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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Nov 14. 2023

집은 파는 게 아닌 것 같다

이 돈으론 다시 살 수 없을 거 같아서

이사를 가야 하지만 전세가 나가지 않는다.

월세로라도 나가라고 며칠 전 부동산에 얘길 해두었는데, 문의 조차 없다.


2년 반 전 환호를 지를 정도로 기뻐하며 다자녀 특공이라는 제도를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시간은 쏜쌀같이 흘러 내가 분양 받았던 아파트의 입주 기간이 지난달부터 시작되었다.

제발 이 입주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는 이사를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전월세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니 속이 바싹 바싹 탄다.


기약없는 이사 날짜를 기다리며

부동산과 손님을 기다리는 상시 대기 상태로 지내자니 힘도 들고 내 속이 너무 너무 불안하다.

그래도 지난달에는 전세를 보러 다녀가는 사람들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부동산에 확인해보면 다들 관망한단다.

무어가 문제인지 깨끗하다 깔끔하다 이쁘다 하면서도 도통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이번달부턴 집 보러 오는 사람조차 하나 없다.

불안에 불안이 더해진다.


나 이러다가 입주도 못하는 거 아닐까? 어쩌나?

집을 날려야 되는 건가? 미치겠네.

전세가 안된다면 매매라도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금을 받으면 지금 내가 사는 엄마 집의 주택담보 대출을 모두 상환할 수 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나는 집담보로 사업자 후순위 담보대출까지 받아 홀랑 홀랑 다 썼다.

아파트 분양 계약금도 냈고, 상가 분양 계약금도 냈다.


그래서 다른 집들에 비해 전세가가 높지는 않지만, 메리트가 있는 금액은 또 아니다.

만약 내가 내건 조건으로 전세입자가 들어오더라도 대출을 모두 끄고 나면 내가 가져갈 돈은 없다.


살던 곳에서 나올 돈이 없으니, 입주하는 아파트의 대출을 최대한으로 땡겨야하는데

대출을 받기 위해 뭘 그리 맞추어내야하는 조건들이 많은지 어렵기만 하다.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있어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은행 문을 두드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대출 할 때 만큼은 직장인이 최고 인 것 같다.

대출이 필요없을 정도로 확 잘 버는 것이 아닌

애매한 매출과 소득의 자영업자는 대출 심사에 정말 별로다.


그래서 전세가 안되면 매매라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엄마께 말씀드렸다.

엄마는 너 편할 데로 하라 그러시면서도 당신 평생 처음 가진 집이니 많이 아쉬워하셨다.


"이제 그 돈으로는 그 집 못살 건데."


엄마의 서운한 목소리를 알아차리니 참... 조금 편해져볼까 했던... 내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만약 매매에 성공할 경우

엄마 명의의 집에 들어간 내 돈을 대출로 땡겨 쓴 만큼은 제하고 받을 수 있다.

매입가보다 그래도 매도가가 더 높으니,

그간 월세처럼 내가 부담해온 대출 원리금에 대한 나의 공을 얹어

엄마에게 돈을 좀 떼어달라 비벼볼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 내가 가진 빛 중에서 일부는 끌 수 있을테니

입주로 인해 대출이 늘어나더라더도 숨은 쉬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내 못된 심보가 문제인건지, 아니면 부동산침체기인 지금의 시기가 문제인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하다 아래로 뚝 하고 떨어진 지금 시세는 메리트가 없다.


서울이 아닌 경기도 서쪽 끝, 집값이 안 오르기로 유명한 동네이다보니

추락의 끝이 지하가 아닌 것에 무조건 감사해야할 수준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굳이 내가 엄마를 부추겨 매매를 진행하고

돈을 좀 주십사 할 만한 여유가 그다지 없다.


이 집을 파는 건 날 위한 것도 엄마를 위한 것도 아니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사는 곳 주위에서 분양한다는 아파트만 보더라도

이제는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가 정말 장난이 아니게 높다.


엄마가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집을 억 소리가 나는 프리미엄을 얹은 매입가와 비교해도

신규 분양 아파트 가격이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오른 아파트 가격이 심하다 싶으면서도 솔직히 여러가지 상황 상 오르는 이유에 대해 수긍은 간다.


오른 땅값을 대고, 건물을 올리는 동안 사용되는 금융비용이 고금리로 인해 몇 배가 되었다.

또, 돌 하나 시멘트하나 일꾼들의 일당, 하다 못해 함바집의 밥 한끼 가격도 모두 다 올랐다.

세상의 물가가 고공행진 중이니 아파트 가격도 자연히 오를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신규 아파트를 짓고

누군가는 거기에 와서 살며 채워진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10년정도 상업이긴하지만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남편 덕분에

그동안 공정별 반장님들의 일당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건설과 분명 차이는 있는 액수지만 일급의 상승폭은 같은 기조이다.


코로나 이후 원자재를 채굴하는 인원이 대폭 감소하여 자재값이 올랐단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른 자재값은 즉각  소매가에 반영되어 몇 차례에 걸쳐 훅훅 하고 뛰어왔다.

거래처에서도 물건 떼오는 값이 계속 오른다며 그들의 사정을 말한다.

차별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니 정도의 차이일 뿐,

자재비 상승과 인건비 상승 모두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당장 우리만해도 부담해야할 주차비도 올랐고, 식대도 올랐다.

못 하나 실리콘 하나 반코팅장갑 하나 사포 한 장을 사더라도 이전에 비해 금액이 많이도 올랐다.

그래서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체도 공과 잡비를 5%로 잡던 것을

이제는 상황에 따라 7~10%까지 올려 잡아야지만 적자가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그러하다.






"집 못 팔겠다."


나는 이 집을 팔아서 나온 돈으로 지금 가진 빚의 일부를 끌 생각이었다.

그걸 끈다고해서 또 다른 빚이 생기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어차피 또 빚을 내야된다면 굳이 엄마의 집을 팔아 받은 돈으로 지금의 내 빚을 끌 이유가 없다.


엄마 마음이라도 편하시게 그냥 전세 돌리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집값 상승을 기다리는 게 낫지 싶다.


"엄마도 지금 돈 벌어봐야 쓰기 바쁘지 못 모은다. 집이 저금해주는 거다.

내가 엄마 노후 책임질 것도 아니고. 이 집이 해결해주겠지.

그니까 내 사정 급하다고 이 집 팔면 안되겠다."


집값 상승을 바라며 내가 엄마 핑계를 대어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자 내 말에 동조하며 남편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건 그렇지. 장모님 말씀처럼 이제 이 돈으로 이만한 집 못 사지.

근데 나는 네가 매달 너무 힘들어하니까."


"나 안 힘들게 오빠가 많이 벌어와."


"나도 힘들다. 이젠 체력이 안된다. 나 낼 모레 반백살이다."


이렇게 엄살부터 떠는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바랄까.

남자가 호기(豪氣)도 없고 용맹도 야망도 없다.

하이고.... 이런 너를 내가 믿고 살았구나.


"암만 힘들어도 한창 애들 키울 때 까진 너나 나나 열심히 벌어야지.

지금부터 앞으로 딱 10년이 우리 인생에서 제일 많이 벌고 제일 많이 쓸 때 일텐데.

무튼 우리 껀 우리가 해결하자, 나는 엄마집 팔자고 못하겠다. 더는."


"그래. 여유되면 안 파는 게 맞지."


"여유가 되서가 아니라!!!! 팔면 안되니까 아직은 못팔겠다고!"


"알았다고. 왜 화를 내고 그래."


답답한 내 마음이 감정을 실어 꽥 하고 소리를 지른 탓에 남편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40대 초반의 나의 생애주기를 보면 첫째와 둘째가 중고등을 진학하고 대학까지 마칠 동안이

나나 남편이 가장 열심히 벌고 써야 할 때다.

그게 아마 10년쯤 될 것이다.- 대학은 본인들 선택사항이니 강요하진 않을 생각이다.


가진 것도 없이 시작해 애를 셋이나 낳았으니

돈을 벌어서 모을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없다.

지금 벌려둔 것을 수습은 커녕 유지하는 데만도 우리가 버는 돈의 반 이상이 나가고 있다.


(대박이 터지고 로또에 당첨될 불확실성을 믿고 살기에는

YOLO가 될 수 없는 나는 극현실주의자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어봐도 집은 파는 게 아닌 것 같다.

다시는 예전 가격으로 집을 살 수 없을테니까.


내 집이 아님에도 엄마집을 내 집 삼아 애도 키우며 살고 영업장으로도 쓴다.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매달 몸빵하며 버티기가 진짜 너무 힘든 건 사실이다.


"대책없이 벌려온 일들을 이제는 수습하자"란 핑계로 그 힘든 몸빵을 그만하려고 했는데,

청약재당첨 제한이 10년이나 되는 나의 경우

다시 이만한 집을 살 방법이나 돈이 없어서라도 엄마 집도 안팔아야겠다 싶다.


집값이 오를 땐 올라서 좋기도 하고 또 좀 무섭기도 했는데,

집값이 내리니까 내린 건 더 무섭고 싫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하면 투기라더니 딱 그 심보가 된 듯 하다.


못돼 먹은 마음인 걸 알지만 열심히 살다가 얼마 없는 것마저 남편놈 때문에 다 잃고

빈털털이가 되어본 내가 이제 내 집을 한 채 가지느냐 못가지느냐 되니

정말 솔직히 튀어나오는 욕심이자 내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진심이 그러하다.


집은 파는 게 아니다, 집은 사고 버티며 가지고 있는 거다.

우리가 두채 세채를 지니며 투기를 하는 것도 아니니 한 채는 무조건 유지해야 할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에게도 그러하다.


그런 의미로다 빨리 전세계약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가지 않는 전세때문에 집 두채의 원리금을 부담하며 버틸 생각을 하니 심장이 폭주할 듯 뛰어댄다.


미칠 것 같은 이 불안함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라도 제발,

전세 그마저도 안된다면 월세가 빨리 빠지면 좋겠다.


나의 부채는 늘기만 하여 몸빵과 존버는 제로 베이스로 리셋되어

주택담보대출을 갚느라 내 등골은 나날이 휘겠지만

제발 마음 편히 엄마 집이 아닌 내 집에 가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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