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부목
구부러진 나무를 곧게 자라게 하려면
나무에 부목을 대주어야 한다.
무뎌진 칼을 다시 날카롭게 만들려면
칼을 숫돌에 갈아야 한다.
부목이 나무를 곧게 자라게 하고
숫돌이 다시 칼을 날카롭게 만든다.
사람으로 치자면 부목은 사색일 것이고,
숫돌은 평소에 책 읽는 습관일 것이다.
우리들은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
달리는 것에만 혈안 된 우리는 자신의 무릎의 상처도 보지 못한 채, 내 앞을 가로지르는 타인들을 보며 쫓기 바쁘다. 쉼이란 여유 있는 자들의 것이라고 치부하며 오늘도 쉼 대신 한숨을 뱉는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달리다 박광수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과 같은 책을 만나면 우뚝 서버리고 만다. 박광수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에는 젊음, 사랑, 인생 다양한 파트가 있지만 이 책의 중심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엄마’의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치매란 자신이 젊은 시절 애쓰며 건너온 징검다리를 되돌아 가는 것.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건너온 징검다리를 하나씩 치우는 일.
그때 옆에 있는 당신은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들. 그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뚝방에 서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일. 밝게 웃어주며 날 천천히 잊어 달라고 비는 일.
그의 그림과 글을 읽으며 엄마를 이해하고 자신을 위로하려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을까 그의 그림에 손을 얹어본다. 타인에게는 쉬운 위로들과 담담함을 내 상황에 맞춘다는 것은, 내가 가진 상황을 그리는 일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생각과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의 글들은 이미 그런 시간들을 지나온 것과 같이 정갈하다. 에세이 형식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은 작가가 가진 일상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들이 깊게 배어있다.
*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들면
젊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지.
2미터가 넘는 개울을 숨도 안 쉬고 건너뛰던 내가
밭고랑에 처박히고 어떤 이와 붙어도 지지 않던 술자리에서
어떤 이와 붙어도 이내 잠들어버리지.
50미터가 넘는 거리에 있는 미인을 찾아내며
스스로에게 감탄했던 독수리의 눈은 사라지고
세련되게 디자인된 명함을 받고 감탄 대신
7포인트 크기의 서체를 사용하여 디자인한
디자이너를 찾아내 독살하고 싶어지지.
늙는다는 건 그런 거야.
삶의 좋고 나쁨과 되고 안 되고가
더운 여름 낮 2시의 그림자보다
더 명확하게 선이 그어지는 것이지.
그래서 좋아. 누군가에게 쓸데없는 희망 따위 주지 않고,
내 한계선을 분명하게 알 수 있어서 말이야.
나이가 들면 실수가 적어져.
술자리에서 겸손해지고,
만용을 부려서 개울을 뛰어넘지도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지.
그래서 좋아, 늙는다는 것.
책을 읽는 것을 포스팅하면서 정리하다 보면, 재미있게도 그 주의 심리적인 상태를 알 수 있다. 도망치고 싶을 때는 여행 서적을 찾아 읽고, 답을 찾아야 하거나 도통 나의 앞의 날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다. 이도 저도 만사가 귀찮은 무기력증이 찾아와 책 한 권을 가지고 일주일 내내 끌어안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소설책을 무더기로 빌려 온다. 마지막으로 도망을 가도, 애를 써봐도 그때뿐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이다 보면 성직자의 책이나 위로가 담긴 에세이, 잠언집을 찾아든다. 사람은 어찌나 잘 짜인 동물인지, 나를 호되게도 괴롭히지만 한쪽으로는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되는지 잘 아는 요물 같다.
너무나 답답해서 책을 읽고 싶은데 무겁게 시작하고 싶지 않다면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이가 지긋하게 있거나 다양한 에세이나 성찰에 관한 책을 읽어왔다면 약간 뻔하다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인생 전부를 들여다보면 한치의 다름없이 비슷한 굴곡을 가진 것처럼 말이지. <문득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가 개인적으로는 훨씬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