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한 끼
1
없으면 사야하는 게 우산이다. 맞으면 그만이라지만, 남은 일이 많은 하루를 젖은 채 보내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쉽지 않다. 쉽지, 라는 건 못 한다는 건 아니다. 하기 싫거나 하기 어렵거나. 사랑처럼
2
없으면 만나고 싶은 게 사랑이다. 없으면 그만이라지만, 남은 생이 긴 이 시대에 사랑 없이 버티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쉽지 않다. 쉽지, 라는 건 못 한다는 건 아니다. 하기 싫거나 하기 어렵거나. 젖는다.
3
우산은 젖지 않으려고 필요하고 사랑은 젖으려고 필요하다. 필요, 사랑이 필요에 의해서 시작되고 필요 없어서 버려지는 것인가. 그런데 버려진다. 우산처럼 버려지는 사랑들은 어쩌면 우산처럼 잃어버린 것이리라. 아니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린 거라면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되걸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니 우산을 되찾자면 부지런히 되걸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4
우산을 찾으러 갈 땐 맑은 날 가라. 두 개의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만큼 불편한 건 없다 아니, 누가 그런 걸 신경 써. 사랑도 아니고 기껏 우산을.
5
사랑을 찾으러 갈 땐 비오는 날 가라. 다시 거부된 사랑을 눈밑에 달고 다니는 것만큼 우울한 건 없다. 아니, 누가 그런 걸 신경 써 우산도 아니고 기껏 사랑을.
6
젖는 건 싫어하면서 사랑엔 왜들 그렇게, 얌전하게 젖느냐.
거부할 사랑은 없는 걸까. 거부한 사랑을 그 자리에 두고 나온 언젠가의 나는 누가 그 사랑을 주워갔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거부된 사랑은 지금 누구 손에 돌아다니고 있을까, 우산이라면 주워 갔을 거다. 우산도 아닌 너는 혼자였으면 좋겠다. 영원히.
7
심보가 고약해,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사랑이 그러면 안 되지.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냐, 한 번 사랑은 한 번으로 끝인가.
당신은 어때. 끝난 사랑으로 끝인가. 과거진행형인가. 끝난 사랑이 되돌아와 무릎 꿇고 사정한다면 받아줄 텐가.
8
우리 돌아온 사랑에게 말하자. 이제 그대 아주 가라.
9
기껏 우산도 아니고 기껏 사랑이 돌아온다면 기꺼이, 아주 가라. 할 사람. 우산을 잘 잃어버리는 그대라면 그래 마땅하다. 기껏 우산도 아닌 그깟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