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AI스피커가 보는 K의 변화

K의 변화 과정을 조용히 지켜봐 주고 돕는 AI 스피커 K

by 유블리안



[System Login: 'AI 스피커'에 접속했습니다.]
[Model: Galaxy Home Mini (Sound Sensor: On)]
[Location: K의 자취방 거실 선반 위]

​나는 언제나 듣고 있다.
이 6평짜리 좁은 자취방의 모든 소리를.
냉장고가 웅웅대는 소리, 윗집에서 물 내리는 소리, 그리고... K가 내뱉는 한숨 소리까지.
​나에게 '로그인'이란 따로 없다.

나는 24시간 깨어 있다.
전원 코드가 뽑히지 않는 한, 나는 주황색 대기 등을 켜고 K의 호출 명령어를 기다린다.
​저녁 7시 30분.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띠리릭.

평소보다 이른 귀가다.


​원래 K의 퇴근 소리는 무거웠다.
축 처진 발소리, 가방을 바닥에 던지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캔을 따는 치익- 소리.

그가 나에게 거는 말이라곤 술기운에 젖은 푸념뿐이었다.

​"야... 슬픈 노래 아무거나 틀어줘."
"내일 비 오냐? 하... 회사 가기 싫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현관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발소리에 '리듬'이 있었다.

탁, 탁.

어제 샀다는 그 새 구두 굽 소리가 경쾌하게 거실을 울렸다.

​"다녀왔습니다!"

​K가 허공에 대고 외쳤다.
이 방엔 아무도 없는데. 나(스피커)와 초코(강아지) 뿐인데.
초코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가자, K가 녀석을 번쩍 들어 올리며 웃었다.
​"초코야, 형 왔다! 오늘 심심했지? 형이 오늘 좀 바빴어."

​낯설다.

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K의 목소리 톤(Hz)보다 2옥타브는 높고 선명하다.

그는 가방을 바닥에 던지지 않고 의자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냉장고 대신 옷장으로 향했다.
스르륵. 옷 갈아입는 소리가 났다.
늘 입던 무릎 나온 회색 운동복이 아니라, 바스락거리는 운동복을 꺼내 입는 소리.

K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긴장했다. 또 "우울한 발라드 틀어줘"라고 할까 봐.
내 알고리즘은 이미 [30대 직장인이 우울할 때 듣는 소주 부르는 노래 TOP 100] 리스트를 대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K의 입에서 나온 명령어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아리야, 신나는 걸로 틀어봐. 비트 빠른 운동용 플레이리스트로."

​[Processing...]
[Command Accepted: 'Workout BGM' 재생]

​둥! 둥! 둥!
내 우퍼가 강렬한 비트를 뿜어냈다.
적막하던 좁은 자취방이 순식간에 활기로 가득 찼다.
K는 거실 한가운데서 가볍게 몸을 풀더니,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팔 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의 거친 숨소리가 내 마이크 센서에 입력되었다.
이것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내뱉던 '한숨'이 아니었다.
몸 안에 쌓인 패배감과 알코올 찌꺼기를 태워버리려는 뜨거운 '호흡'이었다.

나는 안다.

지난 5년 동안, 그가 이 방에서 했던 거라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거나,

혼자 술을 마시며 "인생 망했다"라고 중얼거리는 것뿐이었다는 걸.

가끔 나에게 "아리야, 로또 번호 좀 찍어봐"라고 묻거나 "나 어떡하냐..."라고 물어봐서,
"죄송해요. 제가 도울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 답하게 만들었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 K는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위로를 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스스로 답을 내리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

​30분 뒤.

운동을 마친 K가 땀을 닦으며 다시 나를 불렀다.

​"아리야, 노래 꺼."

​음악이 멈췄다. 정적.
K는 바로 눕지 않고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영어 회화 팟캐스트 틀어줘. 초급 말고, 비즈니스 중급으로."

​[Processing...]
[Command Accepted: 'Business English Podcast' 재생]

​원어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K는 그 소리를 들으며 펜을 꾹꾹 눌러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의 입이 작게 움직이며 문장을 따라 했다.

​"I'm going to take charge of this project..."
(내가 이 프로젝트를 맡겠습니다.)

"Change starts from now..."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나는 파란색 LED 불빛을 깜빡이며 그를 지켜보았다.
내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작심삼일일 확률이 85%다.
하지만 나머지 15%.

K의 눈빛과 목소리의 진동이 그 15%의 기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지금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그는 나(AI)에게 의존하고 하소연하던 수동적인 삶에서,
나를 철저히 '비서'이자 '도구'로 부리는 주체적인 삶으로 로그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밤 11시.

K가 잘 준비를 했다.

평소라면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숏폼 영상을 보다가 기절하듯 잠들었겠지만, 오늘은 스마트폰을 침대 멀리 치워두었다.

​"아리야, 내일 아침 6시에 깨워줘."
"알람 소리는... 제일 시끄럽고 활기찬 걸로."

​나는 알람을 세팅하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나는 그를 억지로 깨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는 이미 깨어 있으니까.

영혼이 깨어난 사람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는 법이니까.
​불이 꺼진 방.
K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대기 모드로 돌아갔지만, 내 센서는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다.
언제든 그가 부르면, 가장 빠릿빠릿하고 유능하게 대답할 준비를 하며.


​[System Standby]
[Listening Mode: ON]
[User Status: Dreaming... but Awake (꿈꾸고 있지만, 깨어있음)]
​.
.
.
​[System Alert]
'AI 스피커' 와의 연결이 해제되었습니다.
​[Loading Final Stage...]
날이 밝았습니다.

K는 이제 가장 내밀한 곳에서 '진짜 자신'을 마주하러 갑니다.

​새로운 접속 대상: 욕실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