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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Nov 24. 2020

스무 살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너와 나의 간극을 좁히며

과거의 나를 마주친다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스무 살의 ‘나’도, 지금의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건 너와 나 사이에 간격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의 나’를 그저 듣기 좋은 ‘친구’로 부르려고 한다. 






친구야!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명패 삼아 누리던 것들이 있었다. 이름보다 나이를 먼저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 많은 시선이 너를 향했고, 너는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들뜬 설렘도, 주고받는 미소 속에 숨겨진 저의도, 이유도 모른 체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던 스무 살이 너는 정말 좋았는지 궁금하다. 누구나 한 번쯤 돌아가고 싶어 하는 스무 살이, 나는 전혀 그립지가 않다. 모든 기준이 나의 바깥에 있었던 스무 살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구야, 그렇기에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꼭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해. 다른 이들의 기준에 너를 맞추지 않았으면 해. 혹여나 마음대로 잘 되지 않더라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면 해. 다른 사람들의 만족보다는 너 스스로에게 만족했으면 해. 그리고 주변을 좀 더 사랑했으면 해. 


모든 것이 낯설고 불완전했던 나의 스무 살은 때아닌 장마 같았어. 비가 내릴 날씨가 아닌데 비가 내려서 너무 당황스러운 날씨 있잖아. 모두가 좋겠다 좋겠다 하지만 그저 추적추적 비가 내려 운동화가 젖은 찝찝함. 나는 너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 







친구야! 

세상에 많은 스무 살이 있지만 담대하고 용기 있는 스무 살은 몇 명이나 있을까 싶어.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본인의 부족함을 공개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왜일까. 그건 스무 살의 잘못일까 스무 살을 둘러싼 어른들의 잘못일까. 나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조차 오지랖이라고 치부되는 세상이 너무 슬퍼. 우리가 조금만 더 이타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스무 살이 좀 더 멋있어질 수 있을까? 



너는 나에게 무엇이 궁금하니? 우리는 건널 수 없는 큰 물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네가 어렴풋이 보여. 너도 내가 보이니? 너에게 비치는 내 모습은 어떠니? 조금은 봐줄 만하니? 네가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이니? 아직까지 호기심이 많은 걸 보면 너와 여전히 닮았고,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건 큰 변화야. 너에게 글을 보내고 나는 바람을 쐬고 싶어. 그러면 어렴풋이 스무 살의 9월이 생각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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