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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Oct 11. 2023

헌옷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사를 앞둔 것도 한 몫했지만 큰 마음을 먹고 옷가지를 정리했다.


옷을 정리할 때마다 항상 나는 헌옷수거함을 이용해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헌옷수거업체를 통하여 단돈 몇 천원이라도 번다.


그때 그때 버리라고 잔소리하는 남편도 

이제는 헌옷이 쌓여가는 팬트리를 답답해하면서도 입을 대지는 않는다.


나의 미련함이 돈으로 바뀌는 순간 내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렇게라도 돈 벌어서 니가 좋음 됐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남편은 이렇게 가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배려해준다.







여기저기에서 물려받은 옷들로 키우는 내 아이들은 물론 새 옷을 살 일이 잘 없다.


우리 아들은 새로운 옷을 보면 "이거도 OO형아가 준 거야?" 라 웃으며 묻고,

둘째 예삐는 섬유유연제 냄새만으로도 그 옷의 출처를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어! 이거 OOO 냄새인데!" 하고 말이다.


초등 고학년임에도 아직 우리 딸들은 착하게도 물려받는 옷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받은 옷이라 스타일이 제각각이라도 잘 코디해서 입기도 한다.


고맙기도 하면서도 미안한 게, 

따지고 보면 옷의 가짓수가 많은만큼 정작 입을 건 또 없다는 사실이다.


크는 시기가 아이들마다 다르고 물려준 아이와 내 아이의 몸매가 다르다보니 

소매가 맞으면 품이 너르고

다리 길이가 맞으면 배가 줄줄 흘러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이들이 질색팔색하는 스타일의 옷들은 

여리 여리 여성여성하기에 보기에만 좋을 뿐 도통 입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은 입겠지 철 바뀌면 입겠지 어디 갈 땐 그래도 입어보겠지 하고 쌓아둔 옷들을 보며 

정리 한번 하자 하는 큰 마음 한 번 먹는게 그간 참 어려웠다.


이사를 가야하니까. 하는 핑계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셈치고 손을 놀렸다.


그리고 나온 헌 옷이 이만큼이다. 

41kg.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맥시멀리스트도 미니멀리스트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구석 구석 입지도 않는 옷을 쌓아두고 살았다니.

손수레에 실린 옷들의 덩치를 보며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코팅이 벗겨진 후라이팬과 함께 오늘 헌 옷을 팔아 번 돈은 23,300원이다.

역대급으로 큰 돈을 벌어 기분이 좋아야하는데 나의 미련함에 그다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휑해진 팬트리 공간만큼 내 마음도 휑하다.


뭐한다고 이렇게 쌓아두고 살았나.

결국엔 버리고 말 것을.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고 자랑을 했지만 남편도 말 없이 웃는 이모티콘만 보냈다.

그의 웃음의 의미가 절절히 느껴져 

이제 다시는 앞으로 절대로 헌옷을 쌓아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은 또 커다랗고 질긴 봉지를 구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조기 뒤에 두며 못다버린 짝 없는 양말을 가져다 넣는 나이다.


미련한 미련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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