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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Nov 18. 2023

우리는 사랑일까

이혼 한 그와의 재혼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아............. 진짜... 심장병 걸릴 뻔 했다. 으흐흑"


몇 주 동안 내내 나를 옥죄던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아파트 잔금 대출이 실행되었단 문자를 받고 눈물이 주륵 흘러버렸다.


가슴을 졸이며 조마조마 두근두근 하는 심장을 겪으며

심장병에라도 걸린 듯한 고통마저 느꼈던 기다림이었다.


대출 조건에 맞추기 위하여 온갖 머리를 다 쥐어짜냈다.

그리고 결국엔 해냈다!

제 1금융권에서, 최대한의 대출 한도로, 부수 거래 없이, 높지 않은 이율로 대출이 실행되었다.


"아........ 진짜............. 그래도 은행은 나를 안 버렸네.

아무도 안도와주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이렇게 되게 해주네."


대출 문자를 받고 감격에 겨워 우는 나를 향해 그가 손을 뻗어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했어. 작은 고비 또 하나 넘었네. 작은 고비 자꾸 넘다보면 큰 고비도 잘 넘기지."


울다 말고 [큰 고비]란 그의 말에 내 눈에 위로 치솟았다.


"뭐?! 앞으로 이 보다 더한 고생을 또 시키려고?! 또 무슨 고비?! 큰 고비!?"


고비란 말을 고생으로 생각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그가 내게 말했다.


"큰 산에 오르려면 올라가는게 힘들지,

근데 힘든만큼 더 높은 정상에 서잖아!

더 안 올라가고 여기서 만족할 거야?"


그에게 고비는 고생이 아닌 성공이나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이렇게나 나와 다른 그이지만,

그는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나의 승부욕을 또 이렇게 자극한다.

그는 이렇게 나를 멈추지 않고 달리게 하는 법을 잘 알고 참 잘 이용해 먹는다.



"올라가야지.

지하에서 시작하고 바닥 찍고 올라가는 중인데.

벌써 여기서 끝이면 안되지.

내 빚이 얼만데! 빚도 자산인데 더 늘리고 키우고 갚아야지!"







언젠가 내가 [서울 아파트 분양권]을 가져오면 재혼해주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다 팔아버려서 이젠 가느다란 실가락지 하나 남지 않은 내 금을 그가 보상이라고 사주겠다던 금괴도 금바도 필요 없다 했다.


서울오빠랬으면서!

너 만나서 한 고생 나는 금이 아닌 서울 아파트로 보상받아야겠했다.

그런 의미로 서울 새 아파트 분양권을 가져오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 청약 당첨되어도 대출이 안될 건데?"


청약 통장도 쓸수 없는 처지에 청약 당첨이라니, 실현가능성조차 불투명한 아직 멀고 먼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의 으름장이 순도 100%의 진심임을  그는 마치 당장 당첨이라도 된 듯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가 분양권을 가져오면 공동명의든 내 명의든 명의변경을 하고, 아파트 값만큼은 내가 돈도 내고 내 명의로 대출도 하겠다고 했다.


"아아.... 너는 다 생각이 있구나."


그의 대답이 싫지 않은 것은 그래도 나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주지 않겠다는 말이 없어서다.


 껀 다 내 껀데, 그의 것도 당연히 내 꺼라 생각하는 나는야 놀부심보이다.


이혼한 전남편이라도 동거남이기도 하고 아직은 사랑이 이다지도 넘쳐 그와 관련된 것 만큼은 그 무엇도 양보하기 싫고 당연스레 욕심내고 싶다.




그의 말 처럼, 망해버린 사업으로 못준 돈만 4억에다

매 순간 이자까지 불어나고 있는 그는 채무를 불이행한 신용불량자이다.


그래서 청약은 커녕 제 이름으로 뭐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사람을 붙들고 서울 아파트 분양권을 논하고 있으니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남편이자 동거남인 그에게 나는 목표를 던져 주었다.


넘어진 그가 반드시 재기를 해야하는 이유, 망한 그가 반드시 성공해야하는 이유,

우리가 목동 빌라에서 올려다보며 언젠간 저기 살고싶어 했던,

그의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진한 축배가 될 뻔도 했던, 서울 아파트를.


하지만 그 혼자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서울 새 아파트]는 우리의 몸빵과 존버와 열심의 최종 목표이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갈 즘엔 다시 서울로 돌아가자. 하며.


경기도민이 된지가 서울시민이었던 기간보다 더 길다.

서울 새 아파트의 가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높은 고지를 향한 우리의 도전이 계속 되다보면

골에 다 다르지 않더라도 근처에는 가 있지 않을까?


물론 그의 회생이나 파산이 전제조건이기 떄문에 불가능 할 지도 모른다.

반백살에 가까운 그가 1인 사업체로 그만큼을 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가 함께 세운 공동 목표는 [서울 새아파트에서 재혼생활 시작하기]이다.


그 정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기울이는 노력은

딱 한번이라도 우리 부부를 찢어지게 만든 그의 잘못을 만회하는 데 충분한 조건이 될 것이니까.


내가 내민 어려운 조건에도 재혼하기 어렵다며

그가 도망가지 않는 것에서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파트가 당첨되면 나한테 준다는 그 말에

그가 여전히 나를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젠가 만들어 낼 그 날을 위해 그가 열심히 살아주는 것에서

그의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 내가 포함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목표로 하는 그의 새 출발에 내가 있음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재혼을 꿈꾸며 이혼한 전남편과 동거중 인 나.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얼까.

전쟁통 같던 지난 세월을 함께한 전우라 하기에 우리의 감정은 너무 빨갛고,

아이를 함께 키우는 육아동지라기에도 우리의 감정은 너무 빨갛다.


이제는 의심하지 않으련다.

적어도 우리는 사랑이다.


이혼을 하고도 재혼을 꿈꾸며 놓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일지라도

우리 관계는 지극히 에로스적인 빨간 맛 사랑이다.


이 의심만은 이제 거두어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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