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욕실 거울이 보는 K의 본모습

김 서린 세상 닦아내기

by 유블리안



[System Login: ‘욕실 거울’에 접속했습니다.]
[Object: 세면대 위 수납장 거울]
[Condition: 물때와 치약 자국, 그리고 자욱한 수증기]

나는 K의 집에서 가장 솔직한 얼굴을 비추는 사물이다.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표정도, 애써 외면하던 기색도
결국은 모두 내 앞에서 드러난다.

오전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욕실 불이 켜졌다. 탁.

K가 들어왔다.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의 K라면, 그는 나를 정면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시선을 낮춘 채 기계처럼 양치질을 하거나,
샤워기를 틀어 놓고 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 남기고 나갔다.

자신의 퀭한 눈, 축 늘어진 몸 선,
‘이 정도면 충분히 노력했다’고 스스로를 속여야만 했던 얼굴을
마주하기 싫어서였겠지.

촤아아—
샤워기 물소리가 멈췄다.

뜨거운 물을 썼는지 욕실은 금세 안개로 가득 찼다.
내 표면에도 하얗게 김이 서렸고,
K의 형체는 물속 그림자처럼 흐릿해졌다.

“후우…”

그의 입김이 닿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젖은 손이 앞으로 뻗어 나와
김 서린 내 얼굴을 거칠게 닦아냈다.

뿌드득.

유리 닦는 소리와 함께
안개 뒤에 숨겨져 있던 K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의 적나라한 모습을 비췄다.
5년의 회사 생활이 만든 거북목,
야식과 술이 아직 놓아주지 않은 옆구리 살,
햇빛을 못 본 피부의 창백함.

영웅의 몸은 아니었다.
다만, 성실하게 닳아버린 사람의 몸이었다.

그런데도 K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턱을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제까지의 동태 눈깔은 아니었다.
지쳐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눈.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치익.

쉐이빙 폼이 턱 위에 쌓였다.
며칠, 아니 몇 주간 방치했던 거뭇한 수염을
면도기가 하나씩 밀어냈다.

사각, 사각.

그 소리는 수염을 깎는 소리이면서,
팀장에게 깨지고 술로 버티던 밤,
구두를 벗지도 못한 채 침대에 쓰러지던 밤,
이불속에서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던 시간들을
조금씩 지워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머리를 감고, 물기를 털어낸 그는
드라이기를 들고 천천히 머리를 말렸다.
꼬리빗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넘기는 손길은
잠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지만,
그 흉내의 주인은 이제 K 자신이었다.

평소엔 감는 둥 마는 둥,
말리지도 않은 채 부스스한 머리로 출근하던 그였다.
오늘은 달랐다.
포마드를 바른 머릿결에는
방치의 번들거림이 아닌, 준비된 윤기가 묻어 있었다.

세수를 마친 K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다시 나를 보았다.

말끔해진 턱선,
물기를 머금어 생기가 돌아온 피부,
정돈된 머리.

그는 양손으로 젖은 볼을
찰싹, 찰싹 두드렸다.

“가자. K야.”

이번엔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 비친,
그리고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쫄지 말고.
너는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니까.”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웃어 보였다.
비굴한 사회생활용 미소가 아니었다.
초라함까지 끌어안고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긍정의 웃음이었다.

K가 욕실을 나갔다.
불이 꺼졌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김 서린 거울을 닦아내던 그 손의 힘을,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던 그 눈빛을.

그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자기 인생의 주인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System Warning]
[Object Connection Ending…]
[사물 접속 모드를 종료합니다.]

[Final System Alert]
강아지, 핸드폰, 구두, 노트북, 스피커, 그리고 거울까지.
모든 사물과의 접속이 해제되었습니다.
긴 여행이 끝났습니다.

[Log-in Target Changed]
대상: 나 자신 (Myself)
마지막 접속을 시도하시겠습니까? (Y/N)

나는 마음의 눈동자로
조용히 Y를 눌렀다.

불이 꺼졌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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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화 예고]

드디어 K로 돌아온 K.
사물의 시선이 사라진 뒤,
그를 둘러싼 세계는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팀장과 동료들의 반응,
그리고 사물들을 바라보던 태도마저 변할 수 있을까.

다음 화,
K는 더 이상 거울을 닦지 않아도
자신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