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브레이커

이건 진짜로군.

by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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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가 활짝 웃는 목소리로 크리스토퍼에게 말했다.


- 멀리 가실 것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다 모였으니 바로 말씀해보시지요.


대부분의 주주가 찬성표를 던졌지만, 실세는 아니었다. 그들이 나누어 가진 주식이 이들이 가진 주식의 25%가 안 되었다. 신 지구 연방 직속 시민인 이들 16명이 개인으로 혹은 기업으로 거의 50%의 주식을 보유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놀드가 연방 정부의 재산으로 10%, 개인의 자산으로 10%의 주식을 보유하여 압도적인 보유량을 보이고 있었다. 크리토레스의 의장은 25%의 주식을 보유한 크리스토퍼 토레스였지만 실질적 주인 행세는 이들이 하는 셈이었다.


아놀드가 일어나 한쪽에 놓인 책상 서랍에서 패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패드가 켜지고 가상의 모니터가 열리자 그 위로 한 장의 서류가 떠올랐다.


- 서명하세요.

- 양도각서? 왜 이런 걸 쓰라는 거죠?

- 더 이상 의장님에게 크리토레스를 맡길 수 없다는 게 우리 뜻입니다. 금액은 부족하지 않게 책정했으니 의장님에게 아니 이제 전 의장이 됐군요. 미스터 토레스. 불리한 조건은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퍼가 피식 웃었다.


- 미안합니다만 아놀드 장관님, 대충 봐도 너무 싸게 잡으셨군요.

- 뭐라고요?


크리스토퍼가 늘어서 있는 주주들을 보고 손가락을 들어 숫자와 서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 이 각서에 책정된 액면가로 하면 여러분들이 크리토레스에 투자 금액은 전체 투자금의 1%밖에 안 될 텐데 여러분들은 모두 동의를 하셨네요? 이 서류가 후에 어떻게 쓰일지 알고들 그러셨을까?


그의 말에 곧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아놀드만이 비웃음을 버리지 않고 말했다.


- 의장 교체를 위해 한시적으로 크리토레스 주식의 액면가대로 책정한 것이니 특수한 상황일 뿐이오. 모두 염려하지 마세요.


아놀드의 말이 통했는지 주주들은 곧 진정을 되찾았다.


- 정말 그럴까요? 내가 사라지고 나면 이 서류가 다른 분들의 올가미가 되겠군요?

- 별걱정을 다 해주시니 우리 투자자들도 나름 행복하군요.


크리스토퍼가 핵심을 찌르며 이죽거리자 주주들이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지만 아놀드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사실이 그랬다. 우주 최대 기업 크리토레스의 어마어마한 배당을 주주가 아니라 상관도 없는 일반 시민에게 퍼주려는 크리스토퍼 의장을 제거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지분을 포기시키는 거였다.


그쪽에서 권력을 가진 아놀드는 그 힘을 이용하여 단지 협상을 위한 카드라며 1억 8천만 배 상승한 크리토레스의 주식을 처음 발행한 액면가로 처분하는데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하도록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압박용이라며 불안해하는 일부 주주들의 입을 막아버린 아놀드였다.


- 그래서 내가 사인을 안 하면 어쩌시려고 장관?


훼방을 놓으리라는 예측은 했지만, 기업을 통째로 강탈하는 방법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다.


아놀드 같은 인간도 가족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아버지일지 모른다고 이미 마르코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낭만적인 판단이었다.


- 아놀드 당신은 크리토레스를 독차지하려는 야망이 있었군. 하긴 연방 대통령보다는 크리토레스 의장이 되는 게 훠얼씬 그림이 좋지.


크리스토퍼가 이죽거리자 허허 웃던 아놀드가 손을 들어 크리스토퍼를 가리켰다.


- 잡아!


아놀드의 말이 끝나자 문밖에 대기하고 있었던 듯 사방에서 전투봇들이 들이닥쳤다.


…이건 진짜로군…


긴장한 크리스토퍼가 긴급으로 가드로봇을 호출했지만 아놀드의 비웃음 섞인 손가락질을 보고 포기했다. 그 손가락 끝에선 아놀드의 전투봇들에게 둘러싸여 파괴되는 가드로봇이 보였다.


- 내가 이곳에 온 걸 모르는 연방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 아 그 점은 염려 마시오. 이런 걸 준비했으니.


아놀드가 패드의 한 부분을 누르자 양도각서에 크리스토퍼의 서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써 크리스토퍼의 모든 기명 주식은 푼돈에 아놀드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른 투자자들은 그 모습에 오한이라도 온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라도 크리스토퍼처럼 모든 걸 빼앗기고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 나 크리토레스 현직 의장 크리스토퍼 토레스는 이 서명이 연방 정부 재정 장관 아놀드에 의해 날조된 위조임을 명백하게 밝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크리스토퍼가 당당히 어깨를 펴고 아놀드의 불법 위법한 행동에 대항하는 말을 남겼다. 사람 중엔 그런 크리스토퍼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감명받는 이도 적지 않았다.


…역시 크리스토퍼…

… 그, 크리스토퍼 토레스였지…

… 이거였어. 연방 최고의 인재…


하지만 그 말들은 아놀드의 다음 말에 꺼진 불꽃처럼 스러지고 말았다.


- 역시 명불허전.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안타깝소이다.


음모가 한층 짙어진 입꼬리에는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그는 패드를 눌러 다음 장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그 페이지 하단엔 이미 크리스토퍼의 서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그 사인은 일반적인 사인이 아니라 극비 프로젝트를 위한 내부 결제에 사용하는 것으로 검증된 측근들만이 알 수 있는 암호가 포함된 서명이었다.


- 이 서명을 유출한 자가 누구지?

- 궁금하신가?


아놀드가 웃으며 한쪽을 바라보자 그곳에 언제부터인가 한 사람이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있다가 천천히 크리스토퍼를 바라보았다.


- 이런 이런… 자네였군. 이건 아무리 나라도 짐작도 못 했어.


이 모든 것들은 결코 외부에서만 꾸밀 수 있은 것들이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토퍼가 바라보는 화면의 맨 위, 제목은 ‘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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