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사직서 실행에 옮기다
스스로 그만두는 자발적 퇴직과 회사 요청에 의해 그만두는 권고사직.
내 발로 걸어나갈 지언정 잘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업무에 임하지만,
혹시나 인사권자의 눈에 날까, 혹시나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강제퇴직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여건으로 인해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경우나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에 실직을 하게 되는 경우,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
경제적인 어려움과 마주합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4년마다 한번씩 치뤄지는 선거에서 선택을 못 받아 의원실이 폐업하는 경우가 30% 이상이니,
선거철만 되면 이직의 물결이 거세지죠.
그나마 자신만의 무기로 성과를 인정받는 이들은 다른 의원실에 재취업하지만 자리를 잡지 못해 떠도는 이들 많고 그나마 역량이 뛰어난 보좌진들도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정당의 의석 수가 줄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기 때문에 자리를 못잡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소신이라며 실직 상태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보수정당 보좌관이 능력을 인정받아 진보정당의 보좌진으로 기용되는 사례도 가끔 나타나곤 하지요.
업무강도와 성과에 대한 중압감으로 빈 A4 용지에 사직서를 써내려 간적이 없는 보좌진이 있을까요.
요동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사직서로 달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사직서를 수차례 썼습니다.
다른 보좌진들은 교체됐지만 저만 살아남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심부름이나 하는 쫄병이었으깐 크게 성과에 책임질 군번이 아니었다 뭐 그런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하여간 제가 막강한 사람같던 그 좋던 시절은 얼마 못갔고, 새로 들어온 보좌진들이 저를 그만두게 하려고 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직서를 썼습니다. 그때 당시 수석보좌관은 저에게 의원의 뜻이라며 그만 둬 줄 것을 종용했고, 정말 맞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수석보좌관이 의원의 어떤 언질없이 독단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짐을 쌌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10년 가까운 보좌진 생활을 그만두고자 짐을 싸는데 생각보다 짐이 많더군요.
버릴 짐과 버리지 못할 짐을 나누면서 A4박스에 수십권의 수첩을 차곡차곡 쌓던 순간,
지방출장을 마친 의원이 의원실을 들어서며 '너 지금 뭐하니?'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당장 짐 풀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해당 수석보좌관을 호출해 엄청 세게 질책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보좌관은 얼마 못가 그만 뒀기 때문에 그때의 진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보좌관이 채용이 되었고, 저는 10년 가까운 고참이었기에 신입보좌관과 저는 의욕이나 일을 대하는 자세에서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해봐서 아는데 이런 말은 정말 싫어하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신입 보좌관이 의욕적으로 하는 일에 이상하게 딴지를 걸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찰이 있었고, 결국은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는 시기, 때마침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간의 열심히 일한 덕을 본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수석보좌관으로 승진을 하며 다른 의원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하는 초짜 의원이었습니다.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묘하게 흥분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선거전이 진행되던 선거운동 개시일에 사직서를 썼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의원을 만나 옮긴다고 했고 '그래 잘 해라'는 말 한마디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는 나와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해온 사람이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많았고, 고마웠다. 언제든 돌아와라. 늘 함께 하자' 따위의 동지의식을 기대했던 걸까요. 그 말 한마디가 10년 보좌진 생활에 대한 최종 언급이라고 생각하니 서운함이 스쳤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사직서는 임신을 했을 때였습니다. 마음의 사직서가 본격화되었던 시기입니다. 국회 생활 10년차를 넘어서고 있었죠.
임신하고 나서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책상 서랍 제일 윗칸에 넣어놓고 여차하면 사직서를 내겠다고 다짐했는데, 생각처럼 실행에 옮기질 못하겠더군요.
지금 그만두면 영영 일을 그만둬야 될 것 같은 불안감과,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욕심과, 배려를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매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실 그때 의원도 의원이었지만 동료와 후배들에게 업무를 가중시키는 것이 몹시 미안했습니다. 내가 빠지면 그 많은 일들을 동료나 후배들이 나눠가져야 할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빠져도 업무는 돌아가고 아니 더 잘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아마도 그게 더 불안하고 싫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에 '임신과 사직서'리는 글에서 썼던 것처럼 배려와 사랑이 넘쳐나던 의원 덕분에 임신후 출산 휴가를 쓰고 임기를 꽉 채워 일을 같이 했습니다만, 어찌보면 이때부터 제 불안함은 이미 시작되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얼마 못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공력을 키우지 못한 채 불안감만 키웠던 것 같습니다.
콘텐츠는 물론 다방면에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변화에 맞는 여러가지 성과를 축적해야 하는데 저는 과거의 방식으로 업무를 대했고, 그것이 결국 바닥을 드러낸 것이죠.
주변의 환경이 저를 고인 물 속에 가뒀을지 모릅니다만, 이 역시도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매너리즘과 스스로의 역량이 한계에 닿을 때, 저는 네번째 사직을 준비했습니다.
공천이라는 과정이 시작될 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지역구를 고를 때 어떤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요. 결론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지역을 의원이 선택했고, 저는 그 결정을 마음속으로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에 계속 겉돌았고, 빨리 공천이 끝나고 선거가 끝나길 바랐습니다. 저는 선출직에서 당선이 되려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인맥을 동원해 의원에게 소개를 했지만 의원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히려고 한다고 싫어했고.
결국 저는 손을 서서히 떼었고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 임신하면서 마음속에 두었던 사직서를 이제 정말 꺼내야 할 때가 다가온 겁니다.
선거 때 그만둔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장수가 전쟁을 그만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기에 저는 당선이 되길 바라면서 바로 당선되는 날 사직서를 실행에 옮길 계획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공천과정에서 탈락을 했고, 또다시 다른 의원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 국회의원을 시작한 일이라 신선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얼마 못가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뭘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았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없이 계속 뭔가 아웃풋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오래전 사직을 결심한 순간 깨달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기 시작한 순간, 제 스스로가 보좌관으로서 수명이 끝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는 점을요.
누구보다 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요.
그래야 끌려나가듯 그만두지 않게 된다는 점을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했어야 합니다.
더 큰 쓰임이 되기 위해 내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점을 말입니다.
저의 사직에 기를 썼던 그들을 비웃으며 '나는 의원이 선택한 사람이야'라고 거들먹 거리는 마음을 먹던 그때 그 순간 이미 저는 끌려나갔을 지도 모른다는 점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