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가장 먼저 한 일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2
이혼을 하면서 아이 셋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은 모두 엄마인 내가 갖기로 했다. 우리 이혼의 귀책사유를 남편이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는 유책 배우자였고,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이혼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이혼을 결정한 이상 과거와 과정은 더이상 중요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10년을 잘 살던 부부가 그의 잘못으로 이혼이란 걸 하게되었으니 그는 나의 뜻에 모든 것을 따라줄 수 밖에 없었다.
협의이혼신청서를 작성 할 당시 남편은 아이 한 명당 매달 50만원, 합해서 월 150만원을 내게 양육비로 주기로 했다. 그의 상황이 정리 될 때 까지 양육비 지급을 유예한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법원의 누군가가 그걸 보고 몇 마디 말을 얹었다. 더는 복잡해 지는 게 싫었던 우리는 그냥 그 문구에 줄을 긋고 도장을 찍는 것으로 합의 함으로써 양육비 지급 유예를 무효 처리시켰다.
그러나 양육비는 커녕 전남편이 된 그는 나와 아이들이 살고있는 집에 얹혀살고있다. 나는 무임승차자인 전남편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채 동거하는 이혼녀이다.
.
.
.
.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모두 함께 나누겠냐는 주례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정말 우렁차게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저지른 하나의 잘못에 너무한다 싶을만큼 단호히 남편을 버렸다. 그의 잘못을 감싸고 품기는 커녕 추락하는 그의 인생으로부터 나는 멀찍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택했다.
이렇든 내 의지로 그와 내 인생은 분리되었지만 아이 셋의 아버지를 빼앗을 권리가 내겐 없었다.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하는 선택권 따위를 아이들에게 주지도 않았다. 점 하나 차이로 님과 남으로 우리의 관계는 변할 수는 있을지라도, 아이들과 전남편, 피로 이어진 이 천륜은 내 의지로 끊거나 꺾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 그래서 비겁하게도 나는 아이들을 핑계로 그와 계속해서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
우리의 이혼 소식이 알음 알음 퍼져나갔고 여전히 함께인 우리를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이혼을 했음에도 우리가 동거인으로 같이 사는 이유를 나는 흔한 핑계와 뻔한 예상대로 아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아직, 아니 여전히 우리가 이혼한 것을 모른다. 속이는 것이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조금 더 오래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쟁이 엄마아빠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알게 되면 그 핑계로 그가 정말로 이 집에서, 내게서 떠나 자유를 찾아갈까봐 두려운 이혼녀, 그게 바로 나이다. (사랑을 잃는 것보다 책임 질 처자식 없이 그가 홀가분해지는 게 더 싫은 것이 사실은 진짜 내 진심이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원망도 있기에, 죄 지은 놈이 편한 꼴은 못보겠다!)
.
.
.
.
.
이혼 신고 완료 후 전남편은 주소지를 본가로 옮겨 갔다. 그리고 이혼녀가 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가 가입한 보험사의 고객센터를 함께 간 것이다. 그의 보험료 인출 계좌를 내 계좌로 바꾸고 전남편이 된 그의 보험 수익자부터 변경했다.
법정상속인이라는 다섯 글자 대신 아이 셋. 나름의 법칙을 세우고 이유를 대어 3:3:4로 비례배분해서 보험금을 나누어두려 했다. 하지만 보험회사의 내규 상 지정 상속인은 한 명만 가능했다. 배분을 어찌하든 셋이 될 수는 없었다. 두 번의 고민도 없이 나는 가장 어린 막내이자 하나뿐인 아들의 이름을 전남편의 보험금 지정상속인에 단독으로 올렸다. 혹시라도 그가 죽으면 그의 목숨값이 될 이 보험금을 보험료를 내는 내가 아닌, 그가 세상에 남긴 그의 아들이 가져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차피 아들 돈이면 결국 네 돈이 될 거잖아."
보험수익자 변경을 하고 나오며 전남편이 말했다.
"왜? 그래서 억울해? 근데 알다시피 당신 보험 약해서 당신 목숨 개 값이니까, 죽을 생각 말고 끝까지 살아!
행여라도 갑자기 죽어서 내 새끼들 눈에 눈물 뺄 생각 하지 말고. 당신 죽으면 나는 그 돈으로 새로 시집가면 되니까 나만 좋은 일 하는 거지 뭐."
사실과 협박이 뒤섞인 내 마지막 말에 전남편은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차로 향하던 발걸음이 순간 딱 멈춘 걸 보니.
"내가 그 꼴 보기 싫어서라도 끝까지 산다!"
"그래, 우리 끝까지 잘 살다 한 방에 딸깍 죽자. 나중에 늙어서 괜히 앓고 질질 끌면서 애들한테 짐이나 되지 말고."
이혼남 이혼녀가 된 우리는 더이상 부부라는 명칭에 기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없다. 우리가 아프게 되면 자연스레 간호와 간병은 사랑하는우리 아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늙어서든 젊어서든 행여라도 아이 셋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 부모가 그러하듯 나의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어째 자신이 없다.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가족력이 있는 질병이 새삼 마음에 걸렸다.
언제나 생각으로는 최악을 고려해보는 나는, 나나 전남편이 병원에도 같이 갈 배우자 없이 홀로 늙었을때를 떠올려본다. 지금의 나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본인의 삶에 바쁜 아이들에게 연락을 하며 신세를 지며 살아가게 될까 덜컥 겁이 났다. 내 부모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그런 신세를 지게 되려니 벌써부터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곁에서 돌봐줄 배우자가 없는 이혼남 이혼녀는 더욱 건강해야해야만 한다"
의지를 다지는 내게 전남편이 말했다.
"너한텐 오빠가 있잖아!"
누구 때문에 내가 보호자를 잃었는데!!! 이혼하여 남이 된, 못미더운 오빠 같으니라고.
.
.
.
.
.
전남편의 보험수익자지정과는 별개로 나는 나대로 내 보험을 재정비 했다.
이제부터 나는 아이 셋을 혼자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리고 지금은 병이 없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가족력으로 나타날 질병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다.
일단 내가 갑작스럽게 상해로 사망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보험의 한도치까지 끌어올려두었다.(상해사망은 보험료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또 혹시라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죽으면 나의 급여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10년간 매달 생활비가 나오는 보험상품에도 가입했다. (순수보장형에 만기 시 납입 보험료가 소멸되는 것이라 이 보험 역시 비싸지 않은 상품이다)
마지막으로 보장을 확대했다. 부족했던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보장을 추가하고 재발해도 또 진단금을 받는 암보험과 표적항암처럼 비싸지만 새로운 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신규 암보험에도 추가 가입을 했다.
나는 이혼으로 살림과 육아와 일까지 혼자 해내야 하는 가장이자 죽어서도 살림에 보탬이 돼야만 하는 가장이 다. 원더우먼. 슈퍼우먼처럼 모든 것을 잘 해내야하는 나는 애셋 딸린 이혼녀 가장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믿고 의지할 곳은 나의 부모, 형제도 전남편도 아닌 보험 뿐이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이런 내 방식도 사랑이라 믿고싶다.
내 보험을 재정비하고 난 후 전남편에게 말했다.
"당신한텐 미안하지만 내 보험금의 수익자는 법정상속인인 우리 아이들이야. 혹시나 아이들이 어릴 때 보험금을 받게 되면 당신이 아니고, 내 남동생이 아이들의 대리인이 되어 줄 거야. 적어도 걘 돈 욕심 부리면서 조카들 나 몰라라 할 놈은 아니니까. 상황이 이래서지 당신을 못 믿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닌 거 알지?"
"그래, 그렇게 해야지!"
나 같으면 한참 서운할 만도 한데 전남편은 흔쾌히 내 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주었다.
"근데 난, 네 보험금 탈 일이 절대 없었으면 좋겠어. 아프지도 말고 조금만 아파도 미리 미리 병원 가."
덧붙인 전남편의 말에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또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의 진심에 조금은 안도했다. 보험정비가 마치 유서를 미리 써보는 것처럼 멘탈이 조금은 격하게 흔들렸었다. 그 탓에 내 마음이 약해져있던 차였다.
전남편의 말을 곱씹어 보건대, 우리가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는 내게 미리 미리 병원을 가자고 했을 것이다. 이혼을 통해 무엇이든 늘 함께하던 모든 행위의 주체가 우리에서 나, 그리고 너로 나뉘어 있었다.
"그래야지... 애들 다 클 때까진 절대 아프지도 말아야지!"
울컥한 마음을 진정하느라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나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남편이 말했다.
"오빠가 다 미안하다."
이렇게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이혼남 이혼녀로서 한 발자욱을 또 떼었다. 하지만 이혼과 재혼의 사이 즈음이라 믿고싶다면 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