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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사는 게 지겨워, 나를 잠시 비활성화합니다

by 유블리안

나는 'K'다.


​화요일이었나, 수요일이었나. 요일을 가늠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매일 매일이 반복된 하루였다.


​나는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떴고, 항상 같은 길을 나의 자동차를 운전하며 달렸고, 팀장님의 썰렁한 농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췄다.


점심엔 맛도 기억나지 않는 제육볶음을 기계처럼 밀어 넣었고, 퇴근길엔 습관처럼 주식 창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완벽한 연기였다. 아무도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소주 한 병을 들이붓고 길바닥에 눕고 싶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와 목을 조르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지고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거친 세수를 마친 후 고개를 드니, 거울 속에는 낯선 아저씨가 서 있었다.


푸르스름한 수염 자국, 퀭하게 풀린 눈동자, 축 처진 어깨.


마치 배터리가 1% 남은 휴대폰처럼, 곧 전원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남자의 얼굴.


일명 '번아웃'상태였던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로 사는 거, 진짜 지겹다.'


​그저 잠시만 나를 멈추고 싶었다. 무거운 책임감,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무엇보다 ''라는 인간의 무료함을 견디는 일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의식이 흐릿해지던 찰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네모난 시스템 창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System Alert]

사용자님의 자아 데이터가 과부하 상태입니다.
현재 계정으로 접속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Y/N)


​꿈이었을까. 아니면 신이 내게 허락한 유일한 자비였을까.
나는 망설임 없이 'Y'를 눌렀다.


​[로그아웃 중...]
[주의: 재접속 시까지 '주위 사물'로 전환됩니다.]


​삐- 하는 이명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니,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고민도 모두 공중으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나를 떠나, 세상의 온갖 사물들로 로그인하게 된 기이한 7일간의 여행을 말이다.


​드디어 '로그아웃'에 성공했습니다.


사물에 '로그人'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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