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쓰는 결혼은 통장 합치기 부터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나는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다행인것은 장학금으로 대부분의 학비를 충당했기에
나 역시 학자금 대출 등의 빚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들보다 늦은 취업과 짧은 경력으로
나 또한 모아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끝낸 우리 둘은
신혼여행과 막바지 결혼 준비에 사용할 돈을 계산하여 미리 빼두었다.
그리곤 서로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이천 만 원을 만들어 전세 계약금을 내었다.
우리가 선택한 신혼집은
인천 부평 지사로 출퇴근이 가능하도록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이었다.
갈아타기는 해야했지만, 사통발달한 9호선의 입지에 있는 곳이라
강남으로 자주 나가야 하는 미대오빠에게도 딱 좋은 위치인
양천구 목2동(염창역 도보 5분 거리)에 있었다.
전세 6,500만 원의 다가구 주택 중
방 두 개가 있는 2층의 한 호실의 그 집은 빨간 벽돌로 지어졌다.
내가 사는 친정집에서도 책이 많은 까닭에 꽤 큰 방을 나는 썼었는데
신혼집 전체가 내 방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
"서울이랑 부산이랑 땅 값 차이가 얼만데!"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는
미대오빠와 나란히 누울 침대 하나만 들어갈 방 한 칸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해 할 예비 신부였다.
돈에 맞으면 집이 마음에 들지 않고
집이 마음에 들면 돈에 맞지 않은 집들을 몇 군데 보고 난 후.
보여 줄 수 있는 곳은 이 곳이 마지막이라며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그 집에 갔다.
할머니 한 분이 집을 지키고 계셨는데
아이를 돌봐주러 온 부모님이라하셨다.
우리처럼 신혼집으로 이 집에 들어와
아이가 둘이 되어 넓혀서 이사를 간다시며
예비 신혼부부인 우리를 반겨주셨다.
우리 보다 먼저 신혼 부부였던 이들의 행복이 물들길 기대하며
우리는 마지막으로 본 이 곳을 신혼집으로 하기로 했다.
전세자금대출로 모자란 4,500 만원을 충당했는데
빚이란 그 무거운 책임은
직장을 다니며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어있던 내 몫이 되었다.
카드를 사용할 때에도 할부 한 번 사용치 않던 내가
신혼집의 전세자금대출로
내 인생 첫 대출을 실행하였다.
그까짓 4500만 원이야 금방 끌 줄 알았다.
아니
금방 끌 수 있을 줄 알았다.
1n 년 전 그때,
당시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여자 연봉치 고는 꽤 괜찮다 했던 3천이 넘는 내 연봉에
막 사업자를 내고 일을 시작하자
몇 천 단위로 통장에 돈이 꽂히는 미대오빠의 일.
"공인인증서 비번 뭐야?
통장 다 내놔.
앞으로 돈 관리는 내가 한다."
셈에 약한 미대오빠는 상대언니인 나를 믿었는지
흔쾌히 개인통장 사업자통장 할 것 없이 내게 모든 경제권을 넘겨주었다.
"다행히 빚은 없네."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고,
카드 할부나 현금서비스 내역도 없었다.
카드 내역서를 훑었지만 딴 짓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돈 없는 건 알고있었고.
내가 모르던 빚이 튀어나오면 안되니까 확인했는데.
합격!"
"거봐, 오빠가 돈도 빚도 다 없다고 했잖아!"
내 합격도장에 기분이 한껏 오른 미대오빠는
또다시 의기 양양해졌다.
그때의 우리는 분명 희망에 차 있었다.
우리의 빚이라 쓰고 내 빚이라 읽는 4,500만 원은
둘이서 버니까
전세기간 2년이면 다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늘 인생은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 걸 모른 채 그저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용 쓰는 삶으로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