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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Jun 12. 2017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에세이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나는 모든 것이 너무 과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무한 리필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은 우리에게 한 접시라도 더 먹어야 손해보지 않는 것이라 종용하는 듯 하고, 미디어와 SNS에서는 매일 새로운 상품과 디자인으로 물건을 사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처럼 마케팅하고는 한다. 그래서 전혀 부족하지 않게 음식을 먹어도 늘 허기지고,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 없는 물건들을 갖추고 있어도 다른 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돈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수 많은 날들이 우리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조차 대부분의 사람이 순전히 무지와 오해 탓에, 부질없는 근심과 쓸데없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며 삶이 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보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고된 노동 탓에 투박해진, 심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는 그런 섬세한 열매를 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에 찌든 사람은 인간의 참다운 고결함을 유지해 나갈 여유가 없다.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 가치가 현격히 하락할까 두려워하느라 다른 사람과 인간다운 관계를 이어 갈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일만 하는 기계에 다름 아니다.(_13)




열정을 강요하는 사회 그러나 그 열정에 비례해서 성과를 이루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세대. 미래를 기약 할 수 없고 복지를 꿈꿀 수 없어 젊은 사람들은 결국 안정적인 제도를 찾아 공무원으로 몰리는 상황, 몇 십 년을 숨만 쉬고 일해도 몸하나 가눌 수 있는 집 한 채 갖는 것이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 어려워진 요즘. 끈기가 없다고 혀를 차기 전에 오래도록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적이 있던가 되묻지 않는 우리의 이전 세대. 


이 안에서 나는 몹시도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답을 내놓지 않고 불평만 하고 있었다. 한국은 변하지 않을 거라 단정지으며 나는 변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살아가겠다, 살아내겠다 다짐하지만 결국 눈을 감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월든》을 찾아 들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주요 대상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이나 타고난 시대만을 탓하며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게으르게 불평만 일삼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은 나름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며 고집스럽게 불만을 터뜨려 댄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만 부유할 뿐 실제로는 지독히도 가난한 사람들, 즉 쓰레기만 잔뜩 축적해 놓은 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또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는 부류들이다. 그들에게 황금과 은은 스스로의 발을 옭아매는 족쇄나 다름없다. (_31)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교수직을 했으나 그 과정에서 멈추지 않고 2년간, ‘월든(Walden)’이라는 작고 아름다운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자급자족 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단순히, 물욕을 버리고 간소하게 살라. 라고 허공에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험 삼아 월든 호숫가에서 직접 통나무 집을 짓고 끼니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그 안에서는 자연과의 교감을 비롯해 그의 사상과 오늘 날 돈, 출세, 명예 등에 목매다는 우리에게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의 일침은 나의 모든 촉각을 세웠다. 간소하게 살겠다고 하면서 간소하게 살 수 없는 공간에서 머물며 ‘왜 우리는 간소하게 살지 않는 거지?’ 하고 답 없는 불평만 내려놓기 일쑤였다. 꼭 나에게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것이 이상적인 것 같은데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동식물은 매일 같이 하던 일이 아닌가? 자연과 공존하며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것, 먹는 일보다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타인의 삶을 보며 나와 비교하는 것보다 책을 읽으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일. 나는 하나 더 나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재능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일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의 책을 덮고 나니,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그려졌다. 자급자족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다만, 소로와 같은 길을 나란히 걸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생각한 사고와 방향을 품고 걷다 보면, 나는 나만의 《월든》이 생기지 않을까 꿈꿔 본다. 




*

방향성을 찾고 싶은데 찾지 못해 방황하느라 말을 아끼던 요즘, 《월든》을 읽고 나자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쏟아져 나오 듯 그에게 《월든》에 대한 찬사를 비롯해 나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월든》은 읽으면서 유난히 딴 생각이 따라붙는 책이었다. 그래서 진도가 도통 나가지 않았고 책을 읽어나갈수록 리뷰로 풀고 싶었던 말들도 굉장히 많았다.


한차례 가라앉고 나니,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뷰를 쓰게 됐지만 이 책은 두고두고 곱씹어 읽어볼 만 하다. 내게는 너무 좋은 책이었다. 다만, 미니북으로 사서 읽었는데 그렇게 볼 책은 아니다. 다시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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