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종이

권비영 [은주]

한국소설; 진주를 품은 여자

by sagak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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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이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관용정신을 앞세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할 에민도 은주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자각이 불편했지만 은주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때대로 위안이나 되었으면 바랄 뿐이었다. (_172)


직접 경험하지 않고 하는 조언이나 위로가 얼마나 위험하고 가증스러운지 안다. 그리고 직접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듣는 이도 그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상대방의 고통을 듣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될지 조심스럽다.


<은주>는 가정 폭력 안에서 자란 똑똑하고 사려 깊은 25살의 딸이다. 그런데 그 똑똑하고 사려 깊은 은주는 가정 환경이 만든 자신의 또 다른 자아다. 어렸을 때부터 억압되어 온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더 사려 깊고 고상하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안하무인 격인 엄마와 폭력의 도를 지나쳐 칼을 휘두르는 아빠의 아래에 그 사려 깊은 은주는 결국 도망을 간다.


이 소설 책의 주인공들은 가정폭력, 국제결혼, 다문화 가족이 겪는 비애 그리고 개인사 등 우리의 시대적 문제를 안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으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그 내면의 뿌리는 너무도 깊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내가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왜 인생의 불운은 겹쳐서 오는 것일까. 왜 가난한 인생은 늘 그 자리에서 맴도는 것일까. 그들에게 인생은 수렁이다. 늪이다.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기이 빠져드는 지랄 같은 인생!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한다는 신은 무얼 하고 있는가. (_119)


내가 너무 회의적인 시선으로 글을 쓰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소설 <은주>의 결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세상은 사랑으로 점철 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고되다. 물론, 인간이 가져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은 ‘사랑’이 되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지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은 또 아니다. 어쩌면, 은주가 가진 고통의 시간들과 시대적 문제들을 따라가느라 그녀가 받아 마땅할 배려와 사랑을 내가 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많았던 <은주> 그래서 나는 백마 탄 왕자들처럼 그녀 곁에 서서 그녀를 도와주는 이 이야기에 아쉬움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그녀가 그들을 사랑으로 도왔기에 개구리가 왕자로 변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소설 형식이라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었지만, 은주의 상황에만 너무 치우쳐 할머니와의 관계도 부모님과의 관계도 애매하게 끝을 맺은 듯 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다문화 가정에 있는 인물들에 내용도 깊이 있다기 보다는 훑어 가는 것 같아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은주까지 틈을 내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대와는 달리 만족스럽지는 못했던 소설 책이다.


누구나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그것은 어쩜 자신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_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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