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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Oct 07. 2023

잠(JAM)20

SF 장편소설

20. 일어나


곧이어 캡슐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고 콘트롤 데크로 두 개의 수면 캡슐이 들어왔다. 에밀과 엘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캡슐을 주목하고 있었다. 엘리의 눈에 보이는 두 개의 스크린에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엘리가 보기에 이룬은 처음 보았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수치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인간은 지금까지의 과학으로도 다 풀어낼 수 없는 신비로 가득한 존재였기에. 기주는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끼며 다가오는 캡슐을 바라보았다. 함께해온 백 년의 시간이 콘트롤 데크에 무겁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이이이잉 철컥


마침내 캡슐이 열렸다. 휴머노이드 인스톨과 수면은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거기에 이룬은 출산까지 했다. 엘리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하나 망가진 곳은 없는 것 같고 머리를 휘휘 돌려보았다. 양호.


휴머노이드가 되었던 두 사람의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지나고 결국 기주가 못 참고 말했다.


- 혹시…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왜 안 깨어날까요?


엘리는 누군가를 깨워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그 과정을 본 적도 없었다. 인스톨 되었던 함선 100대 중 돌아온 이는 아직 없다. 특히 관리자가 용도폐기하듯 숨을 끊어버린 아흔아홉 명의 휴머노이드는. 이상하네. 프로세스는 문제가 없었는데… 하며 에밀을 보았지만, 에밀도 인스톨 된 휴머노이드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옮기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 죄송합니다. 지우님. 제가 경험하지 못한 사례라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엘리도 에밀도 아무런 답이 없자 기주가 다시 캡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 휴머노이드로 인스톨 후 깨어나지 않은 사례가 있을까요? 이대로는 불안하네요.

- 잠시만요.


엘리가 검색을 시작했다. 잠시 눈을 감은 엘리의 브레인 드라이브가 가동되고 수많은 사례가 엘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눈을 뜬 엘리의 표정은 어두웠다.


- 아니요. 한 케이스도 없어요. 아마도 범죄자들의 인권 문제 때문에 검색을 막아둔 거 같아요.

- 범죄자라니요? 누가 범죄자인가요?

- 네? 원래 휴머노이드는 범죄자가 되는 거 아닌가요?

- 아니요. 이룬은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다른 별 지우개의 휴머노이드들은요? 각자 어딘가의 커뮤니티에서 언인스톨을 시행하지 않았을까요?

- 별 지우개 휴머노이드들은…


에밀이 엘리에게 별 지우개를 말할 때 엘리는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울음이 터진 엘리를 보며 당황한 에밀이 엘리를 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 흑, 관리자가…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엘리를 보며 기주가 문득 짐작 가는 게 있었다.


- 별 지우개의 휴머노이드들은 모두 죽었군.


에밀이 놀라 엘리를 보자 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울음이 터졌다.


- 그럼… 기주님. 보스가 유일한 생존자였군요.

- 관리자가 휴머노이드 된 사람들의 튜브를 모두 빼고 이 센터 어딘가로 버렸어요. 아흔아홉 명의 목숨을.

- 엘리님 그렇다면 인스톨과 언인스톨 과정 모두 처음 해보는 거였나요?


에밀의 말에 엘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 인간을 휴머노이드로 인스톨해서 함선의 운용 시스템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불법인 것 같아요. 관리자는 별 지우개 프로젝트가 의회 승인 없이 기업 연합에서 벌인 일이라고 했어요.

- 프로젝트 자체가 불법? 그럼 그 많은 제조창과 함선과 보급기지, 그 일이 정당한 일이라고 믿게 만든 스토리며, 가족들에게 지급된 보상이 모두 신연방이 아니라 기업 연합이 꾸민 짓이라고요?


에밀이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 어떻게 그럴 수가… 인간을 휴머노이드 하는 거 자체는 신연방법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엘리가 검색한 결과를 말할 땐 이미 황당을 넘어서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 범법자가 아닌 인간을 휴머노이드로 인스톨하는 프로토콜은 없어요. 반대로 휴머노이드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군요.


엘리가 자신의 눈앞에 있던 가상 스크린에 띄워진 데이터를 센터의 대형 스크린으로 확장해서 펼친 후 검색한 법규를 띄웠다. 그 내용은 신연방에서 인적 자원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자원이기에 해치거나 변형할 수 없으며 인간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하여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훼손해서는 안 되고 유전자 조작과 같은 일도 절대로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었다. 그 아래 범죄자에 대한 휴머노이드 노역 형벌에 관한 규정도 있었다. 그런 일을 시도한 자는 일급 살인에 준하는 형벌을 내린다는 단서 조항도 있었다. 한 마디로 인간을 휴머노이드로 만든 것 자체가 이미 불법이다. 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엘리라고 해도 학살을 벌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건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에밀이 기주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도대체 보스는 무슨 일을 당한 거야? 기주는 에밀이나 엘리에게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이룬이 깨어나지 않는 캡슐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일어나 이룬.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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