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국 별 수 없었다.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6

by 딱좋은나

이혼 후 동거를 하고 있는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내것 네것을 따지고 있었다.


"자꾸 그럴 거면 내 집에서 나가."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튀어나온 말이 처음엔 놀라웠지만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뭐든지 처음만 어렵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이혼남이 된 후 결정적인 순간 마다 한발짝씩 중요한 순간마다 내게서 물러서던 그를 알아차리는 것이 담담해져 간다. 결국에는 내 인생이지, 네 인생이겠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가 내게서 멀어진 만큼 나도 그에게 가는 걸음을 멈추고 가끔은 뒷걸음을 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님이 아닌 남이란 사실을 다행이라 여긴 적도 있으니까.


그런 걸 보면 이혼 후 그의 마음이나 그의 태도만 변한 것은 아닌 듯 해 더는 억울해 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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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과는 잘 싸우지 않는다. 언제나 퍼붓는건 내 쪽이고 소나기를 맞듯 내 폭언을 견디는 것은 전남편이다.

이번에도 또 별 거 아닌 걸로 짜증과 화가 나서 말했다.


"이럴 거면 나가라고!"


집에서 나가라는 게 아니라 사무실로 출근 하라는 뜻이었는데, 그간 뱉었던 말이 있다보니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보다.


"여기 엄마 집 아닌데. 부산 할머니 집인데!"


내 말에 아빠를 꼭 껴안고 선 우리집 둘째가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는 아빠와 앙숙이지만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아있다. 결정적인 타이밍에 그를 꽉 잡고 있는 걸 보니 아빠 딸이 맞구나 싶어 피식 웃음까지 나려했다.


"야, 여기 우리 엄마 집이거든!"


사실 나는 이혼을 결정한 후 친정 엄마의 집으로 이사를 했고, 여전히 살고 있다. 내 이혼을 위해 엄마는 아파트를 매입하셨다.

그를 향해 무임승차자라고 열을 내고 화를 내던 내가, 나이 마흔이 넘도록 부모 등골을 빼먹고 있는 진정한 무임승차자이다.


"우리 장모님 집이거든."


내 대답이 어이 없다는 듯 전남편이 웃으며 메롱까지 덧붙혔다. 그러면서 자신을 지켜준 둘째를 한 팔로 꼬옥 안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전남편의 모습이 또 예뻐보여 속으론 화가 조금 누그러 진다.


"이 엄마, 어이 없네 진짜! 나가고 싶은 사람이 나가야지! 왜 아빠를 나가라고 해!"


"우리 O형에 X띠 딸, 잘한다!"


딸이 따지듯 아빠 편을 들며 말하고, 혈액형과 띠가 같은 아빠가 추임새를 넣는다.


둘의 하는 짓은 참 얄밉지만, 엄마인 내 눈에는 사랑스러운 부녀의 모습이다.


세 사람이 말싸움을 하는 것 처럼 소란스러워지자 첫째와 셋째가 함께 쪼르르 왔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 중 하나는 싸움 구경인 걸 얘들도 본능적으로 아는 걸 보면 신기하다.


슥 하고 둘러보니 아이들이 코 앞에서 초롱 초롱한 눈망울로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이쯤에서 내가 기권을 해야했다. 더는 반박의 말을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아직 우리가 여전히 부부인줄 알고 있으니까.


아직까지 '이혼'이란 비밀은 유지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순간적인 감정적으로 부모의 이혼을 아이들이 알게 하여서는 안된다.



"후우............. 당신 나중에 두고 보자! 빨리 사무실 가! 꼴도 보기 싫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붙들고 근엄한 목소리를 흉내낸다. 그렇게 내 속뜻을 정확히 꺼내 보인 후 나는 휙하고 뒤돌아 섰다. 안방에 들어와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리자 그가 읽다만 책, 그가 벗어놓은 옷들, 충전 중인 그의 전자담배 등이 보인다. 그가 레일을 바꿔 끼워준 서랍장도 보이고 그가 구피를 키우던 어항도 보인다.


집안 곳곳에 그의 흔적이 덕지 덕지 묻어있다. 그가 없는 이 집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아직은 더 데리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며 그가 나를 위해 해주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음식 쓰레기를 버려준다. 집안 청소를 정말 깨끗이 해준다. 컴퓨터나 프린터를 잘 고쳐준다. 주방 수전도 바꾸어 주었다. 떡볶이도 라면도 잘 만들어 준다. 늘 고기는 전남편이 굽는다.


우리가 부부일 때나 동거인일 때나 변함없이 그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


아직 그는 유용해. 아직 나는 그가 필요해.


이 정도 생각을 하고 나면 보통 내 기분을 풀어주러 그가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눕는다. 진즉 날 따라 들어와 누워야 하는데 어쩐지 오늘은 반응이 늦다.



흐음.......


5분 10분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는다.


이 남자, 이혼 하고 확실히 변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대차게 자리를 비운 자존심에 나가볼 수가 없다.

안방 벽 뒤에 숨어 슬그머니 보니 거실에서 아이들과 텔레비젼을 시청하고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낄낄낄 거리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박수까지 쳐가며 웃는다.


내 기분을 풀어주는 것보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이라니. 내려놓았다 외면할거다 다짐했는데도 서운하다! 그런데 애셋과 티비를 같이 보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오락가락 내 기분을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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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혼을 하고 3년째 전남편과 동거를 하고 있다.

이혼 후 함께 살아도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순간 순간 같은 듯 바뀌었다.



'서류상의 이혼', '위장 이혼'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고작 종이 한장에 그여지는 잉크자국 하나에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바뀌었다. 한때 지상 최고의 사랑꾼인 내 사랑이 모자라거나 변한 탓만은 아니다. 겪어봐서 단언하건데 법률로 구속되고 묶이는 혼인관계가 생각보다 부부 사이에서는 영향이 크다.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그 때문에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한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은 그를 향한 마음이 남아서일테다.

남은 마음이 미련이 아닌 아직 다 못 펼쳐낸 사랑이기에 나는 그와의 재혼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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