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크톤 수프
맛들이다
1
먹는 일은 중요하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란 말은 진리가 아닌가.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소크라테스 같은 유명한 사람도 먹는 일을 말했다. 배부른 돼지는 되기 싫다고. 내 맘대로 해석이지만. 어쨌든 먹다.로 시작한 말 아닌가. 나 같은 단무지도 쉽게 알아먹으라고. (단무지는 단순 무식 지랄발광의 줄인 말이다.) 그러니 먹는 자영업이 숱한 폐업 사례를 무한적립 하고도 창업이 계속 되겠지.
2
원플레이트 생활한 지 오래되었다. 직장 다닐 때는 음식점에서 몇 가지의 반찬을 곁들이며 끼니를 때웠지만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하나의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운다. 간편하니까. 설거지를 줄이니까. 물론 만들기 귀찮아서. 장점이 많다. 한번 맛들이니까 점점 그렇게 된다.
3
문득 더럭 겁이 났다. 골고루 먹어야 키 큰다는데. 하다 보니 미네랄 같은, 비타민 같은, 오메가3 같은 잡다한 것들을 챙겨야 하는 부작용도.
4
무슨 맛인지 아니까 먹지 않고도 먹은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먹어봤기 때문에, 특히 이 기억은 점점 더 강하게, 가장 맛있게 먹었던 그 무엇만 강렬하게 남는다. 그러니 쿠팡, 컬리 같은 데서 반찬이든 밀키트든 심지어 식재료만 봐도 가장 맛있던 그 맛이 떠오른다. 매운 게 당겨서 배달앱을 열어 이것저것 보다가 막 매운 걸 먹은 것처럼 열이 오르고 땀이 쫘악 나서 이제 안 먹어도 되네. 하고 주문을 그만둔 적도 많다.
5
그만둘 때를 알지 못하면 큰 후회를 남긴다. 그때는 이미 소용없다. 맛을 안다는 건 더 하지 않아도 멈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멈춘다는 것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일이냐. 소크라테스처럼 고민하지 않고도 대단한 (개x)철학자가 되는 것 같다.
6
안달복달하며 살지 않고도 잘 사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금수저라든지, 건물주님이라든지.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을 남들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면 안달복달 생활은 굿바이가 될지도 모른다. 내멋대로, 내맛대로 잘 산다는 것. 아무튼 맛을 아니까 안먹어도 먹은 것 같다. 나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