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과 오지랖 사이

먼저 어른이 된 내가 맞는 건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by 딱좋은나
오지랖 :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
오지랖이 넓다 : 주제넘게 아무 일이나 쓸데없이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


목동에 살 때 우리집은 필로티 구조의 4층 빌라였다.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필로티 구조가 그러하듯 건물 구석의 사각지대는 늘 있다.

시장도 가깝고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편 쪽으로 난 필로티가 아닌,

골목으로 난 필로티의 구석은 차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근처를 지나가는 중고생들의 흡연 아지트가 되곤 했다.


혹시라도 아이들의 흡연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꼭 한 소리를 하고 지나갔다.

내 옆에 아무도 없던, 남편이 있던, 아이들이 있던 상관없이 잔소리를 했다.


"청소년 친구들! 자, 담배 끄자."


첫 마디는 매우 상냥하다.


"이제 내 집 앞에서 담배 피지마라. 니네 집에 가서 펴.

니가 버린 꽁초 주워라. 침 뱉지마, 더러워! 여기 니 집 아니고 내 집이야.

이 건물에 애기들 많이 살거든. 걔들이 니네들 때문에 피해를 봐야겠니? 안되겠지?

자 빨리 빨리 제 갈길 가! 해산!! 해산!!!!"


두번째부터는 어쩔 수 없는 꼰대 아줌마가 된다.

다행히도 착한 아이들은 죄송합니다. 하고 얼른 사라져줬다.


창문을 열어놓는 여름날에는 열린 창문으로 담배 냄새가 들어오면

방충망 까지 걷어 내고 소리를 빽 질렀다!


"담배 좀 그만 펴라, 냄새 나서 못살겠네!!!!!" 라고.


가끔은 나도 입을 대기 싫은 날에는 주차장 구석에 모여있는 애들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경험상 아이들이 그렇게 몰려있어봐야 좋은 끝은 한번도 없었기에

청소년 계도 차원에서 순찰을 부탁한다고 112에 신고를 했다.


그런 나더러 주윗사람들은 '간도 크다,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또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어른인 내게 대들거나 해코지를 하려한 녀석은 없었다.


나도 한 때는 청소년 흡연자였기 때문에 구석에서 피는 담배

삼삼 오오 모여서 피는 그 담배 맛이 어떤지 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줄 만한 장소에서 그렇게 대놓고 피지 않았다.

친구집에서 피거나 차라리 걸리더라도 내 집 창문에 걸터 앉아 피우거나

바람에 다 날려갈 옥상에 가서 피웠지.

만약 내가 담배피는 걸 누군가가 날 위해 하지 말라는 거라며 말렸다면

나는 그 관심에라도 담배를 끊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잔소리가 또 다른 이에게는 관심이나 애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아이들의 탈선이 절규처럼 느껴져 지나치지 못했다.





모르는 애들, 내가 책임 질 것도 아닌 애들을 붙들고 잔소리를 하는 나를 보며

본인과 상관없는 남에게는 단 0.01%도 관심을 두지 않는 남편은 그랬다.


"오지랖 좀 그만 부려!"


그러면 나는 늘 힘주어 대답했다.


"이게 왜 오지랖이야! 어른으로서 책임감이지!!!!!

인생 먼저 산 선배로서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가르치는 거야!!!

우리는 가르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야! 어른이잖아!!"


그때마다 그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너는 진짜 종교도 갖지 말고 정치할 생각도 하지 마라.

너 같이 이상하게 명분 세운 사람들이 다 망친다." 라고 하며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공부보다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첫째, 몸도 마음도 위험하지 않을 것

둘째, 누구에게도 민폐되지 않을 것

셋째, 상대에게 예의 없지 않을 것

이 세 가지에 해당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행동은 다 용인한다.

이 세가지만 아니라면 모든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해도된다.

대신 책임은 행동의 당사자인 본인이 진다.

본인이 책임 지지 못하고 부모인 내가 대신 사과를 하거나 금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어릴 때부터 나는 별난 딸들 덕에 많은 사과를 했고, 대신 치우거나 대신 처리하거나 대신 물어줘왔다.

그래서 내 딸들은 이제 적어도 첫번째 두번째 규칙은 매우 잘 엄수하며 자라고 있다.





"선생님. 사랑이가 하교 하던 길에 크게 넘어져서 많이 다쳤어요."


사랑이 언니 행복이가 이야기 해주었다.


"어머 어쩌다가!!!"


걱정을 하고 사랑이를 기다렸다.


행복이가 돌아가고 난 한참 후에 온 몸에 반창고를 두르고 온 사랑이가 나타났다.


그 시간에 공부 중이던 남학생 여럿이 낄낄낄 웃었다.


"왜 그래? 애가 다쳤다는데 왜 웃어? 사랑이 철푸덕 넘어지는 거 봤어?"


"이히히히. 넘어지는 건 못보고 넘어져서 바닥에 엎어져있는 거 봤어요.. 낄낄낄."


어지간히도 요란하게 넘어졌었나보다, 넘어진 모습만으로도 이렇게 웃는 걸 보니.

그런데 내 부아가 치밀었다.


"야!!!! 그만 안웃어? 애가 이렇게 다쳤는데 웃음이 나와?

너네는 안넘어져? 니 엄마가 넘어지고 니 여자친구가 넘어져도 그렇게 웃을거야?"


"그건 아니죠!"


"얘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 넘어진 게 웃겨? 왜 웃어! 다친 것도 속상한데!!!!"




부글 부글 치미는 화를 내리 누르고 수업을 어찌 마쳤다.

저녁 식사 시간.

남편 앞에서 오늘 있었던 이 일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또 애들 혼냈어?"


"그럼 혼나야지! 다른 사람이 다치고 상처받았는데! 그걸 웃어?

그게 말이 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요즘 애들이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가끔은 나도 헷갈려."


"네가 평생 책임질 네 새끼도 아니고 그만 해라. 그거 오지랖이다."


"아니!!!!! 나는 걔들을 보면서 내 새끼들이 그렇게 클까봐 걱정됐다고!

걔네 부모님을 내가 다 아는데, 그 분 들이 그렇게 키워서 애들이 그러겠어?

당연히 아니지!!!! 그렇게 안키웠는데도 그렇게 큰 걸 보면서

내가 진짜 어른으로서 어찌나 책임감이 느껴지던지!!!

모르면 알려주고 일깨워주고 가르쳐주는게 어른이지! 오지랖이라니!!!!"


"휴......... 됐다. 그만하자. 밥 먹다 체하겠다."


길어질 내 이야기를 미리 차단하듯 남편이 말했다.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속이 상했다.

화가 났다.


왜 이게 오지랖인가.

공부만 잘 하면 뭐해, 인간이 덜 됐는데!

아무리 상대평가가 타인을 짓밟아야지만 올라갈 수 있는 거라지만.

타인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어서는 안된다.

타인의 슬픔이 나의 위안이 되어서는 안된다.

덜 된 인간들이 꾸려나갈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오지랖인건가?


왜,

다른 사람의 불운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못하고 그것이 웃음의 트리거가 되어야 하는지.

어쩌다 아이들이 이렇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자 또는 과도한 개인주의자가 되었나.


내가 정색을 하고 말을하자 고개를 푹 수그린 아이들의 뒷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속상해 하며 혼을 냈을 때에도 아이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아이는 '저는 안그랬어요 저는 안웃었어요 저는 안그래요' 하고 변명을 했다.

또 다른 아이는 말로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눈으론 다친 아이를 슬금 슬금 보며

사랑이가 넘어졌던 그 장면을 회상하는 것인지 여전히 웃음기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과연 오지랖과 책임감 그 중간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지 못한 나라서 속이 더 상한다.

알려주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혼을 내는 것 외에 달리 알려줄 방법을 모르겠어서.

먼저 어른이 된, 나의 모자람에 눈물이 난다.


남편의 말처럼 정말 이게 오지랖일까?

그렇다면 나는 모르는 척 하고 오지랖을 그만 부려야 하는 걸까?


과연 내 생각처럼 내가 이렇게 열을 내는 게 정말 책임감이긴 할까?

부모도 학교 선생님도 아닌 내가 이렇게 나서서 애들한테 잔소리를 하고

너네 그러면/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거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나는 또 얼마나 잘 살고 어찌나 정의롭게 살아서 아이들의 짧은 생각과 행동을 비난하고 있는 걸까.


오지랖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며칠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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