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종이

임태수 [날마다, 브랜드]

디자인

by sagakpaper

사회적 기업을 품고 한국에 와서 날마다 배우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날마다 배우는 만큼 똑똑하고 열정적이고 좋은 사람이어도 운과 기회 그리고 돈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들이 스스로를 옭아맬 만큼 어려운 일이구나 새삼 배우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나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큼 우리 서비스의 가치와 브랜드도 동시에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더디게 걸어나가고 있는 모습에 답답했고, 적극적으로 브랜딩 할 시간이 없다고 초조해했다. 그러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돈과 기회에 흔들리지 않고 깊게 뿌리를 내리려면 차분히 토지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된 다는 것을 말이지.


한국의 기업은 유럽이나 미국의 기업보다 유독 브랜드 리뉴얼을 빈번하게 한다. 대다수 기업이 브랜드를 단지 이미지로만 여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매출이 감소하면 기업 안에서는 으레 브랜드 리뉴얼 이슈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럴싸하게 이미지 변신을 꾀하려 제값보다 높은 마진을 붙여 비싸게 판매한 뒤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브랜드를 활용하려는 것이다. (_39)


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당연하게 들리는 과정들이 안정적인 위치를 선점한 큰 기업들조차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반짝이는 효과(돈)를 좇기 위해 가치를 버린 꼴이 되고 마는데 자본주의가 팽배한 오늘 날, 과연 손가락질만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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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종종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바둑을 두기 시작한 알파고가 모습을 드러내고 앞으로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우리 대신 운전을 해주는 인공지능들이 현 스마트폰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면 우리는 어떨까 하고 말이지. 이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편리함을 의심하진 않겠지만 모순적이게도 인공지능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찾기에 급급해지지 않을까. 영화 《Her》에서 남주인공의 직업이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였던 것처럼 똑똑하고 지치지 않는 인공지능 이면의 그들이 느낄 수 없을 것이라 믿는 감성과 감정 그리고 마음을 끊임없이 찾으려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문다.


아무리 편리하고 보기 좋은 것들도 소비자들과 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감정과 감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서있기만 한다면 분명 어느 순간 부러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닿곤 한다. 결국 비옥한 땅이 아니더라도 정성으로 땅을 보듬고 오래도록 두터운 발로 밟아주면, 싹은 자랄 것이고 그 생명력은 다양한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브랜드는 경쟁 브랜드와 싸워 이기는 방법을 궁리하는 대신, 브랜드를 통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가치 있는 변화를 제안하고 그 약속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_45)



《날마다, 브랜드》는 ‘브랜드’라는 것을 늘 곁에 두고 고민하고 표현해보고 경험하고 느끼는 과정들을 녹여낸 에세이 형식의 책이다.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좋았고 일상적인 언어로 그의 경험이 묻어나 친한 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반감 없이 글들이 읽혔다. 툭 내던지는 거꾸로 쓰여있는 그의 글들이 좋았고 일부러 놓은 여백과 책을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좋았다.


아, 무엇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가능한 자주 찾아뵈려는 다짐도 숫자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보험사의 광고를 보고 계산해봤는데, 평균적으로 두 달에 한 번 고향에 가서 주말을 보낸다고 가정하면 1년에 여섯 번을 가는 꼴이 된다. 보통 이틀 정도 다녀오니 12일, 그렇다면 부모님이 30년을 더 사신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실제로는36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서러운데 앞으로 뵐 날이 1년도 채 안 된다니, 슬픈 현실이다. (_143)


이 글을 통해 엄마 아빠를 한 번 더 보러 간 사실은 안비밀.

브랜드에 관한 이론적인 설명보다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책이니 무겁지 않게 책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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