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정의는 필요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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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넌… 넌 살인자야. 이놈!
브레즐리가 아놀드를 가리키며 증오를 내뱉었다.
- 시신도 온전히 찾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 한 올조차 찾을 수 없었어. 브루넌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어. 너도 똑같이 당할 거야. 네가 뿌린 대로 그대로 당할 거야. 네가 연방 대통령이 된다고? 신 지구 연방의 수 천억 생명을 손아귀에 쥐겠다고? 이 나쁜 놈… 얼마나 더 죽여야 그 더러운 욕심이 채워질까. 나쁜 놈…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는 할 게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브레즐리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심장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던 브레즐리가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브레즐리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메디컬봇이 나타나 브레즐리를 스캔하고 나노봇을 투입했다. 나노봇이 무슨 짓을 했는지 브레즐리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잠시 후 작은 이동 부유정이 들어와 브레즐리를 밖으로 옮겼다. 아놀드가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부유정을 멈추고 브레즐리의 귀에 속삭였다.
- 잘 가라. 너의 저주는 허공 중에 사라질 것이다. 센터의 그 녀석이 브루넌이라고 했던가? 나노봇이 너에게 선물한 죽음을 들고 아들 곁으로 가거라.
부유정이 회의장을 떠나고 스테이지로 올라온 아놀드가 이사들을 둘러보았다. 잠시 침묵의 순간이 지나고 아놀드가 입을 열어 말했다.
- 외부 세력이 우리 크리토레스를 음해한다는 말을 듣고 유세 도중 부랴부랴 왔더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는 자신이 아니라 크리토레스를 음해하려는 외부 세력이라고 했다. 이사들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이 전부 외부 세력의 해킹으로 벌어진 일이며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완전히 종료>가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다.
아니 그렇게 정리되고 그렇게 기록되었으므로 그렇게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본 것이 없고 들은 것도 없었다. 개중엔 물론 이게 정상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굳이 나서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정의? 그게 뭐야. 그런 건 어디에 쓰는 거지? 그들에겐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이 중요했다. 지금 일이 잘못되면 자신들이 투자한 크리토레스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일을 본 것이다.
게다가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되는 아놀드 연관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도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투자 금액을 몇십 배 몇백 배로 불려 줄 아놀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 아주 작은 흠집으로도 거대한 댐은 무너질 수 있다는 옛 지구 역사의 교훈을 아로 새기며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기고 했다. 거대한 암묵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랜디가 연결이 끊긴 스크린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아놀드가 브루넌을 죽이던 영상이 어디에서 났지? 하는 생각이 났다. 자신이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파일이었다.
- 엘리, 그 마지막 영상…
- 아… 랜디님. 그 영상은…
- 그래요. 어디에서 받은 것인지
- 네 랜디님 이룬님에게서 회수한 나노캠에 찍힌 영상이에요.
- 이룬…이 돌아왔나요?
- 네. 근데 지난번처럼 잠깐 다녀갔어요.
- 아… 다녀갔다는 표현 고마워요. 엘리
- 그 표현보다 정확한 표현이 없었어요. 필요할 때마다 꼭 집에 오듯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니까 언젠간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랜디. 희망이 있어요. 우리는.
희망… 희망이라고 했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아직. 랜디가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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