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크리스 주니어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44
크리스 그리고 크리스
엘리의 말을 들은 랜디가 이룬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이룬은 마치 짐을 덜어낸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이제 나 조금만 쉴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이룬, 조금 더 쉬어요. 내가 누군지 보여줄게요.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
크리스는 랜디의 말에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른 남자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크리스에게 아버지는 아페 뿐이었지만 아페는 지난 이십 년 동안 영상으로만 만났고 이 남자는 불과 몇 분이었지만 크리스에게 무척 큰 감흥을 주고 있었다.
- 엘리, 그 말은 지금 갤럭시 브레이커 함선 한 대가 이리로 향하고 있단 뜻이네요?
-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엘리가 랜디의 말에 동의하자 재클린이 안 돼! 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에밀이 그런 재클린을 안아주고 말했다.
- 재클린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보스가 해결할 거니까요.
에밀이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랜디를 보고 있었다. 크리스에겐 이 모든 것들이 생경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 엘리, 혹시 지금 가진 시스템으로 세 개의 달도 제어가 가능할까요?
- 네? 아,,, 뭐 한 번 해볼까요?
랜디의 질문에 대답 대신 반문을 던진 엘리지민 곧바로 브레인 디스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데이터가 엘리의 두뇌에 들어있었지만 세 개의 달은 그 규모의 방대함이나 운용의 복잡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 흠… 뭐가 이렇게 복잡해.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데.
엘리가 알다가도 모를 말들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동안 크리스는 생각의 한계에 부딪혀 헤매고 있었다.
영상에서 그렇게 따뜻하던 아빠가 지금 신 지구 연방을 부수러 온다고? 왜? 그런 짓을 왜 해? 그럼 나도 죽는데?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크리스와 다르게 엘리의 정보 처리 스피드는 눈으로 봐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랐다.
- 세 번째 달은 리어 부스트가 메인이고 두 번째는 사이드 부스트… 아, 저렇게 인력을 만들어서 조수 간만의 차를 만든다? 참 머리 잘 쓰네. 중력의 1/3은 간격 유지에 쓰고 나머지를…
엘리의 스터디 같은 중얼거림이 계속되자 랜디가 에밀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 에밀, 이곳에 잠들어 있는 크리토레스의 지구 연방 이사 16명과 그 조직을 깨워줘. 찾을 건 찾아야지.
- 네, 보스. 다만 손이 좀 필요합니다.
랜디가 크리스와 재클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지금은 두 사람이 에밀을 좀 도와줘.
재클린이 네. 대답하고 데크로 올라갔다. 에밀에 재클린에게 가상 키보드를 넘겨주고 20명의 명단을 넘겨주자 백 년 휴머노이드 실력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 오우, 브라보!
재클린의 경이적인 손놀림에 에밀이 놀라 찬사를 보내고 크리스를 보았다. 넌 안 와?
크리스가 '네, 네' 하며 올라가자 크리스에게도 가상 키보드를 주고 20명의 이름을 건네주었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체크한 크리스가 랜디에게 물었다.
- 지금 뭐 하는 거죠? 여기엔 아빠… 아페님의 직원들 이름이 꽤 보이는데요. 이 사람들이 왜 여기 22커뮤니티 동면 센터에서 잠들어 있을까요?
랜디가 할 말을 정리하기라도 하듯 크리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 틀린 것들을 바로잡는 중이다. 크리스 주니어.
랜디의 신중한 모습에 크리스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받은 명단과 센터의 동면 어드레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자신의 이름 뒤에 주니어가 붙자 뭔가 뿌듯한 느낌도 들었던 것 같았다. 막상 시작하자 크리스의 속도가 재클린에게 뒤지지 않았다. 에밀이나 랜디는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 역시…
에밀이 뜻 모를 말을 남기고 곧 자기 일에 돌입했다.
가상 키보드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실제로는 소리가 들릴 리 없었지만, 실내는 경쟁이라도 하듯 손을 움직이며 수만의 어드레스를 체크하는 모습이 옛 지구의 세계 대 전쟁 중 가동되었던 암호 해독 실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들이 22커뮤니티 센터에 다 모여있나요? 뭐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서치를 계속하며 크리스가 말했다.
- 설명해주도록 하지.
에밀이 입을 열었다.
#갤럭시브레이커
#단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