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브레이커

해피엔딩

by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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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집사가 새로운 술을 들고 와 아놀드에게 권하자 아놀드가 사양하며 크리스토퍼에게 보냈다. 집사가 권하는 술을 머금고 입속에서 한 바퀴 돌린 다음 말했다.


- 샤스 스플린이군. 슬픔이여 안녕…

- 그렇습니다. 미스터 토레스.


병의 라벨에는 난 천년을 산 사람보다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네. 라는 보들레르의 시, 스플린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고개를 끄덕이자 집사와 시종들이 다시 조금 전과 같이 둘러선 이들에게 잔을 건네고 술을 따랐다.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집사와 시종들의 움직임은 한결같아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 자, 모두 기쁘게 건배를 듭시다. 크리토레스의 미래를 위하여.


아놀드가 먼저 잔을 들며 건배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잔을 들어 건배했다. 크리스토퍼는 잔을 들고 잠시 바라보다가,


- 인 비노 베리타스


라고 중얼거리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아놀드가 그가 잔을 모두 비우자 곁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 모든 준비가 끝났군. 당신 차례가 왔어.


곁에 선 남자가 흘깃 크리스토퍼를 바라보고 짧게 헛기침을 했다. 크리스토퍼는 그 모습을 마주 보지 않고 창밖의 어느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저 ‘유서라…’ 라고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 유서, 나 크리스토퍼 토레스는,


남자가 다시 한번 크리스토퍼를 보고 담담하게 유서를 읽기 시작했다.


- 인간의 더욱 질 높은 삶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노력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중력 데미지를 줄여주는 부유 돔을 통해 그 꿈의 대부분을 이루어 냈다. 목표를 이룬 만큼 큰 허무가 앞으로의 나에게 또 다른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목표가 사라진 삶은 얼마나 허망한가.


남자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했다.


- 이제 나는 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 이 삶을 놓으려 한다. 나의 모든 재산은 나의 오랜 친구…


이때 크리스토퍼가 남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다른 모든 사람이 두 남자 사이를 흐르는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시선을 의식한 남자가 크리스토퍼를 마주 보며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크리스토퍼는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남자의 낭독을 듣고 있었다.


- 마르코 아이렌에 양도한다. 나 크리스토퍼 토레스는 이제 이 삶을 마감하려 하니 이 모든 것은 명백한 나의 결정임을 밝힌다.


실내에 가벼운 탄성이 일었다. 아놀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뼉을 치고 말했다.


- 좋아. 이제 쇼의 대미를 장식해 볼까 미스터 토레스? 준비됐으면 가져와.


아놀드의 말이 끝나자 집사가 뭔가를 들고 크리스토퍼에게 다가와 들고 온 것을 내밀었다. 검은 잔에 담긴 액체였다. 크리스토퍼가 아놀드에게 물었다.


- 이건 뭐지?

- 아, 별것 아니야. 인간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약물이지. 끝없을 고통 대신 무한한 행복을.

- 해피엔딩이로군.


신 지구에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치유될 방법이 생길 언젠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인체의 모든 걸 멈추어 생명을 유지하는 동면.


또 하나는 그 동면에 들 비용이 없거나 혹은 동면조차 거부하며 삶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이 약물.


연방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허가를 받아 지급되는 이 약물은 강한 마약 성분으로 고통 없이 삶의 마지막을 맞을 수 있게 한다고 하여 해피엔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리스토퍼가 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15명의 이사들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누구는 마주 보고 누구는 눈을 피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퍼의 시선이 유서를 읽은 남자에게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 나 이거야 원 참… 별수 없군.


크리스토퍼가 검은 잔을 들어 바라보다가 액체를 단숨에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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