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저런 꼰대가...
언제부터인가 아주 사소한 일도 꼰대로 오인될까 걱정이 늘었다.
무심코 던진 안부의 말이나 궁금함의 표현도 꼰대처럼 들릴까 말을 뱉고는 울찔했다는 주변 지인들도 많다. 그냥 멋진 후배에게 멋지다고 말하는 것도 불쾌감을 줄 수 있으며 삼가하라는 지적을 받아 속상해하는 후배들도 여럿 봤다.
재미삼아 보는 꼰대 테스트도 많이 나와 있고,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무조건 하지 말라는 식의 꼰대 방지 지침 같은 것도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권위는 없는데 그런 척하는 사람에게 '적'을 붙여서 권위적이라고 말한다.
권위(權威)는 어느 개인, 조직, 제도, 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말한다.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마치 영향력이 있는 사람처럼 구니 재수없다는 뜻으로 꼰대라고 부르는 거다.
그런데 아무리 존경받고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때는 말야'를 읊조리는 순간 하루아침에 꼰대로 낙인찍혀 버린다는 것에 씁쓸함이 스친다. 얼마전 TV인기 드라마에서 선배 의사가 후배에게 조언을 하다가 '나 꼰대같았지?' 하는 장면을 봤다. 실상은 전혀 꼰대의식이 없는 사람도 말하다가 자기검열을 할 정도라니 꼰대가 정말 여러 사람 잡는구나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혹시 20년전 그 선배와 닮아 있는거 아냐. 미워하면서 닮는다던데....
가끔 사람들이 나한테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로 내가 권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권위적인 사람이라는 걸 에둘러 표현한건데 못알아 듣고 있는거 아닌가. 아뿔싸. 나를 반추해보게 되었다.
20년전 나의 사수는 나보다는 나이가 너댓살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수석보좌관답게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여기저기서 찾아와 풀지 못하는 숙제를 상담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보스(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여러 호칭이 있으나 여기서는 편의상 '보스'다. )도 수석보좌관 얘기라면 전폭적으로 신뢰를 했다. 성과도 우수했다. 뭘 해도 깔끔했고, 핵심만 정확히 짚어냈다. 원하는 바를 철저히 관철했고, 관철 뒤에는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해주는 기브앤테이크에도 능했다.
보고 배울 점이 많았겠다 싶었겠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다들 그가 가진 영향력에 주눅들어 있었을 뿐, 존경할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간적인 것도 사실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일 뿐, 정말 진심일까하는 의구심을 들게하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무슨 일이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이 추진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그쳤다.
'왜 그따위로 일을 해놓고. 그러니 내가 하라는데로만 해.' 라고 식이었다.
잘난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 하라는대로 해야 하는 건 맞는데 또 그 사람 말이 100퍼센트 정답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자신이 말하는대로 상황을 유도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야할까.
산더미 같은 일을 당장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꼭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느즈막히 사무실로 들어와 성과물을 점검하는 나쁜 습관을 가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새벽 3시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도에 지나친 행동에 나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일단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한테 개기는거니, 여차하면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직서부터 썼다 (까짓것 안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일의 성과보다도 과정도 중요하다며, 최소한 연락을 해서 퇴근은 시켜야 우리가 다음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지 않냐'며, '이렇게 저렇게 주시는 가이드라인도 이젠 지겹다.'며 조목조목 반박했었다.
그 논리를 준비하느라 며칠밤을 고민 했다. 나의 갑작스러운 폭발에 처음에는 뭔가 얘기하려던 선배도 어이가 없었는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다들 그 사람의 영향력이 주눅들어 있는데 한참 뒤늦게 들어온 내가 개기니,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만하라는 무언의 압박도 있었지만, 그래 속시원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뭔가 이룬 듯한 성취감도 들었다.
며칠간의 침묵. 사수가 먼저 침묵을 깼다. 조용히 회의실로 불렀다.
그가 건넨 말은 '고치겠다'였다. 그렇게 내가 너희들을 힘들게 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며 나는 일을 할때 성과만 우선 생각하는 사람이라 여러모로 부족하고 불편하고, 힘들었겠다며.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야 여러가지 정보를 듣고 판단할 수 있으므로 저녁늦게까지 미팅을 하고 그랬는데 그 과정에서 미쳐 생각이 짧았다고 도 했다. 그러면서 사과했다.
그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은 의아하게도 일부러 괴롭히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고통받고 있었는데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소통능력 제로라며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악담 비슷한 얘기도 난 쏟아냈던 것 같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며 대화를 하다보니 서로 생각의 간극이 꽤 크다는 걸 깨달았다.
그전까지 아무도 그에게 그의 이상한 행동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잘 한다는 칭찬만 받아왔으므로, 또 후배들도 따라왔으므로 당연히 그래도 되는지 알았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홀로 밑바닥부터 그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훈련받지 못했다는 점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그를 마주앉아 보면서 측은함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후배들을 키워야 하는 선배의 자리에 앉을 때쯤, 그는 먼저 국회를 떠났다.
나는 수석보좌관이 되었다.
일단, 나는 모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했다. 기자를 만나건, 정부기관을 만나건, 기타 다른 모든 경우에도 어떤 일이며 왜 하는지를 얘기했다.
그런데, 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모두 나와 같길, 나의 마음과 같길 바랬다는 거다.
열정적이길 바랬고,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고 물어보고, 또 필요하면 집요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길 바랬다.
허나 아무도 그런 이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만 하려고 했고 그 이상을 요구하면 강하게 어필했다.
다 니들 훈련되라고 하는거야 라는 말이 꼰대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하지 않거나 수박겉핥기로 하거나,
실력 좋은 당신이나 하세요 등과 같은 저항이 느껴졌다.
나는 휘청거렸다.
내가 그토록 저항했던 그 보좌관의 모습이 내게도 이상하게 움트고 있었다는 걸 느꼈고, 순간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먹먹함이 전해져왔다.
만약 보스가 나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면 나는 곧바로 국회를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떤 기준점을 세워놓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며 강하게 후배들을 압박하고 몰아세웠던 것 같다.
글 한줄을 쓰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쓰지 않으면 안쓴 것과 같다며 후배들 눈높이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완성도와 혼신을 요구했던 거다.
나의 사수에게서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지 했던 공감능력 없음을 나도 고스란히 전수받았던 건가.
성과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던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성과가 최우선이다 보니
균형감각을 잃고 말았다.
최근 연합뉴스에 '정시 출근하는 직원 얄밉다면 꼰대인가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후배에 대한 글을 한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그 글에 대한 반응을 실은 기사로 사오십대 직장인들은 20분 정도 일찍 출근하는 것이 직장인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반면 이십대는 출근시간만 지키면 되지 일찍 출근하는 것을 강요하면 안된다는 서로 상반된 견해를 소개했다.
가끔 후배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인식이 많이 차이가 난다는 걸 종종 느낀다.
굳이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일을 찾아서 하는 거는 노동을 더 하는 것이므로 댓가가 있어야한다는 후배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왜 그런지 못내 서운한 감정이 일고는 했다.
무조건적인 희생이나 헌신은 금지가 된 것 같고 내가 살아온 삶 역시 부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부쩍 벙어리 냉가슴이 많아졌다.
시키지 않아도 아 하면 어 하는 후배도 있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는 후배, 시키는 것도 꾸역꾸역 하는 후배, 시키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후배, 그들 전부 존중해야 한다니 롤로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도 부족한 사람인지라 시키지 않은 일을 다각도로 고민해오는 후배들을 볼 때면 사명감과 에티튜드에 이끌려 마음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제 업무영역을 묵묵히 지키며 다른 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날그날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후배들은 답답해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지금도 사실 답답해한다.
그런데 그런 후배들을 바꿔야 한다,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더 힘들어진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친구에게는 제대로 된 방향을 고민하도록 해주고, 그날그날 주어진 일만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고민을 하면 어떨까 넌지시 화두를 건내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찾도록 노력해줘야 한다.
이래야지, 저래야지라는 너는 왜 이건 못하냐, 이런 말들은 괜스레 감정만 건드릴뿐이다.
나의 국회생활 첫 사수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훈련받지 못하고 수석보좌관이 되었듯,
후배들 역시 제대로 된 역할을 훈련받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내가 느끼는 걸 솔직히 얘기하고 후배들과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나의 답에 맞춰 그들을 보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이 불만족스럽다. 단점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후배와 마주앉아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난 오늘도 용기를 낸다.
꼰대 소리 들을까 무서워 침묵하고 외면하고 참기 보다는 솔직한 것이 서로에게 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초년병 눈에 이상하게 비친 첫 사수에게 항의하기 위해 사직서까지 썼던 그 용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