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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Mar 12. 2019

최은영 [쇼코의 미소]

한지가 내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이냐고 물어볼 때라든지, 왜 그렇게 풍요로운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볼 때 그랬다.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대답 대신 나의 할머니, 엄마, 옆집 아주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차라리 그쪽이 한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더 적합한 것 같아서였다.
p.144, 한지와 영주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을 요량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해. 타인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넘어가지만 나 또한 언어의 온도에 예민한 인간이기 때문에 최대한 섞이지 않았으면 하거든. 사는 것도 벅찬데 감정을 섞는다는 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이야. 안 그래?


내가 너무하다고? 음, 길에서 싸움이 났네. 우리는 무미건조하게 싸움을 지켜보다가 문득 그 싸우는 한 사람이 내 지인이란 걸 알게 되면 어떻겠어? 가만히 지켜 볼 수 있나.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말이 안 통하면 멱살이라도 잡아줘야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진다고 하는데 나이를 먹고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견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곳으로 감정을 쏟아 붓는 일들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내일을 희망하며 산다기 보다는 내일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 내게는 더 많거든. 응 맞아. 참 슬픈 일이지.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p.92, 씬짜오, 씬짜오



오히려 나는 네게 더 많은 속마음을 이야기해. 시간이 갈수록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받아드려야 되는 사실을, 무기력함과 싸워가며 오늘도 견뎌내는 많은 사람들의 하루를 너와 이야기 해. 가장 오랜 시간 같이 살아 왔던 가족하고는 잘 이야기 하지 않지. 서로에게 상처를 내지말자 적어도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배려가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벽을 만들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할 때가 있어. 그 벽을 허물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서로의 벽에 망치질만 하다 돌아서기도 하지. 그러다 보니 차라리 깊은 말보다는 하루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서로를 위하는 거야. 그게 서로를 위하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쇼코의 미소》는 이런 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그래서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네가 생각났어. 너는《쇼코의 미소》를 읽어보라고 말했던 내게 되물었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냐고 그런데 선뜻 대답 할 수가 없었어. 매일 같이 우리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왔던 그 모든 관계들이 이 안에 있거든. 그 지긋지긋하게 얽혀있는 관계들이 자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서글 ㅡ책을 덮고 집에 들어가 내 방문을 평소처럼 닫는다 하더라도ㅡ 프게 만들었어.



참 이상하지?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싫다고 말하면서 나는 또 너의 삶에 개입해서 책을 추천하고 이걸로 또 이야기를 삼고 우리의 하루를 나눠. 그런데 《쇼코의 미소》의 마지막 두 편을 힘겹게 읽어내면서 나는 결국 그들의 삶에 끼어들 수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 내 삶이 버거워 타인의 삶은 돌아 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나는 노란 리본에 가슴이 뛰고 이해 되지 않는 것에 이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마음이 가더라. 내일 아침 눈을 뜨고 머리를 감고 출근하면서 다시 모든 관계에 지긋지긋해진다 하더라도 책을 읽는 순간은 네 심장도 나처럼 뛰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 책을 네게 추천하는 이유야.




선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진심을 말할 때, 선배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금씩 떨렸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마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징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고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p.201, 먼 곳에서 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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