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애겐 악인이더라도 가족에겐 천사겠지
갤럭시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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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마르코, 그리고
탐욕을 실현하는 인간들. 크리스토퍼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인간뿐이었다. 처음 몇 번 그런 자들의 농간에 휘둘려 명성을 잃기도 했지만, 해가 사라진다고 해가 아닐 수 없듯 크리스는 크리스였다.
마르코의 보고에 잠깐 생각을 정리하던 크리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마르코, 내가 부탁이 하나 있어.
-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못 할 일이 아니면 다 하죠.
마르코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다 사정이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 그뿐 아니었다. 중력장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어머니를 구해주었고 더구나 그런 어머니가 살기 편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크리스다. 크리스의 지원 덕분에 어머니는 중력장의 데미지를 해소하고 더불어 보다 건강한 신체로 바뀌어 80대인데도 40대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어머니에게 사용한 크리스의 아이디어는 무척 실험적인 발상으로 마르코 입장에서는 이래도 저래도 매한가지 결과, 즉 어머니를 여의게 될 바엔 차라리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에서 크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실험은 최고의 결과를 넘어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내게 되었다.
남들은 비싼 돈을 들여 동면 센터에 들어가 완치술이 개발될 때까지 잠들어 있지만, 마르코의 어머니는 불과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동면에 들었다.
특수 제작된 나노봇들이 반물질로 다운된 세포를 부양하여 원래의 몸은 물론 중력장의 영향력이 반감되면서 경이로운 활력을 얻게 된 것이었다. 슈퍼맨이 지구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행사하듯 마르코의 어머니는 굽은 노인들 틈에서 남다른 80대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결과를 임상까지 끌고 가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크리스는 마르코에게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는 어머니의 일을 함구할 것을 지시했다. 마르코가 안 따를 이유가 없었다. 때때로 보면 어머니는 자신조차 놀랄 만큼 젊어 보였고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으니.
-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마르코가 진심 어린 눈빛으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설사 죽으라고 해도 죽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마르코, 아이가 있지?
- 네. 이제 열 살이 되려는 중입니다.
- 아이와 가족들과 함께 동면에 들도록 해.
- 네? 제가 없으면 의장님은…
-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마르코. 내가 무슨 일을 당하면 마르코가 구해줘야 해.
마르코의 자세가 더욱 신중해졌다. 자신만도 아니고 가족들까지 동면에 들라니…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지시였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뜸을 들인 크리스가 말했다.
- 마르코, 내겐 마르코가 내 마지막 카드야.
무슨 말이냐는 마르코의 얼굴을 외면하고 크리스가 회의장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반대파들은 논리가 딸리자 결국 말도 안 되는 위협을 가했다. 그 말은 결국 어디 두고 보자였다.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할 말을 정리한 크리스가 마침내 생각이 끝난 듯 마르코를 보았다.
- 마르코, 저들은 반드시 부유 돔 프로젝트를 망치려고 들 거야.
크리스토퍼가 혐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마르코는 보스의 눈에서 처음 발견하는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계기로, 어느 쪽에서 이빨을 드러낼지가 걱정이에요.
-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자기만 잘살면 된다니 무척 충격이었어.
-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합니다만 이렇게 새로운 우주로 이주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 행동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 우주를 유랑하던 탈출 모선에서도 그들은 특별 대우를 바랐지.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예견되던 거야.
비서가 들어와 회담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하자 크리스토퍼가 일어나며 덧붙였다.
- 가족들 같이 동면하도록 준비해놨어. 나중에 깨어나서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서운하겠냐고 이 친구가 그러더라고.
마르코가 비서 클리앙을 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클리앙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나갔다.
- 인간이 다 사악한 건 아니겠지. 나에겐 사악하게 굴어도 자기 가족이나 지인에겐 또 좋은 사람일 수 있고.
마르코가 동의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준비되는 대로 바로 센터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토퍼가 그래. 하고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 만약 무슨 일이 생기거나 제가 필요하면 이곳으로 연락을 주세요. 제 아이를 먼저 깨어나도록 해서 준비를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마르코가 통신기를 건넸다. 통신기는 나노봇으로 만들어져 몸 안에 장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나노봇 주입기를 팔에 대자 하나의 나노봇이 연결 통로를 통해 몸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주입기를 정리하며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 아, 에밀이던가? 이제 열 살인데 벌써 연방 대학에 조기 입학할 거라며 소문이 자자한 천재 소년.
- 천재까지는 아닌 듯합니다만 어쨌든, 보스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겠습니다.
- 좋아. 그럼 우리는 한 세기 후에 만나도록 할까?
마르코가 나가고 곧 클리앙이 들어와 비행선이 준비됐다고 전했다.
크리스토퍼가 자동 설정된 목적지를 향해 1인용 비행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안내 음성이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비행선은 잠시 후 착륙했다. 크리토레스 주주이자 연방 재정 장관 아놀드의 저택은 옛 자구의 중세풍을 본떠 만든 거대한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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