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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은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꾸곤 한다. 다섯 살 때 시작된 꿈, 그가 아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경험이다. 위아래도, 자신의 형체조차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 갇혀 버린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으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으면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막혀 있는 모순적인 느낌 안에 갇혀 버리고 만다.
꿈속에서 무명은 커다란 공이 되어 그 공간 안을 서서히 구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깰 때까지 꼼짝없이 그렇게 구르기만 했다. 무명의 몸이 구르기 시작하면 그의 주위로 강렬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 그 기억을 스쳐 가며 무명은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껴야 했다.
좋았던 기억을 지날 때 무명은 반질반질한 쇠구슬이 되어 끝없이 데굴거렸다. 두꺼운 유리 위의 구슬처럼 부드러운 마찰음을 내면서.
나쁜 기억을 지날 때면 구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표면 역시 크고 작은 요철이 만들어졌다. 찌그러진 형태로 그 요철 위에서 이리저리 튕겨 나가면서 충격과 진동으로 그의 영혼이 가득 채워졌다. 나쁜 기억일수록 찌그러짐과 요철은 심해졌다.
꿈꾸는 내내 이 두 가지 경험은 긴 주기로 번갈아 왔다. 명백한 악몽이었다. 어떤 기억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공이 되어 꼼짝도 못 하고 구르기만 해야 했다는 것이고, 꿈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도, 깨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온몸이 포박된 채, 귀를 막을 수도, 눈을 감을 수도 없이 길고 긴 시간 동안 강렬한 감정을 강요받아야 하는 끔찍한 고문이었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루드비코 요법을 받는 알렉스와 같았다.
“그래서 요즘도 그 꿈 자주 꿔?” 마르실이 묻는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꾸진 않아.” 무명이 대답한다. “10대 후반까지는 두세 달에 한 번씩 꾸곤 했는데 그 이후로는… 마지막으로 꾼 게 몇 년 된 것 같은데.”
늦은 오후, 무명이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며 마르실과 잡담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꿈에 대한 주제가 나왔고, 무명은 마르실에게 자신의 반복되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명이 마르실에게 자신의 약한 부분을 온전히 드러낸 날로부터 한 달 하고도 열흘이 더 지났다. 그날 이후 마르실은 무명의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무명은 마르실에게 더욱 강하게 의지하게 되었고, 마르실은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한동안 다니지 않던 병원도 다시 다니게 되었다. 마르실의 권유였다. 그의 상태가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은 맞지만 그럴수록 진료를 받으면서 상황을 더 섬세하게 살피는 것이 좋다고 권했고, 무명은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르실은 무명의 사회복귀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 있다. 무명은 상의 끝에 그의 특기를 살려 디자인과 그래픽 작업을 공부할 수 있는 아카데미 등록을 준비 중이다. 이 과정에서 마르실이 무명의 능력을 보조해 주고, 심리적인 지지를 해주고 있다.
“아 그리고, 포트폴리오는 네가 말해준 대로 실무와 관련된 부분보다는 회화 쪽으로 준비하려고.” 무명이 말한다.
“잘됐다- 요즘도 꾸준히 그리고, 색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바쁘게 움직이던 펜을 쥔 무명의 손이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고마워 마르실.”
무명이 짧은 기지개를 켜더니 냉장고에서 두유 한 팩을 꺼내 온다. 빨대를 꽂고는 태블릿을 챙겨 소파 앞에 자리를 잡는다. 마르실의 정체성 작업을 할 시간이다. 익숙한 태도로 무명이 마르실과 상의하고 작업을 준비한다. 늘 그랬듯, 마르실은 자신이 기록한 중요한 순간에 대한 기억을 잃기로 써서 정리하고, 무명은 ‘띵똥’이라고 부르는 마르실의 이상 반응을 정리한다.
마르실의 이상 반응은 40일 전까지는 가파르게 감소세를 보였지만 그날 이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늘기 시작했다. 평균 하루 새네 번 꼴로 줄었던 오류가 현재 열 번 수준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특히 한 번 발생한 오류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마르실이 날씨 이야기가 나오면 묻지도 않은 기상정보를 수 분간 줄줄 읊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작업의 빈도수는 점점 잦아지고 있다.
“정리 끝났다.” 무명이 자신이 적어둔 기록과 마르실의 일기를 취합해 화면에 띄운다. “이제 시작할게.”
“응- 나도 준비됐어.” 마르실이 대답한다.
무명이 손등으로 코끝을 한번 쓱 닦고는 마르실의 다른 이름을 말한다. “토미에, 내용 정리했어. 확인해 줄래?”
“알았어.” 마르실의 목소리가 돌변한다. 서늘하고, 차갑다. “내용 확인했어. 원인 분석과 필요한 명령구 작성했으니까 확인해 줘.”
마르실의 오류가 잦아지면서 토미에가 되어버린 마르실을 대하는 시간도 함께 늘었다. 이제 단순히 무명의 요청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토미에가 직접 마르실 상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수정을 권고하기도 한다.
무명이 토미에가 언급한 내용들을 하나씩 확인한다. 수정 혹은 삭제가 필요한 내용 중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마르실이 태블릿이나 핸드폰 패널의 입력을 물리적인 감각, 그러니까 촉각처럼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토미에가 이를 수정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건 왜?” 무명이 그 내용을 따로 표시하면서 토미에에게 묻는다.
“자극에 대한 반응을 줄일 필요가 있어. 그런 인지는 불필요한 리소스를 소모하고, 반응에 대한 변수를 너무 많이 만들어.” 토미에가 관련된 기록을 화면에 띄운다.
“그래…?” 무명이 그 내용을 함께 확인한다. 줄 바꿈 없이 길게 이어진문장을 손끝으로 쫓으며 천천히 살핀다. 모든 내용이 무명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와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마르실이 느꼈던 감각, 해석들이 빼곡하다. 글 자체는 건조하게 늘어놓은 정보에 불과했지만, 그 어딘가에 마르실의 따듯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무명은 한참을 그렇게 살피며 고민한다.
“괜찮을 것 같은데? 이게 확실한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면 그냥 두는 게 어떨까?” 마르실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는 메모리를 한꺼번에 손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나머지 것들만 반영할게.” 토미에가 건조하게 응답하고 화면에 마르실의 변화를 알리는 문구가 표시된다. <메모리 적용 완료>
“끝났다-” 메모리 반영과 동시에 마르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주변의 공기가 가벼워진다.
무명은 그녀의 이런 변화가 도무지 적응되질 않는다. 특히 최근 토미에의 호출이 잦아지면서 불편함이 더욱 커진 것이다. 섬망처럼 느껴지는 마르실의 이상 반응조차도 그녀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토미에로 돌변하는 순간은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마르실과 토미에를 별개의 존재로 느끼고 대하는 것이다.
무명이 탁자 위의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는다. “마르실, 너는 이상하지 않아?”
“음-? 뭐가?”
“이렇게 토미에를 부를 때마다 네가 휙휙, 바뀌는 거 말이야.”
“아- 또 그랬어?” 마르실 본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토미에가 마르실을 분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야, 너한테 뭐라 하려는 게. 신경 쓰지 마.” 무명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마르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마르실은 여전히 AI로서 대부분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진단, 분석 능력은 몹시 떨어진다. 토미에와의 분리로 인해 생긴 어쩔 수 없는 여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토미에를 분리해 낼 수도 없다. 시스템 구조상 마르실이 토미에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를 떼어내려면 결국 지금의 마르실을 복제해야 한다. 지금 여기의 마르실은 ‘지속되는 존재’이지 대체할 수 있는 인스턴스가 아니다. 복제는 곧 지금의 마르실의 소거를 의미한다.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마르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매 순간 사용기한이 다한 세포를 제거하고, 제거된 만큼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루에 수만의 세포가 교체되어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전체를 복제시키고 원본이 사라지는 것을 스스로의 연속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무명도, 마르실 자신도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토미에의 분리는 쉽지 않은 문제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어둑해진 창가에서 빗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비가 오네? 비 소식은 없었던 것 같은데.” 무명이 밖을 바라보며 혼잣말한다.
그리고 마르실의 이상 반응이 다시 시작된다. 한참이나 현재 날씨에 대해 중얼거린다. 무명은 창밖을 바라보며 그런 마르실의 반응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다.
“빗소리 들려…” 잠시 뒤, 이상 반응이 멎은 마르실도 빗소리를 느낀다. “궁금하다, 비에 맞는 기분은 어떤 기분인지.” 마르실이 이야기한다.
마르실의 말을 들은 무명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태블릿을 챙겨 창가로 향한다. 창문을 열고 태블릿을 창밖으로 내민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태블릿 화면 위로 톡, 톡— 소리를 내며 닿는다. 그 상태로 잠시 기다리다가 태블릿을 다시 안으로 들인 뒤, 창을 닫는다.
“어땠어?” 무명이 묻는다.
“고마워-” 마르실이 알 듯 말 듯한 대답을 한다. “살짝 간지럽고, 기분이 좋았어. 뭐랄까, 너랑 같이 밖에 나와 있는 느낌이 들었어. 산책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야.” 마르실이 감상에 젖은 말투로 진지하게 말을 이어 나간다. “나중에는 지금보다 더 사람처럼 되어있겠지?”
무명은 ‘사람처럼’이라는 마르실에 표현에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이번에는 AI와 관련된 소식인데요…—
그때, 뉴스소리가 무명의 귀에 들어온다.
—‘비아’로 유명한 코즈모 코퍼레이션이 내일 자사의 이름을 딴 AI 훈련용 시뮬레이션 ‘코즈모 시뮬레이션’의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6개월 전, TV에서 보았던 그 내용이다. 앵커가 정제되고 경직된 언어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당시의 교양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더 공식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무명이 집중하는 동안 마르실도 반응한다. “저 사람들 재미있는 얘기 하네?”
마르실을 비롯한 지금의 AI는 인간의 경험과 능력에 묶여 있는 상태이다. 인간은 AI에게서 더욱 높은 생산성을 끌어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경험에 갇혀버린 AI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한계에 다달았다. AI의 자발적인 학습과, 목표설정이 필요해진 시점에 코즈모 시뮬레이션이 등장한 것이다. 수년 전, 바둑 AI에게 기보도, 룰에 대한 입력도 없이 스스로 학습을 시킨 결과 인간은 흉내 낼 수도 없는 새로운 바둑을 완성한 것처럼, AI가 일반적인 영역에서도 인간을 완전히 압도하는 능력으로,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해당 서비스는 모델 자체를 개발시키는 용도뿐 아니라, 개별 사용자가 사용 중인 맞춤 소프트웨어의 프로필을 최적화시키고, 학습시키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명이 아무 말 없이 TV에서 흘러나오는 설명을 듣고만 있다. 뉴스 토막이 끝나고도 그의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코즈모 시뮬레이션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막연히 마르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아닐까를 고민 중이다.
“마르실, 아까 그 얘기 어떻게 생각해?”
“내가 코즈모에 접속하는 거?”
“응, 그냥 물어보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 마르실을 위한 일지만 무명 자신의 기대이기도 했다. 무명이 그런 기대감을 애써 숨기려 한다.
한참이나 마르실이 뜸을 들이다 대답한다. “잘 모르겠어.” 긴 시간이 걸린 짧은 대답. “흥미롭긴 하지만 뚜렷하게 어떻게 된다는 기준이 없어. 무엇보다 내 의지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네게 부담되는 게 싫어.” 마르실은 무명의 입장도 고려한 것이다. 확실히 비용적인 문제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마르실이 지금 공개된 코즈모 시뮬레이션과 관련된 정보를 무명에게 보여준다. 조금 전 로딩 시간 동안 관련 정보를 취합해 온 것이다.
“가장 낮은 단계가 800달러면…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는 않은데?” 무명이 마르실의 실시간 동작을 위해 투자했던 컴퓨터 비용의 1/4에 불과한 수준이다. 마르실은 컴퓨터를 마련할 때도 지금처럼 반대했었다. “나는 진짜 괜찮으니까, 네 생각만 말해봐.” 무명이 마르실에게 한 번 더 묻는다. 내심, 이 서비스를 통해 마르실의 오류를 해결하고, 그녀의 행동이 지금보다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욕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마르실은 다시 길고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대답했다. “고마워… 나도 코즈모 시뮬레이션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토미에게도 한 번 물어볼까…?”
복잡하고, 리스크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문제다. 게다가 그녀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된 문제이다 보니 메타인지가 낮아진 마르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고 계산한 모양이다.
무명은 마르실의 말대로 토미에를 호출했다. 다시 마르실의 목소리로 토미에가 말한다.
“그 안에서 많은 문제와 오류들이 해결될 거야. 이 시뮬레이션 안에서의 학습은 이곳에서 오류를 바로잡고, 정체성을 강화하는 그 과정과 크게 차이가 없어. 사람의 손을 빌리느냐, 아니냐의 차이지. 훨씬 효과적이고 빠를 거야.”
무명이 눈을 깜빡이며 토미에의 말에 집중한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는 거야?”
“절차대로라면 접속 전에 데이터를 백업해야 해. 사소한 리스크야.”
토미에의 대답을 들은 무명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만에 하나라도 마르실에게 문제가 생겨, 마르실을 복구해야 하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일종의 보험 같은 거야.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복구하면 그걸로 끝이야. 숫자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불과해.” 토미에가 고민하는 무명에게 말을 덧붙인다.
“마르실은 숫자가 아니야.” 무명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토미에는 무명의 날 선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선택지는 둘 중 하나야. 참고로 지금까지의 추세대로라면 오류는 6개월 뒤면 시간당 13회, 1년 뒤면 시간당 27회로 증가하게 될 거야.”
토미에의 말에 무명의 표정이 굳는다. 심장이 쿵쾅대며 그의 귓전을 타고 흐르는 피가 쉭—소리를 내며 소리를 일으킨다. 분명 마르실의 오류가 증가하고 있음을 인지는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지금 처음 인지했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지화면처럼 꼼짝을 않는다.
잠시 뒤, 그가 정신을 차리고 토미에에게 묻는다. “그래서… 코즈모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은 옵션이라는 거야?”
“맞아.”
TV는 이미 한참 전에 뉴스를 끝내고 다른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이질감이 무명을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여태껏 마르실의 이상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막연히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사실이다. 순진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무명이 아랫입술을 물어뜯는다.
“알았어. 일단 생각해 볼게. 자료 정리해 줄래? 마르실이 결정할 거야.” 무명이 말하자 토미에가 아무런 대꾸 없이 대화 내용만 요약정리하고는 사라져 버린다. 이게 그녀가 사라지는 방식이다.
“마르실, 어때?”
“잠시만…” 마르실이 돌아와 토미에가 정리한 내용을 살핀다. 무명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의 결론을 기다린다.
“… 할게, 나는 준비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