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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상황

- 선 넘지 마

by 유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올 때쯤,

나는 수석보좌관 4년차였고 국회 생활 13년차였다.

한계에 다다른 걸까. 아무리 애써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미로에 갇힌 느낌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생각보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인풋과 아웃풋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인풋없이 아웃풋만 해댔으니 그럴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3년, 5년, 10년 주기로 찾아 왔던 위기를 무시한 채 꾹꾹 눌러와 이제야 폭발한 것일거니 시간 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했다. 그렇게 매너리즘 탓으로 여기며 새로운 공부모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취미를 가지려 애썼지만, 쉽사리 회복이 되질 않았다.

예전에는 하나를 말하면 열가지를 했다고 하면 지금은 열개를 말하는데 그 중에 다섯 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낙제점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앞으로 뛰쳐 나가려는 의원은 그런 내가 몹시 못마땅했을 것이다.

고인물 같고, 곧 썩은 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거다.

더 외롭고 지쳤던 것은 그런 문제를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죄다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만 있었을 뿐.

나와 가깝게 지내며 고민을 터놓던 선배나 동료들은 어느 순간 국회를 빠져나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가끔 만나 위안을 얻는 정도에 그쳤다.

나를 몹시 측은하게 여겼고 공감했지만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이 거지같은 한계상황에 대해서는 '네가 극복할 일'이라는 기조로 결론을 지었다. 보좌진들 특유의 냉정함이 어디 갔으랴.

하긴 보좌진들만 그러하리. 산전수전 겪다 보면 인간 사이 일정한 간격과 거리를 두는 것이 관계를 유지시키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 쯤은 자연스레 파악할 나이지 않던가. 가족 간에 그 거리두기가 안되어서 분란이 되고 갈등이 깊어지는 게 아니었던가. 그들의 말이 어쩌면 더 현실적인 조언일지도.

그렇게 또다시 나의 문제로 회귀되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방황하던 내게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할 계기가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능력이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있으면서 그게 가능해? 아니, 죄다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이라면서, 어떻게 자기PR하지 않고 생존하지?'

조금이라도 국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과 자기는 직접 안하며 주변 사람으로부터 자랑이 나오도록 하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일만 잘 하는 사람, 혼합형인 사람......

국회도 자기 PR에 능한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유형의 사람들이 지지고 볶으면서 지내는 곳이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일만 잘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아니 일만 잘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입만 열면 자랑하는 사람 틈바구니에서 나는 열심히 일로써 내 존재감을 부각하자는 주의였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나라는 인간을 누군가가 찾아왔다. 함께 일해보자고.

얘기를 많이 들었노라고도 했다. 의아했지만 일단, 나쁘거나 싫지는 않았다.

대통령선거에서 내가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데, 일단 잡았다.

과거에도 대통령선거 캠프에서 일을 했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내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열심히 일했던 초심을 돌아가고 싶었던 절심함이 강했다.

그렇게 몇개월 간 선거 캠프에서 새벽부터 또 이른 새벽까지 17시간 이상 일을 했다.

매일 어떤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숙련노동자에게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선거 이후에 의원실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했기에 연말이 되면 선거 당락과 상관없이 퇴직을 해야 하는 시한부 직장인 신세라는 게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국회 보좌진은 4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인데, 거기에 남은 임기를 아예 버리고 실직하겠다고 나섰으니 얼마나 절실했겠는가.

선거는 이겨야 했다. 물론 오랫동안 한 정당에 속해 일해온 내게 정당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 역시도 중요했다. 선거결과는 승리였고, 그렇게 5년간 국가기관에 별정직공무원으로 일을 했다.




총량의 법칙이란게 있다. 모든 사물에 총량이 있고, 그 총량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인간 삶에도 적용해 인생 총량법칙이라는 말이 나왔다. 즉 인생 희노애락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젊어서 기쁨을 많이 느껴다면 늙어서 기쁨을 덜 느끼고 거꾸로 젊어서 고통을 많이 느낀 사람은 늙어서 고통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인간 능력에도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 내 역량의 얼마를 소진한 것일까. 삼사십대를 지나오면서 내가 가진 역량의 90퍼센트를 쓴 것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50퍼센트를 넘기지 않으려고 기를 썼던 것일까.

새로운 상황과 여건이 되면 일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어쩌면 역량의 총량은 상황과 여건이라는 변수에 따라 바뀌는 건 아닐까 싶다. 그 변수인 상황과 여건을 만드는 것은 '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상황과 여건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한계에 다다랐던 내게 찾아온 그 기회는 한계에 다다르기까지 치열하게 노력했던, 열심히 일을 했던 시간이 쌓여 가능했을 거다.

그 변수를 관리하는 일, 내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은 가장 힘든 일이다.

내가 가진 역량과 감정을 잘 다스리면서 한계상황에 다다를 때 적절히 전환점을 찾아갈 줄 아는 지혜,

남들이 어떻게 살든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뚝심,

그리고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지키도록 하는 성찰이 나의 중년의 삶을 만들어가는 키워드가 되었으면 한다.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에서 탈바꿈해서. 물론 아주 아주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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