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
그냥.
초록 내음이 가득한 숲의 일렁임은 그냥 좋다.
뭉게구름이 가득하든, 구름 한 점 없이 여백한 하늘이든 하늘을 보는 것도 그냥 좋다.
작은 화면 속에서 일정한 이야기들이 풀려나가는 영상이라는 매개체는 그냥 그냥 계속 보고 싶다.
어둠 속에서 찾아낸 희미한 빛으로, 침침한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텍스트의 집합은 그냥 유익하다.
의무적으로 욕심내서 먹는 괜찮은 한 끼는 누구와 함께하든 그냥 좋다.
계절을 막론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둠의 시간 역시 그냥 좋다.
여름밤은 사랑에 빠지기 쉽고, 겨울밤은 손을 잡기에 좋아 어찌 됐든 좋다.
학생들이 가득한 붐비는 학교도 좋지만, 아주 이르고 아주 늦은 시간의 학교도 그냥 좋다.
수업을 준비하며 생각하는 교실도 좋지만, 오감을 마주하며 함께 하는 교실이 그냥 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부족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그냥 마음이 가고,
말하지 않은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에게 그냥 눈길이 간다.
평소에 나답지 않은 언행에 대꾸할 수 있는 말로는 ‘그냥’이 좋다.
용기 내어 말하기엔 조금 낯 뜨겁고,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기엔 논리가 애매하고,
내 마음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때에 신음처럼 흘려보낸다.
- 오늘따라 달라 보여.
-...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