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룬을 죽인 거야
단편소설 갤럭시 브레이커
랜디, 보급 기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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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에 대항하기 위해 착륙선이 끊임없이 역추진했지만 워낙 긴박한 순간이었고 실제로 컨트롤을 도맡아 해주던 시스템이 작동 불능이 되면서 재클린도 이룬도 착륙선의 방향, 각도, 위치를 조정해주지 못해 거의 곤두박질치듯 떨어진 착륙선의 동체가 땅을 몇 바퀴나 구른 후에야 비로소 멈췄다.
게다가 모선의 잔해들이 끊임없이 착륙선을 때려 선체가 넝마 조각처럼 깨지고 찢어져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이 안에서 죽겠다 싶었던 랜디가 죽을힘을 다해 착륙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조금 멀어졌다 싶은 순간, 착륙선에 타면서 고정된 견인줄이 방해가 되고 있었다.
파슈우욱 콰콰쾅 쾅 피슈슈슈슈
신 지구 연방 주변에 산재한 은하계를 넘나드는 모선의 구조는 대부분 추진 장치와 대 항성 무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별을 폭파하는 만큼 폭발은 빠르지만, 범위가 넓었고 무기의 파워를 버티기 위해 최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물질로 만들어진 본체가 폭발하면서 그 파편은 보급기지가 있던 별 일부를 초토화할 정도로 사정없이 지면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때아닌 지옥을 맞이한 낯선 동물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랜디가 견인줄을 제거하려고 기를 썼지만, 처음부터 파일럿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견인줄은 아무리 힘을 써도 요지부동이었다. 랜디는 결국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고 떨어지는 파편들을 바라보는 랜디의 눈에 이제까지 떨어지던 파편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동체의 일부가 떨어져 내려오는 게 보였다.
- 이게 마지막이라도 좋아. 이룬과 함께했던 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어.
랜디가 눈을 감고 파편이 떨어져 모든 걸 날려버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랜디의 눈앞에 이룬과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퍼펑 퍼퍼퍼퍼펑 쿠콰콰 콰앙!
쏟아지던 파편들이 무성한 불꽃 축제를 벌이는 사이 그것들을 모두 잠재울 만큼의 어마어마한 불꽃이 사위를 가득 메우며 거대한 충격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크윽!
짧은 비명과 함께 랜디의 캡슐이 충격파에 수십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폭발의 여파로 견인줄이 달린 리니어 모터까지 터진 듯했다. 랜디의 캡슐이 너덜너덜해지며 등에도 팔다리에도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만큼이나 견뎌준 게 다행일 정도의 충격에 강타당한 후 결국 랜디가 캡슐에서 이탈되어 맨몸으로 어딘가에 날아가 떨어졌다. 끊긴 견인줄처럼 랜디도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뾰로로삐삐이이이! 까까까까아아
투둑 투두둑
대폭발에서 살아남은 새가 긴 울음을 남기고 어느 나뭇가지 아래로 스며들고 얼굴에 빗방울이 부딪치며 랜디가 깨어났다.
재클린이 이 보급 기지를 브리핑할 때 이 별에 내리는 비는 극산성으로 5분 이내에 피신하지 않으면 몸이 녹아들 것이라고 했다. 기절하고 얼마나 비를 맞았을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몇 걸음 걷던 랜디가 보급 기지가 가까이 있는 걸 보았다. 요행수로 보급 기지 가까운 곳에 내린 것인지 아니면 그 와중에도 미리 좌표를 설정해주고 탈출시킨 것인지 어느 쪽이든 랜디는 천신만고 끝에 살길을 찾은 셈이라 새삼 재클린과 미지의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보급 기지는 쾌적했다. 신 지구 연방과는 현저히 다른 외부의 기후에 대처할 수 있도록 꾸며진 기지는 은하를 횡단하는 파일럿들의 비상 대피소로 필요한 물품들이 정기적으로 교체되어 소중한 파일럿의 생명 유지에 기여하는 쉘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기지 안으로 들어온 랜디가 다시 기절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랜디가 눈을 떴다. 그가 있는 곳은 기지의 컨트롤 데크.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외부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통유리창 밖을 바라보듯 보이는 바깥세상은 한 마디로 아름다웠고 평온했다. 오직 이국적인 인상의 식물들만이 빗속에서 온전히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빗줄기에 맞으며 흔들렸을 뿐 살아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캡슐 안에 받쳐입는 우주복을 벗어 던진 랜디가 몸 상태를 체크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몸에 생긴 크고 작은 상처 치료를 위해 준비된 메디컬 캡슐에 들어가 누운 랜디가 잠시 상황 파악을 위해 생각에 잠겼다.
랜디의 몸 주변을 옅은 주황색 광선이 위아래로 오가며 스캔하자 나노봇들이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고 앰플을 투입해 진탕된 머리를 안정시켰다. 수혈을 위한 팩까지 등장하는 거로 봐서 랜디는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틀림없었다.
모선은 폭발하고 재클린과 또 한 사람의 휴머노이드는 그렇게 사라졌다. 생각하다가 그리움에 북받친 랜디가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다.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다. 억지로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 목소리는 분명히 이룬이었다. 이룬이 왜 갤럭시 브레이커 함선에 인스톨 되었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룬을 죽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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