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종이

도선우 [스파링]

한국소설; 제 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by sagakpaper

책을 읽고 리뷰를 쓸라 치면 하염없이 백지가 되는 날들이 다수였다. 시간은 없고 뭘 써야겠는데 도통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래서 리뷰 꽤나 쓴 블로거들의 글들을 기웃거리다가 ‘까칠한비토씨’를 알게 됐다. 워낙 오래 기웃거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마치 첫인상만 남듯 그의 글을 보며 이따위로 재미있고 까칠하게 쓸 수 있다니 했던 내 얼굴만 또렷하게 기억이 남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리뷰를 쓰기 전에 그의 글을 훔쳐 본 것을. 어느 날은 무작정 ‘배가 아프다’고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아’ 하고 감탄사만 내밀다 도망친 적도 있다. 캐나다를 가기 전까지 오래도록 그의 글들 사이를 헤매다가 나는 꽤 긴 공백을 가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더듬더듬 책 리뷰를 쓰다가 그의 블로그에 놀러 갔는데 책을 냈다는 것이 아닌가? 일을 냈구나. 1도 돌아볼 틈이 없었다 우선 급하게 책을 품에 안았다. 나름 우린 아는 사이라고 치고 ㅡ토씨는 아닐지 모르겠지만ㅡ 담백하게 리뷰를 쓰려고 한다. 자기계발서 이후로 이렇게 모니터 앞에서 긴장 없이 글을 쓰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우선 책을 내주어서 감사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보아 왔는데 이제는 더 넓을 세상을 구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다니 당신이란 사람. 자, 이제 책 이야기를 하자.




《스파링》은 주인공 ‘장태주’의 성장소설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미혼모에게 태어난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입학하면서 이해 할 수 없는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 같은 것을 알게 된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세상. 《스파링》은 장태주에게 소신껏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얄팍한 이 세계는 내 세계를 가꾸고 행복을 누리는 것 조차 쉬이 내주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오늘을 보는 것과 같이 말이지.


참으로 답답했다. 아무리 싸워 이겨도 결국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 같아서 옳은 사람들이 옳은 생각을 할수록 탐욕 많은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니는 것 같아서 책을 읽는 내내 부정하고 싶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이 악물고 운동해서 무엇 하나? 아무것도 없는 내가 나를 전부 내던져서 얻는 것이라고는 ‘개새끼’들 같은 세상인데 말이지. 애써 싸워 온 ‘장태주’라는 사람의 세계가 결국 한낱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말을 잃었다. 물론, ‘장태주’가 행했던 노력의 시간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성장 과정들을 보면서 설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마지막 장면을 같이 보고 말았던 것이 과정보다 결과를 기억하게 만들었을 뿐.




한국에 돌아오면서 금전적인 것보다 행복에 치중한 삶을 살고 싶었다. 저녁 있는 삶이 그리워 떠난 길이기에 저녁 있는 삶을 이 곳에서 만들면 되고, 캐나다에서는 내 사람들이 그리워서 다시 되돌아 온 길이기에 시간이 될 때마다 내 사람들을 만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나는 잘 모르겠다. 타지에서 일년 넘게 살았던 패기로만 무작정 다시 돌아 온 것은 아닌가, 내가 만든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보고 나는 소리칠 곳이 없어 마른 침만 삼켰다. 행복도 내가 결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는 어떠한 것도 한계가 있다.


태수의 상황을 내가 감히 어찌 이해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각자 자신의 몫만큼만 전부인 줄 알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와 우리네 삶을 투영시켜도 결국 내가 그릴 수 있는 그 만큼만 볼 수 있겠지.



“천원일 때 막지 않으면, 그 다음 아이들은 만원을 내야 하고 청소도 대신 해줘야 하고 숙제까지 도맡아 해줘야 하는 시대를 살게 될지도 몰라.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 영문도 모르면서 단지 그게 오랫동안 그곳의 역사를 만들어온 삶의 방식이니까 따라야 한다고, 혹은 따르고 싶지 않아도 결국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게 되겠지.” (_181)


그래도 이 책을 덮고 얻은 것이 있다면 결과가 뻔하다 하더라도 싸워줬다는 것이다.

누군가 소리칠 때까지 그는 달렸다. 그 것이 나와 그의 차이이지 않을까.



《스파링》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독백으로 시작하는 서두가 너무 길고 한 문장이 쉼표 없이 나열되어 있어 처음에는 호흡을 맞추느라 바빴다. 내게는 낯익은 문체여서 호흡으로 넘어갔지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됐다. 흡입력 좋은 책이지만 스토리보다 글이 많았던 책이다. 분명, 살아오면서 그가 본 세상을 듬뿍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성장 소설이기에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길 바랐는데, 그와 닮은 결론에 옅은 웃음기를 묻고 책을 덮는다.


그런 사람이 대개 그렇듯 나 또한 뭐든 허겁지겁 하기에 바빴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건지, 나는 뭐가 됐든 대체로 한번 손에 잡으면 쉬이 내려놓는 편이 아니었다. 그게 얼핏 보면 매우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나 실은 그 자체가 마음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허둥대는 모습이라는 걸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면 나는 책도 그렇게 허겁지겁 어떤 상황들로부터 도피하려고 읽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_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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