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쓰는 결혼 4

신혼집을 구할 수 없는 그의 사정

by 딱좋은나

서울로 오자마자 부동산을 찾았다.


이곳 저곳 보여주는 집들을 보며

이게 내 신혼집일까, 저게 내 신혼집일까?


기약없이 신혼집을 찾아다니며 알게 된 사실.



No.1

몇 해 전 미대오빠는 좋은 뜻으로

먼저 결혼한 그의 형에게 명의를 빌려주었다.

그래서 지금 서류상으로는

그의 이름으로 된 아파트가 있었지만

명의 이전이 쉽지 않은 상황에다

전세입자가 살고 있어 담보대출을 할 수 없었다.



No.2

대학 졸업 후 여지껏 미대오빠는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결혼 할 만큼의 돈이 없었다.


영화판이 상업미술이긴 했지만

당시엔 표준근로계약이 도입 되기 전이라

열정페이를 겨우 받거나

가끔은 통 계약을 한 미술 감독에게

인건비를 떼이는 일도 빈번했다.



No.3

그런 저런 이유로 국세청에 종합소득세로 신고된

미대오빠의 소득은 또래 아니 나에 비해서도 한참 적었다.

그때 당시 DSR을 보지 않더라도

그 어던 대출이 불가능한 소득 수준이었다.



No.4

영화미술 회사를 다닌 적이 있기는 하지만

결혼할 당시 미대오빠는 4대 보험이 가입되지 않은

프리랜서직이라 전세자금 대출이 불가했다.

(이 마저도 내가 서울에 와서 반나절만에 알아낸,

미대오빠 자신도 자신에 대해 모르던 사실들이었다.)



미대오빠는 2년 반 동안 나를 만나면서도

결혼을 멀고 먼 얘기로 생각했었는지

계획하고 모으며 살던 인생이 아니었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 배운 건지는 모르겠으나

호기롭게 데이트 비용은 무조건 남자가 내는 거라했다.


가까운 거리도 걷는게 아니라 차를 탔다.

버스는 타지 않았고, 택시를 탔다.


지갑에 들어가는 천원짜리는 있어도

나올 땐 늘 만원짜리였다.


현금을 쓸 때에도 현금 영수증 따위는

절.대. 받지 않았다.



하고 다니는 꼴은 별로라도

하도 돈을 잘 쓰길래

나와는 전혀 다른 직군의 그가 혹시 현금부자인가 했지,

그렇게 얄팍한 주머니 일거라곤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조금 더 일찍 재정 상태를 알아봤어야했는데

연애가 처음인것도 아니면서

보이는대로만 믿었던 나는 수치스러울 정도로 순진하였다.



서울~부산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에서

휴무가 일정한 내가 오가느라 시간을 쓰니

미대오빠 본인은 돈을 쓰겠다 했다.


그래서 기차표나 비행기티켓 구매도

미대오빠 카드를 사용 했다.


그렇게 날 위해선 돈을 잘 쓰던 그가

이렇게나 실속 없던 빈깡통일 줄이야!






"그래서 오빠 지금 얼마 있는데?"



결혼식은 코 앞인데 그가 가진 돈이라곤

얼마 전 먼저 결혼한 룸메이트 때문에 빼게 된

자취방 월세 보증금 500만 원이 전부였다.



결론적으로 미대오빠는

서울에서 신혼집으로 할 만한

월세방의 보증금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예비 시어머니는

결혼을 그리도 미루라 하셨었던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 와중에도

현실성 없는 그는


"오빠가 가진 게 없어 그렇지

그래도 빚은 없으니까 걱정은 마.

돈이야 벌면 되지!

오빠 이번에 드라마 계약 하잖아!"


라며 나를 안심시켰는데.


왜 그땐 그 철없는 소리마저 멋있게 느껴졌나 모르겠다.




사랑의 힘이었을까?

서로에게 미쳐있었는지

내가 그에게 미쳐있었는지

겨우 찾아낸 30년도 더 된 낡은 집을 신혼집으로 정했다.


우리는 부동산에서 알려준 은행에서 나오자마자

가까운 구청으로 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신혼부부전세자금 대출 실행의 첫 번째 조건이

'혼인신고'였기에.


그렇게 나는 프러포즈 따위도 없이

결혼식 4일 전에 서류상 유부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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