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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Sep 20. 2023

잠(JAM)13

SF 장편소설

13.그리고 헤어짐


이룬이 창고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찰리가 불이 켜진 창고로 들어섰다. 아빠가 앞서가려고 하자 이룬이 옷자락을 당기고 라이플을 겨눈 채 들어갔다. 아빠도 이룬을 따라 들어섰다.


- 찰리, 키퍼 가동해.


찰리가 키퍼를 가동하자 곧 생체 신호 감지기가 가상 스크린에 떴다. 찰리가 이룬을 돌아보고 이룬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호가 강해지는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 아빠, 누가 쓰러져 있어!


아빠가 다가가 쓰러진 사람을 관찰하는 동안 찰리가 옆에서 아빠를 보조하고 이룬이 신중하게 라이플을 들고 기다렸다. 아빠가 찰리에게 쓰러진 사람을 스캔하라고 지시했다. 찰리가 연둣빛으로 그의 몸을 스캔하고 우측 허벅지에 크게 물린 자국을 찾아냈다. 바닥을 살펴본 이룬이 추측을 말했다.

- 늙은 하이에나가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물고 온 거 같아요. 찰리, 저 상처 하이에나 이빨 자국 맞을까?


데이터를 검색한 찰리가 하이에나에게 물린 상처 이미지를 찾아 대조했다. 곧 일치 판정이 났다. 아빠가 어때 보여? 라고 묻자 찰리가 출혈이 심해서 지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빠는 창고의 구급함에서 도구를 꺼내어 상처 부위에 대자 나노봇이 투입되어 상처의 조직을 재생하고 찢긴 부위가 진한 자국만 남긴 채 아물었다.


- 나머지는 집에서 하자.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이룬이 고개를 끄덕이고 찰리가 쓰러진 사람을 안아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가 끝나고 누워있는 남자를 이룬이 바라보았다.


- 저 남자는 누구기에 우리 창고까지 저 몸으로 왔을까?


* * *


커뮤니티와 통신을 시도하다가 라인 상태가 나빠 접속이 안 되자 아빠가 엄마와 외출 준비하며 이룬에게 말했다.


- 경로를 따라 조사해보니 늙은 하이에나가 물고 온 거 같아. 사파리 보호 빔이 뚫린 것 같은데, 가서 알아봐야지.


아빠는 사파리 문제를 커뮤니티 관리자와 상의하려고, 엄마는 필요한 물품을 사려고 두 사람이 커뮤니티에 나갔다. 이룬이 찰리를 같이 보내려고 하자 아빠가 마다했지만 이룬이 기어코 찰리를 함께 보냈다. 당신이 관리자 만나는 동안 그 많은 생필품에 식료품까지 어떻게 챙기냐고 엄마가 말하자 아빠가 그러네. 하여 이동 트레일러를 타고 집을 나섰다.


신연방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목장과 공장 등 생산시설이 커뮤니티를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룬의 목장은 22커뮤니티에서 트레일러로 2시간 거리에 있었다. 그 생산 구역에 근접하여 몇 개의 사파리가 있었고 사파리에는 지구에서 탈출할 때 같이 데려온 동물들이 자연생태계를 스스로 이룰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지구에서 인간들과 함께 탈출한 동식물 중 90%의 개체가 우주여행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생태학자들은 동물이 죽을 것을 대비해 미리 DNA를 추출 배양하는 등 개체 수 복원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결국 사자 호랑이 등 자연의 최상위 포식자는 극히 일부의 개체만 복원에 성공하여 특별한 사이트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이에나들은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신연방 사파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점점 더 영악해져 각 사파리에서 보호 빔을 훼손하고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빠 진과 엄마 마리에는 이동 트레일러에 앉아 구출한 남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 그 남자 누굴까.

- 글쎄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고.

- 맞아! 나도 어디서 본 것 같아.

- 당신도 그래? 찰리 인물 검색에서 비슷한 사람이 있어?


검색 결과 매칭되는 인물이 없습니다.


- 데이터에 없는 사람이 있다고?

- 진 그게 가능해요?

- 글쎄. 찰리 데이터에 없다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된 거야?


두 가지 케이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식민지 행성 소속 생명체입니다. 제가 접근이 가능한 네트워크의 데이터는 신연방에 국한되어있습니다. 둘째는 신연방 네트워크에서 데이터가 삭제되었거나 숨겨진 경우입니다.


- 숨겨져?

- 진? 진! 진….


숨겨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는 동안 창밖을 보던 마리에가 다급하게 진을 불렀다. 마리에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가득했다. 진이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의 눈동자로 어마어마한 태풍이 들이닥쳤다. 자기 폭풍이었다. 한 번 발생하면 한동안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중형 커뮤니티와 인근의 소형 중력 돔을 무기력하게 하는 초자연 재해.


자기 폭풍은 중력 증후군, 아직 그 종류가 다 밝혀지지 않은 세균과 바이러스, 원시 지구에서나 나올 법한 원주 생물들이 일으키는 질병, 사건 사고와 함께 신연방에서 커다란 피해를 일으키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다. 그나마 커뮤니티나 목장에는 자기 폭풍의 발생이나 침입을 막아주는 패러데이 실드나 워터 월 같은 장치가 있었지만 이런 황야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저런 크기와 속도라면.


- 아…. 저런 건 처음 봐.


평소엔 자기 폭풍 발생의 규모와 시기를 파악해서 각 커뮤니티 단위로 주의 예보가 발령되었는데 이런 기습에는 속수무책이다. 위기를 감지한 찰리가 트레일러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여 다가오는 폭풍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폭풍의 규모가 너무 커서 회피 불가능했고 진행 속도는 이미 트레일러의 최대 속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영향권에 들어간 트레일러가 극심하게 요동쳤다.


- 찰리, 이룬에게 마지막 통신을 남겨.


진이 모든 걸 포기하고 찰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리에가 진의 손을 꽉 잡고 눈을 감았다.


- 이룬… 부디 행복하기를.

- 이룬… 네가 우리 딸이어서 행복했어. 우리 나중에 보자.


찰리가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아 최고 속도를 냈지만, 꽁무니를 아슬아슬하게 물고 달리던 폭풍이 마침내 트레일러를 집어삼켰다. 순간적으로 들어 올려진 트레일러는 까마득하게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폭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폭풍의 회오리 바깥으로 맹렬한 스파크가 일어나며 주변을 온통 태우고 지나간 자리를 초토화했다. 자기 폭풍이 지나간 며칠 후 통신망이 회복되고 이룬은 찰리의 마지막 통신을 받았다. 며칠 동안 오지 않는 부모에게 걱정이 앞섰지만, 간혹 잡히는 통신에서 거대한 자기 폭풍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마도 그것에 발이 묶여 커뮤니티에서 며칠 지내다 오려나 싶었는데…


이룬이 부모의 흔적을 찾아 현장으로 갔다. 폭풍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왕복하며 흔적을 찾았지만, 그저 길고 새카맣게 폭풍이 휩쓸고 간 폐허만 남아있을 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이룬은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식탁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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