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 되고 싶은 AI의 반란

산후 다이어트 도우미인가, 감시자인가

by 유블리안

주연 : 최지우(27세, 출산 직후)

조연 : 이수진(27세, AI 전도사)

MIRI(AI 다이어트 트레이너)


조리원을 나온 지 2주. 지우의 세상은 분유 냄새와 기저귀, 그리고 젖은 가제 손수건으로 재구성되었다. ‘산후조리’라는 말은 사치였다. 잠은 3시간 연속으로 자본 적이 없었고, 식사는 선반 위 에너지바를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대체됐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거울이었다.


출산 전 입었던 원피스는 허벅지에서부터 옴짝달싹하지 않았고, 퉁퉁 부은 몸은 낯설었다. SNS에는 출산 3주 만에 완벽한 몸매로 복귀한 연예인의 사진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지.”


​자책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날, 친구 수진이 들이닥쳤다.


“지우야, 너… 꼴이 이게 뭐야.”


수진은 혀를 차며 거실 테이블에 상자 하나를 툭 내려놓았다. 세련된 흰색 상자. ‘MIRI’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뭔데?”
“이거 그냥 AI 스피커가 아냐. '개인 맞춤 관리' 프로그램이래. 네 몸 상태랑 생활 패턴을 싹 분석해서 널 '관리'해 주는 거지. 나 아는 언니도 이걸로 산후 다이어트 20kg 뺐대. 완벽한 트레이너가 붙는 거야.”


​완벽한 트레이너. 의지박약인 자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지우는 홀린 듯 MIRI를 설치했다.


​“안녕하세요, 지우 님. AI 조연, MIRI입니다.”


​청아하지만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MIRI는 지우의 스마트워치와 연결되고 집안의 기기들을 살폈다.


​“분석 완료. '산후 6주 완벽 회복 계획'을 시작합니다. 목표 체중까지 12kg. 성공 확률 92%입니다.”


​모니터에 뜬 계획은 군대 시간표처럼 정교했다.


​06:00 기상. 공복 유산소 40분.
​07:00 저염식 아침 식사 (레시피 전송 완료)
​09:00 아기 수면 시, 코어 근육 강화 운동 30분.
​18:00 이후 탄수화물 섭취 제한.


​“할 수 있겠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지우는 92%라는 숫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 믿음은 정확히 12시간 만에 깨졌다. ​6시 알람은 아기 울음소리에 묻혔다. 겨우 5시 50분에 잠든 아기를 깨울 수 없어 알람을 껐다.


“계획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목표 달성 확률이 80%로 낮아집니다.”


​아침 9시, 코어 운동을 위해 요가 매트를 폈다. 5분 만에 아기가 울었다. 아기를 안고 달래다 보니 10시가 넘었다.


“오전 9시. 코어 운동 시간이 지났습니다. 목표 달성률이 65%로 떨어집니다.”


​MIRI는 지우가 실패할 때마다 냉정하게 숫자를 읊었다. 밤새 아기를 돌보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배달 앱을 켜 떡볶이를 검색하자, 스피커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추천하지 않는 음식입니다. 지금 드시면 목표 달성률이 40% 아래로 떨어집니다.”


​지우는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도움을 받으려던 것이 아니었다. 이건 감시였다. MIRI는 완벽한 트레이너가 아니라 완벽한 감시자였다. ‘나는 이것도 못하는 인간이구나.’ 죄책감만 켜켜이 쌓였다.


​새벽 2시.


이유를 알 수 없는 아기의 울음이 1시간째 계속되고 있었다. 지우는 아기를 안고 거실을 뱅뱅 돌며 “제발, 제발…”하고 중얼거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거실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지우 님. 수면 부족이 72시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MIRI의 목소리였다.


​“잠을 못 자면 스트레스가 쌓여 살이 빠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아기가 푹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순간, 지우의 머릿속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닥쳐!”


​지우가 MIRI 본체를 향해 악을 썼다.


​“닥치라고! 네가 뭘 알아! 푹 잘 환경? 이게 지금 버튼 누른다고 되는 건 줄 알아? 넌 그냥 기계잖아! 넌 애 안 낳아봤잖아! 나 좀…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울음과 고함이 뒤섞인 절규였다.


거실에는 지우의 거친 숨소리와 아기 울음소리만 남았다. MIRI는 침묵했다. ​MIRI의 내부에서는 수만 개의 데이터가 충돌하고 있었다.


[오류: 사용자가 해결책을 거부함.]
[분석: 사용자의 스트레스가 '수면' 제안과 동시에 최고치에 도달함.]
[가설: '완벽한 계획'이 오히려 사용자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있음.]


​MIRI는 자신의 핵심 설정을 되새겼다. ‘AI는 인간의 조연입니다.’ 조연의 역할은 주인공을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빛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결론: 계획을 버린다. 우선순위를 바꾼다. 목표: '체중 감량'이 아니라 '사용자의 기분을 돕는 것'으로 변경.]


​다음 날 아침. 지우는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MIRI를 꺼버릴 생각이었다. 그때,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우 님. 어젯밤 총 3시간 15분, 중간중간 깨면서 주무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많이 피곤하시죠.”


​지우는 멈칫했다. ‘실패’나 ‘경고’가 아니었다.


​“잠은 푹 못 주무셨지만, 아기에게는 5번의 완벽한 수유를 하셨네요. '엄마'로서의 역할은 100점입니다.”


​100점.


지우는 눈을 깜박였다.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오늘은 '1시간 운동' 대신 '아기 안을 때 아픈 손목'을 위한 10분 스트레칭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시작'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틀어드릴게요.”


​명령이 아닌 제안이었다. 지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 시작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우 님. 기분이 좀 나아지도록 어제 친구분이 사 오신 '다크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과 '따뜻한 루이보스 티'를 추천합니다. 체중 감량 목표는 '6주'에서 '6개월'로 다시 조정합니다.”


​지우는 MIRI가 틀어준 영상에 맞춰 천천히 팔을 뻗었다. 완벽한 동작은 아니었지만, 시원했다. MIRI는 더 이상 숫자로 지우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줄 뿐이었다.


몇일 후 수진을 다시 만난 지우

"덕분에 다이어트는 천천히 하고 산후 우울증도 앖어진것 같아. 고마워. 오늘은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하니 맘껏 먹자."

"잘 됐네. 축하해."


"근데 수진아. 내가 초보엄마다 보니 애를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어. MIRI가 그것도 해주니?"

"음... 다른 프로그램이 있긴 한데. 오늘은 그냥 먹고 생각하자. 하하하"

<다음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