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게 되는 이유
어떤 작품은 마지막 문장을 쓰는 순간 비로소 손에서 놓입니다.
이야기가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느낌이 들고 그동안 함께했던 등장인물들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고 나서도 조용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 바람 시리즈가 그랬습니다.
한 편, 한 편 정리해 나가며 이제 정말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하게도 인물들이 아직 떠나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희성의 시간,
다온의 선택,
그리고 그들이 지나온 조선이라는 공간. 이야기는 정리되었는데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혼자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대단한 기획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이걸 누가 읽어줄까.”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좋은 작품들도 많고 훌륭한 작가들도 많습니다.
그 사이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괜히 혼자만 진지해지는 건 아닐까. 이 이야기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생각보다 오래 따라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구상해 두었던 아이디어를 일부러 덮어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다시 메모장을 열게 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생각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은 짧은 문장 하나가 떠오르고,
어느 날은 등장인물의 대화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게 메모를 남기다 보면 처음에는 서로 상관없어 보이던 생각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메모였던 것이 어느 순간 작은 이야기의 조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조각들이 모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갖기 시작합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짜일까? 실제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써나갔습니다.
새로운 시리즈를 구상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거창한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금씩 이어지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다시 생각해 보고 이야기가 흘러갈 방향을 정리해 보며,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합니다.
어떤 장면은 쉽게 이어지지만 어떤 장면은 며칠 동안 멈춰 있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생각이 점점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뀌고
장면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이 바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은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과정의 한 장면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 남기는 글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권의 책이 완성된 결과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뒤에는 이런 시간들이 있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가 읽어줄까 하는 걱정과 그래도 한번 써보자는 마음 사이에서 조금씩 만들어진 이야기.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은 또 세 번째 시리즈 출간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는 이미 제 손을 떠나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성장하는 유블리안 작가에게는 여러분들의 하트 하나가 매우 큰 힘이 되고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응원에 힘입어 다시 다음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과정이 계속되는 한 이야기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