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쓰는 결혼 2

용자는 주말 부부 안합니다!

by 딱좋은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봄날,

머리는 까졌지만 잘 생기신 이사님이

나른한 오후를 깨우는 내선 전화로 나를 호출하셨다.


"용 대리야, 커피 두 잔 가꼬 내 방으로 와 봐!"


믹스 커피 한 잔과 녹차 한 잔을 쟁반에 담아

이사실로 들어서는 나를 방긋 미소로 반기시는

이사님의 속내가 무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갸웃했다.


"네, 이사님. 커피 왔습니다!"


자주 볼 수 없는 이사님의 미소에 얼떨떨해하며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건지, 내가 무슨 사고를 친건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답이 퍼뜩 안나왔다.


"용대리야, 앉아봐라.

니 저기 국밥집 옆에 짓는 아파트 다 올라간 거 봤제?

다다음 달에 입주한다는데 혹시 알고 있나?"


부산의 변두리, 산업단지 주위에 있는 아파트.

내 것도 아닌 그 아파트의 입주를 내가 알 리가 있나.


"전혀 몰랐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는

이사님의 미소가 더욱 해사해졌다.


"니 임마, 시집 가고 할 거면.

아파트 같은 거도 관심 좀 갖고 해야지."


일 하러 와서 일만 잘 하면 되지

갑자기 부동산 투기 조장도 아니고

아파트는 왜?



이사님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나는 마치 블랙홀 속에 풍덩 빠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영업부 직속 최고 상관의 말씀에

최대한 근접한 대답을 찾으려 엄청 머리를 굴렸다.




"예, 앞으로 관심 가져보겠습니다.

근데 저 아파트는 갑자기 왜......?"





나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이사님은 나를 낚기 위한 낚시를 시작하셨다.


"사실, 저기에 회사 이름으로 사놓은 게 하나 있는데.

용 대리 니, 거기다 신혼집 안 차릴래?"


"네?"


부모도 형제도 신경 안쓰는 내 신혼집을

이사님이 신경을 써주시네?


3년 근무 기간동안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기숙사를 제외하고는

보도 듣도 못한 우리 회사의 복지혜택, 사택 제공.

이건 무슨 경우인지?




분명히 쌍수 들고 환영해야하는데

나는 이걸 물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저 얼떨떨 했다.




순식간에 정신줄을 놓고 어벙해진 나라는 물고기

아니, 용을 잡으려고

이사님은 밑밥을 죽죽 던져 주셨다.


"솔직히 용 대리 시집 가도 돈은 계속 벌어야 되잖아.

힘들게 멀리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나랑 같이 계속 일 하자고.

본사에 있어야 진급도 잘 되지.

용대리, 대표님이 잘 보고 계신데 앞으로도 잘 하면 좋잖아.

니 후임도 안구해지는데

언제 구해서 언제 가르치고 언제 써먹냐고.

그냥 니가 여기서 조금만 더 고생해라."




조기진급과 우수사원 표창을 받기까지

내 피땀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감개무량한 말씀.




그.러.나.



대표님이 저를 잘 보고 계시든

이사님이 저를 잘 보고 계시든,

나는 내 님을 잘 보고 싶다구요!





"그럼 우리 미대오빠는요?"




"에헤이, 누가 신랑까지 내려오라나.

신랑은 서울에서 계속 돈 벌고.

주말 부부 하면 되지!"



주말 부부?
주우말 부우부?


다른 소리는 안들리고

내 귀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주말 부부 라는 네 글자.




"안돼요, 이사님!"


체면도 필요 없고 자존심도 필요없다.


부지불식간에 내 입에서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장거리 연애를 함에 있어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없다는 것.


그 작은 사실 하나가 내겐

세상이 흔들리도록 힘든 일이었다.


업무 중엔 욕 나오게 바쁘게 일하느라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퇴근 후, 또는 만나지 못하는 주말 처럼

잠시라도 시간이 빌 때면

멀리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내 연인을

나는 그저 힘껏 그리워만 해야했다.


둘이 아닌 혼자인 시간들은

참을성은 없지만 소유욕과 독점욕 강한 내가 견디기엔

아주 많이 어려웠다.


2년 반 동안 연애를 하는동안

부산 올 로케 촬영으로 딱 붙어 지낸 6개월 제외,

고행을 수련하듯

주말 또는 격주 커플이 돼야만 하는

장거리 연애가 괴로워서 결혼하자 했다.


미대 오빠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가정을 꾸린다는 건

생각조차 한번 한 적 없던 사람이었다.


결혼과는 맞지 않은 직업군,

보잘것없는 잔고와 급여통장 내역 등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

그는 결혼하자는 내 말에 대답 없이 머뭇거렸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면 헤어지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래 하자, 해.

어차피 평생 혼자 살 것도 아니고.

언제 해도 할 거 하자, 까짓거!"


목줄 채워 끌고가는 것 처럼

그렇게 이 결혼은 사랑에 미친 내가

억지로 밀어붙여서 하는 결혼이었다.


그런데 '주말 부부'라니?

말도 안 될 소리!





"이사님, 저 그냥 원래대로 부평 지사로 보내주십시오.

가서 본사에서보다 더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부산에 와야 되면 출장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저 서울 가야 돼요. 서울 보내주세요."



"용대리 니, 진심이제.

내 두 번은 안물어 본다?!"


촤르르 걷혀진 커튼처럼

단번에 미소가 싹 걷힌 이사님의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혔다.



"진짜 안됩니다.

저 무조건 서울 가야 됩니다."


울상이 된 나를 보고 이사님이 빠르게 포기 하신 듯 했다.




"알았다. 나가봐라."




내 직속 최고 상관인 영업부 이사님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사실을 나왔다.


미대 오빠랑 결혼해서 한 집에 살 거란 희망 찬 웃음을 머금은 채.





그 때의 나는

한치 앞도 모르는, 정말 무식해서 용감한

용자(勇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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