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재혼 할까?
이혼과 재혼사이의 우리 4
"아들~ 엄마 안경 좀 찾아줘!"
"아들, 엄마 안경 어디 있어?"
"아들! 엄마 안경 못 봤어?"
아침마다 내 입에서 꼭 나오는 말이다.
(말 잘 듣는 유아기 시기에만 안경 찾기를 시킬 수 있기에 초등학생인 딸들은 이미 거쳐간 과정을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이 현재 겪고 있는 중이다.)
"엄마 안경 여기 있잖아!"
"엄마는 맨날 나랑 아빠한테 안경 찾아달라 해!"
"엄마, 안경 내가 찾아 줄게! 아빠도 빨리 엄마 안경 찾아봐!"
우리 아들은 보물 찾기를 하듯 매일 아침 엄마안경 찾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까이에서 발견하는 날엔 나에게 '여기 있는 것도 못 찾아?' 하는 핀잔을 주고, 멀리 있거나 구석에서 힘들게 찾은 날이 면 "예~! 예~! 내가 엄마 안경 찾았다!" 하고 기뻐하며 내게 승리의 전리품인 안경을 가져다준다.
나는 기상해서 눈을 뜨는 게 아니라, 안경을 써야 눈이 떠지는 고도근시 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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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신체 계측을 하고 시력 정밀 검사를 하라고 집으로 알린 건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엄마를 따라 안과를 갔다가 안경점엘 다시 갔던 그 날, 안경을 처음 썼던 것 같다. 무엇 때문인지 원인은 모르겠으나 자라는 동안 내 눈은 계속해서 나빠졌고, 성장이 멈춘 후 쭈욱 마이너스 7.5 디옵터의 나쁜 시력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게 더 많다 보니 친정 아버지께서 정말 진지하게 '시각 장애인 등록해야 될 정도는 아니지?' 하고 물은 적도 있다.
"이 건 보여? 이 정도는 보여? 이 것도 안보여?"
맨 눈 앞에 손가락이나 물건들을 가지고와 묻곤 하시던 친정엄마는 내가 처음 안경을 끼던 날, '눈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하시며 진짜로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엄마는 지금도 안경을 끼지 않으실 정도로 시력이 좋으시다. 그런 엄마는 태몽에서 만나 데리고 온 호랑이가 눈을 꼬옥 감고 있더니, 눈이 이렇게 나쁘려고 그랬나보다 하시며 늘 내 눈을 안타까워하셨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청소년기에도 나나 동생방의 청소가 좀 덜 된 곳이 있으면, 내 눈이 잘 안보이는 탓이라며 나는 관대히 넘어가주셨으나 동생에겐 깨끗이 치우라 시키셨다. 이렇게 난 고도근시라 불편하고도 편하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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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고 40대가 되면서부터 친구들은 서서히 노안이 오기 시작해 가까운 것들이 흐릿흐릿 해지고 있다했다. 그런데 원래부터 눈이 나빴던 나는 아직 노안이 오지 않은 건지 노안을 느낄 수 없는 건지 변화가 없다.
평소에도 안경을 껴야 겨우 세상이 또렷이 보이고, 안경을 벗으면 거의 모든 것들이 뿌옇고 번져있다. 한마디로 나는 안경을 벗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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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안경을 쓴 탓에 내 얼굴형은 안경형이다.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테다. 광대뼈가 묘하게 안경 다리에 맞춰진 그 얼굴형을.) 연애를 할 때에 내 남자친구는 얼굴형 때문에 내가 안경을 쓴다는 것만 알았지, 콘택트렌즈를 끼고 다녀서 안경 쓴 내 얼굴은 몰랐다. 안경낀 모습을 내가 거의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풀 메이크업을 사수한다는데 나는 렌즈를 끼고 자곤 할 정도로 안경 없는 얼굴을 사수했었다.
결혼을 하고 이젠 빼도 박도 못할 사이가 되고 나서야 남편에게 안경 낀 내 모습을 편하게 보여주었다. 내 안경은 세 번을 압축하고 깎았음에도 보통의 안경보다 훨씬 두껍고 무겁다. 안경 낀 나를 처음 봤을때 남편은 작아진 눈을 가진 낯선 나를 보고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은 내 안경을 돌돌이 안경, 뱅뱅이 안경이라며 놀리곤 한다.
안경을 낀 얼굴과 안 낀 얼굴의 가장 큰 차이는 눈 크기이다. 눈 크기 하나로 내가 나인줄 몰라본 사람들이 몇 있었다. 안경하나로 얼굴이 변신을 하냐는 말에서 시작된, 내 고등학교 시절 별명은 변신의 변을 쓰는 '변녀'이다. 자칫 변태로 오해받을 수 있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로 내게 나쁜 시력은 콤플렉스이자 여군사관 복무를 포기하게 한 약점이다.
그런 내 눈에 대한 놀림을 받으면 아무리 상대가 사랑하는 남편이라해도 대번에 눈꼬리가 올라간다. 장난꾸러기 모드일 때의 남편은 그렇게 툭 한마디 던져서 날 놀려놓고, 자신의 말 한마디에 포르르 포르르 반응하는 나를 즐긴다. 그러나 약이 바짝 오른 나를 보는 그의 눈빛에서만큼은 애정이 흘러넘쳐, 나는 오래 화를 낼 수가 없다. 안겨오는 나를 받아내며 그는 항상 마무리로 내 기분을 풀어주는 말을 덧붙여 주곤 했었다.
'그래도 오빠 눈엔 귀여워, 닥터 슬럼프 아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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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근시와 난시가 섞여있기도 하고 양 쪽의 도수도 달라 렌즈를 맞춤으로 제작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시력교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안경은 1박 2일 맞춤으로 제작을 하고, 소프트렌즈 같은 경우에는 적당히 양쪽 시력의 중간값으로 구매를 한다. 렌즈를 끼고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교정시력이 0.6~0.7이 나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살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보이는 게 없는 눈 때문에 안경은 나와 거의 한 몸이다. 샤워를 할 때에도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나면 안경을 찾아 쓴다.
어느 날, 전남편이자 현 동거인인 그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샤워부스에 내가 들어있음에도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왔다.
"찬바람 들어와서 추워! 왜 여기 와서 싸! 거실 화장실 가지!"
그와 함께 들어온 화장실 밖 차가운 공기가 시려서 샤워부스 문을 냉큼 닫으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근데 너는 샤워를 할 때에도 안경을 끼고 하네?!"
대단한 발견을 한 듯, 아니면 신기하고 진귀한 구경거리라도 본 듯 정말 낭창한 목소리로 그가 감탄했다. 샤워가 마무리 단계였다면 튀어나가 그를 한 대 콕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하다못해 물이라도 뿌려버렸다면 이 짜증이 풀릴까?
"안보여서 그런다! 왜!"
"아니 신기해서. 그렇게나 안보여?"
라식이나 라섹은 불가능하고 렌즈삽입술만 가능한 내 눈.
결혼 전에 공부를 더 하고 눈 수술도 하려고 모았던 돈으로 나는 시집이란 걸 갔다. 이렇게 이혼녀가 될 줄도 모르고말이다.
그리고 결혼 후부터는 늘 사는 게 팍팍해서 나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 뒷전이 되었다. 그래서 나 하나 편하고 좋자고 비싼 시력교정술을 받을 엄두를 감히 내지 못하고 지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안경 없이 보는 또렷한 세상]은 내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자 쟁취의 대상이다.
"눈에 뵈는 게 없으니 당신 만나서 결혼까지 했지!"
날 선 내 대답에 용변을 마친 그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엔 이혼했잖아~"
돌돌이 안경이자 뺑뺑이 안경인 내 안경. 이 안경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
우스개 소리로 되받는 그는 참 밉상이다.
그 역시 결혼 전에는 안경을 끼긴 했으나 시력이 꽤 괜찮았던 편이었다.
콘택트렌즈로 끼지 않았기에 검사나 해보자며 갔던 안과에서 당일 수술을 시켜주었다. 최소한으로 각막을 비싼 레이저로 절개해서 시력교정을 하느라 남들보다 돈도 더 주었다. 그리고 눈도 못뜨는 그를 부축해 집으로 데리고와 편히 쉬게하고 수발을 다 들어주었었다. 이렇게 내 덕에 안경으로부터 독립 한 그는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 놈이다!!!
"이혼 한 김에 재혼은 말아야겠네. 남의 약점 갖고 놀리기 나하고 말이야.
우리 남이잖아? 남이니까 내가 싫어하는 그런 말도 가능한 거지? 그렇지?"
양치 중이 아닌 게 어디야? 세안과 머리 감기가 끝나 몸을 씻고 있던 중인 게 다행이다 싶었다. 적어도 이렇게 입은 알차게 쓸 수 있으니까.
밖으로 나가려 문고리를 잡고 선 그가 다시 말했다.
"오빠가 돈 벌어서 꼭 너 눈 수술 시켜줄게. 그리고 우리 재혼하자!"
남들은 서로의 발전될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지만 우리는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꿈을 꾼다. 이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매번 재혼을 핑계로 기약의 말을 하는 그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언젠가 누구처럼 사랑스러운 이를 보며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말했다.
"근데 수술하고 안경까지 벗었는데, 꼭 오빠랑 재혼해야 돼? 딴 놈이랑 하면 안 돼?"
문을 닫고 나가기 직전, 그가 한 마디를 남겼다.
"그냥 계속 안경 끼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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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벗겨주면 재혼해 줄게."
하며 이제라도 매달리고 싶다. 비싸서 못하던 수술, 동거남이 시켜준다는데 얼마나 고마운 제안인가!
재혼이야 눈을 뜨고 나서 결정해도 될 일인데!
사랑해서 결혼도 하고 사랑해서 이혼도 한 나는 매일 매일 전남편과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