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오빠 상대언니

용쓰는 결혼생활 1 : 현실성이 없는 내 님

by 딱좋은나

내 남편은 순수미술 중에서도 서양화를 전공한 미학도이다.

하지만 남편이 그림을 잘 그리는지는 연애 2년 반 결혼 1n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왜냐면 내 앞에선 그 흔한 스케치 한번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내 남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미대 오빠는 현실성이 떨어진다'이다.






미대 오빠의 아내로 살고 있는 나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과 수석으로 졸업해

동 대학에서 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완벽한 상대 여자이다.


내가 가진 큰 달란트 중 하나라고 자부만큼 어려서부터 셈(암산)이 빠르고 정확했던 나는

수학 경시대회인 올림피아드 따위에 나가서 일 년에 상 몇 개는 꼭 받아오던 아이였다.



수 좋아하는 아이가 자라 머리가 굵어서부터는 경제, 경영, 회계, 무역, 보험, 금융 등을 6년이나 배웠으니

본능적으로 손익 계산을 하고 셈에 밝아야 하는 게 정상인데....



어찌 된 일인지 나름 제 잘난 맛에 살던 콧대 높던 상대언니가 인생 최대의 선택을 함에 있어서는,

기껏 돈 들여 시간 들여 배운 학문과는 전혀 상관없이 청개구리 같은 선택을 해버렸다.



아마도 전생에 죄가 많았던 탓이겠지?

전생까지 찾지 않으면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선택.

그것은 바로 미대 오빠를 남편으로 한 것이다.







첫 만남에서 내 손을 잡고 "오빠 한번 만나볼래" 라고 먼저 대시한 건 분명 미대오빠인 남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결혼하자" 하고 먼저 말한 건 사랑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대언니, 나였다.



심지어 미대오빠는 내 프러포즈에 즉답하지도 않았다.

'마흔 살이 넘어 띠동갑 연하와 결혼하겠다' 는 현실성 떨어지는 꿈을 가진 그였기에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나로선그의 성에 안 찼었던지도 모를 노릇이다.



나라는 인간은 자존심도 없었을까?

그 때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4 남매를 겨우 키우신 시부모님 슬하 물려받을 재산 하나 없고,

나이 서른다섯이 되도록 모아놓은 돈이 있기는커녕 프리랜서인 직업조차 안정적이지 않았다.

거기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아서 우리의 나이 앞자리 수 마저 달랐다.


이런 미대오빠를 일단! 무조건! 덮어놓고! 반대만 하시는 내 부모님께

나는 호기롭게도 "내가 벌어먹여 살리겠다" 고 했다 한다.

(정말 여러 명이 이 얘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는 쭉 없다며 날 말리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이건 사랑이 아니라 오기라며 그만 고집부리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대오빠와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매 순간 현실성이 없는 미대오빠를 뼈저리게 느꼈다.

개혼인 우리 집과 마지막 혼사인 미대오빠네 사정과 함께 지역 차이를 이유로

스드메, 예식비, 뷔페 모두를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걸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기는 커녕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

그 정도쯤은 써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발언은

사랑 하나로 하는 결혼이라도 결제를 하는 매 순간마다 나를 자존심 상하게 했었다.



거기다 내 예물을 내가 가져간 예단비로 찾으라며

내가 보는 앞에서 예단비를 뚝 떼서 아들에게 주던 당시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도 그저 좋아만 하던,

내 예비남편은 정말 나이만 많이 먹은 철부지였다.



이렇게 곱씹고 돌아보면 번번이 미대오빠를 버릴 이유가 차고 넘쳤건만,

나는 미대오빠와 2년 반을 연애하면서 그보다 더 심하게 현실감각을 잃었던 것인지

내 발등을 내가 찍으며 밑지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현실성 없는 미대오빠와 함께 용 쓰는 결혼 생활 이야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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