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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Jun 13. 2017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한국소설; 김영하

1.
단편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기 때문에 독자의 시선을 끌만큼 강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이 많긴 하지만 나는 그 안에 있는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늘 문장 사이를 헤매고, 나보다 먼저 끝나 버린 짧은 호흡의 문장들 때문에 늘 아쉬운 입 맛을 다신다. 이번에 읽은 김영하 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가십거리처럼 짧은 단편들을 읽어 내려갔고 결국 어떻게 글을 쓸지 몰라 하염없이 스크롤만 올렸다 내렸다 한다.



2.
내가 리뷰를 쓰는 방식은 최대한 나의 이야기를 빗대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식이라줄거리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단편집은 더더욱 리뷰를 쓰기가 어렵다. ‘청탁 없이 내킬 때 쓴 소설(작가의 말)’들이라 그런지, 김영하라는 작가의 필력이 이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13편의 단편으로 각양각색을 갖고 있어 한데 묶어놓기가 몹시도 망설여진다.



3.
그래도 리뷰ㅡ이렇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리뷰를 쓸 때면 늘 번호를 매기게 되네ㅡ를 쓰자면 말이지.



4.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것을 나는 간혹 카페에 앉아 혼자 해볼 때가 있다.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외적인 모습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카페 왼쪽 끝에 혼자 앉아서 종이에 무엇인가 끊임없이 쓰고 있는 남자는 30대 중•후반처럼 보이고 결혼은 하진 않았지만 7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가 있을 것 같다는 가설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거지. 그 사람의 주름에서 그 사람의 손 끝에서 느껴지는 향을 맡으며 언어를 꾸린다.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행복하게 그 이야기는 나 혼자 속삭이는 가정인데,



5.
그렇게 수 많은 가설을 설정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이야기들을 꺼내 놓고는 한다. 오랜 기억 속에 묻어뒀던 또는 영화에서 봤던 것만 같은 흐릿한 기억이 타인의 얼굴을 타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다 보면 내 이야기들은 가속이 붙는다.


6. 
그런데 내 상상놀이는 기다리던 사람이 오면, 내가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오면 가볍게 지워진다. 내가 그렸던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 순간은 즐거웠지만 남의 일처럼 금방 흐려지고 만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비슷했다. 책을 읽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었다가 리뷰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지만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몹시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7.
가십거리처럼 읽었다.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기에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사연 있는 글들처럼 가볍게 읽었다. 이기주의적 읽기 습관이 이렇게 책 한 권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만다. 써야 한다는 의무로 썼지만 실은 이 글들은 전부 의미가 없다. 의미를 두지 못했기에 결국 의미가 없다. 아쉬움에 여전히 괜한 입 맛만 다신다.


그런 젊은이들을 보면 로마 제국 시대, 가도에 늘어선 묘비들처럼 심술궂게 속사여주고 싶습니다. 곧 죽을 것을 잊지 말라고. 그런 젊은이들과 나는 밤마다 같은 바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교환하며 차가운 맥주를 마십니다. 가끔은 그들에게 술을 몇 잔 사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_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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