 안아주며 말했다.


- 정말 잘 됐다. 재클린, 에밀.

- 이제 이룬님만 깨어나면…


에밀이 이룬의 캡슐 쪽을 보며 말을 줄였다. 랜디가 이룬에게 다가가 말했다.


- 이룬 눈을 떠 봐. 저기 이룬의 아이가 있어. 응? 이룬. 어서 일어나.


랜디가 이룬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 말했다.


- 이룬, 이룬. 어서 일어나. 잠은 깨려고 있는 거야. 이룬. 눈을 떠.



#갤럭시브레이커

#사랑이야기

#단편소설





작가의 이전글갤럭시 브레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