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장 | 협력사와 일하는 기술

배려를 통한 마음과 마음 잇기

by 유블리안

[Chapter 1] 부탁이 쌓이면 압박


명절이 다가오면 의류관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진다. 식품관은 선물세트를 사려는 고객들로 긴 줄이 늘어서는데, 우리 쪽은 썰렁하기만 하다. 매출표를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더 힘든 건, 이 시기를 틈타 협력사 관리자들이 연이어 찾아와 부탁을 건넬 때다.


​“관리자님, 이번 행사에 우리 브랜드도 좀 껴주셔야죠. 저 매대라도 하나 빼주시면 안 됩니까? 그리고 POP 신청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 안 갖다 주세요? 매출 없다고 홀대하는 건가요? ”


​그 말에 나는 표정 관리를 하고 웃는 얼굴로 대답을 내놓는다.


“홀대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처리해 드릴게요.”


​하지만 웃으며 답하는 것과 달리 나의 마음은 지쳐 있었다. 부탁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부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명절은 늘 그런 식이었다. 웃으며 넘기지만 속은 점점 바스러져 갔다.




[Chapter 2] 사소함에서 터진 갈등


​어느 날 오후, 결국 진열대 위치 문제로 큰 소리가 났다. 한 협력사 매니저가 다른 직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따져 물었다.


​“관리자님, 저쪽 브랜드는 항상 고객 동선 좋은 자리를 주시면서 왜 우리는 늘 구석입니까? 형평성이 너무 안 맞잖아요.”


​날카로운 말투에 주변 직원들까지 긴장된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봤다. 매장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감출 수 없었나 보다.


​“자리가 중요한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려면 매출도 따라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브랜드는 그냥 죽으라는 거잖습니까! 이럴 바에야 본사에 얘기해서 그냥 제가 그만두겠다고 해야겠네요!”


​그의 절박한 목소리에서 지난 분기 실적 부진으로 본사에서 얼마나 압박을 받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 순간 내 표정도 굳어버렸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인상 한 번 잘못 쓰면, 누군가 제물이라도 될 것처럼 모두가 숨을 죽였다.




[Chapter 3] 마음을 잇는 다리


회의실을 나와 늦은 밤까지 텅 빈 매장을 돌았다. ‘우린 늘 뒷전이잖아요.’ 낮에 들었던 말이 가시처럼 귓가에 박혔다. 본사의 실적 압박과 협력사의 원성 사이에서, 이 무거운 자리를 전부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결국 답은 '함께' 버티는 데 있었다.


이번 명절엔 의류관만의 작은 이벤트를 협력사와 함께 기획했다. 상품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상품권 구매 하는 고객들에게 선물 포장을 도와 드리고, 상품권으로 의류 구매 하시면 사은품을 별도로 드리는 행사를 기획했던 것이다. 직접 고객에게 홍보도 하고 브랜드에서는 단골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권 행사를 알렸다. 어차피 상품권 선물 받으면 소비를 해야 하니 의류 구매를 유도한 것이 주효했다.


현금으로 상품권을 사서 결제하는 고객도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고객들의 발길이 위층으로 향했고, 직원들 표정에도 모처럼 웃음이 번졌다. 눈에 띄게 큰 효과는 없었으나 협력사 입장에서 '그래도 관리자라고 우리한테 신경을 써주네.' 하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며칠 뒤, 불만이 많던 그 매니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관리자님, 이번엔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직원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그 말에 나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갈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배려와 대화, 그리고 함께 버티려는 몸부림 속에서 위태로운 균형은 만들어진다. 백화점 관리자는 결국 매출을 관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다리'라는 걸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음 회 예고]


위기는 가장 익숙한 얼굴로 찾아온다 ​근속 20년 차 베테랑에게 찾아온 직장 생활 최대의 위기. 오랜 시간 몸담았다는 것이 오히려 약점이 되는 순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고 스트레스는 몸의 이상 신호로 나타납니다.


​매일 아침, '오늘 사직서를 내야 하나'를 고민하던 그때. 문제를 해결한 것은 뛰어난 전략이나 노련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 나를 버티게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