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에서 파일까지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블로그에 남겨둔 글도 그렇고 브런치에 연재한 글도 그렇습니다. 글은 이미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책이 되기까지는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합니다.
바로 “파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전자책은 종이책처럼 인쇄를 하는 대신 하나의 구조화된 파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전자책 제작은 글을 쓰는 작업과 파일을 만드는 작업이 함께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자책 제작의 첫 단계는 원고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글을 그대로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책의 흐름에 맞게 구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보통은 이런 순서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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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블로그 글을 모아 책을 만들 때도 단순히 복사해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책의 흐름에 맞게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 하나하나는 이미 존재하지만 그 글들이 하나의 책처럼 읽히도록 구조를 잡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전자책은 페이지가 아니라 구조로 움직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원고 정리가 끝나면 이제 전자책 파일을 만드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전자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형식은
EPUB입니다.
EPUB는 전자책을 읽는 기기에 맞게 글이 자동으로 배열되는 구조를 가진 파일입니다. 그래서 전자책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해 본문을 정리하고 목차를 연결하며, 표지 이미지를 포함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디자인이 아니라 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문단 간격, 목차 연결, 이미지 위치 같은 것들이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지만 몇 번 만들어 보면 전자책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1인 출판사의 경우 대부분 본인이 쓴 글을 책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의뢰받은 작가의 글을 다룰 때는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책 속에 녹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출판사의 판단만으로 글의 흐름을 바꾸거나 문장을 마음대로 고쳐버리면 그 순간부터 신뢰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책은 편집으로 완성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존중 위에서 만들어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작가와 출판사를 함께 하는 경우에는 제가 의도한 방향을 제가 직접 글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작가의 글을 편집할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얼마나 충분히 소통하느냐, 그리고 그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느냐가 책의 완성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권의 책은 글을 쓴 사람과 그 글을 책으로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전자책 제작 과정을 지나면서 처음에는 막연하게 느껴졌던 출판이라는 일이 조금은 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전자책이라는 형식 덕분에 책을 만드는 길은 조금 더 넓어졌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책을 만드는 경험을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가져다준 셈입니다.
원고에서 파일까지. 처음에는 멀게 느껴졌던 그 과정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이 시리즈를 쓰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글로 브런치에 올린 글이 어느덧 299편이 되었습니다.
다음 글이 300번째 글이 되는 셈입니다.
「원고에서 파일까지」 시리즈는 여기에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전자책을 어떻게 만드는지 정리해 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전자책 제작부터 유통, 그리고 출판을 바라보는 생각까지 여러 이야기가 함께 담기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은 에필로그처럼 가볍게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300번째 글을 맞아 제가 글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주제를 정하고 어떻게 글의 뼈대를 만들어 가는지 조금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그 이야기에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