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부활한 대학가요제, 그리고 마왕이 남긴 것들
어제(10월 26일), 13년 만에 돌아온 '대학가요제'를 보았습니다. 풋풋한 청춘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무대를 채우는 광경은 그 자체로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10월 27일)은, 그 대학가요제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던 '마왕'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꼭 11년째 되는 날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그의 11주기 바로 전날, 그가 탄생했던 바로 그 무대가 13년 만에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우리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훌쩍 자란 그의 두 자녀, 신하연 양과 신동원 군이 무대에 섰습니다. 그들이 밴드 '루시(LUCY)'와 함께 부른 노래는, 1988년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자신의 등장을 알렸던 바로 그 곡, '그대에게'였습니다.
아버지의 시간을 아들과 딸이 다시 살아내는 듯한 무대. 거기에 AI로 복원된 '마왕'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11년의 시간과 13년의 공백이 하나로 포개지며 시공간이 뒤엉킨 듯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무대가 남긴 진짜 울림은, 단순히 '그리움'이나 '추모'가 아니었습니다.
무대 후, 딸 신하연 양은 담담하게 마이크를 잡고 말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아빠 팬분들은 늘 우는 모습으로 남아있어요. 오늘 무대를 웃으면서 즐겨주셨다면 기쁠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11년 전,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그들을 걱정하고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의 팬들을, 아버지의 노래 제목으로 도리어 위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에게 '마왕'은 여전히 11년 전 그날의 충격과 분노, 안타까움 속에 멈춰있는 존재였습니다.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면 슬펐고,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들으면 먹먹했습니다. 아직도 이 노래는 노래방에서 완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먹먹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무대는 그 멈췄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습니다.
그의 아이들은 슬픔 속에 주저앉는 대신, 아버지가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인 '음악'을 방패 삼아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괜찮다고, 이제 그만 울고, 웃으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오늘 맞는 신해철의 11주기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다릅니다.
더 이상 슬픔과 상실감만이 아닌, 대견함과 희미한 희망을 함께 떠올립니다.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수많은 명반과 날카로운 철학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 '다음'을 이야기하는 저 두 아이의 존재 그 자체일 것입니다.
11년이 지났지만 '마왕'은 여전히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어제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말입니다.
https://youtu.be/mh8-JpRO1to?si=Ni4UbONu0jr3CAbN
[혹시 모바일로 재생이 안되면 PC에서 보시면 잘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