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심이 보이는 거리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5

by 딱좋은나

현재 전남편의 휴대전화에 나는 ○○ ***대표님 이라고 되어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업체명 이름 직급 순이다.

한때는 내가 전화를 걸면 수신 창에 빨간색 하트 하나가 동동 떴는데, 이젠 호칭에서 부터 사랑과 관련된 그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나의 휴대 전화에도 마찬가지이다. 직급이나 업체명 따위는 없이 오로지 그의 이름 석자만 있다. 하트도 없고 물결 무늬도 느낌표도 없다. 한때는 내 모든 근심 걱정을 한 방에 없애주는 나만의 [만병통치약]이었는데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딱딱해진 호칭. 이혼 후 자연스레 바뀌게 된 우리의 저장명.

이혼 전만 하더라도 그의 핸드폰에 적힌 내 저장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주 난리 난리 쌩난리를 치곤 했는데 이젠 나도 서운하거나 섭섭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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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혼 이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 있으나, 어쩐지 우리 사이는 한 팔 정도 만큼 멀어진 것 같다. 당기면 그대로 딸려올 수 있을만큼 멀어진 그 사이에서 우리는 안도하고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낀다. 눈 앞에 아주 가까운 것은 보기가 어렵듯, 조금 멀어지니 그가 그로서 보인다.


내 남편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빠도 아닌 그의 있는 그대로가.





내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영화미술 일을 하였다. 내 고향 부산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영화를 찍으러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애를 할 때엔 몰랐으나, 프리랜서로서 작품 마다 계약을 하고 지방이나 해외로 로케를 떠나 집을 자주 비우는 그의 삶은 결혼한 배우자로서 지극히 별로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딱 이 정도 떨어진 거리를 견디거나 즐길 수 있는 내가 아니었기에 그는 영화를 포기하고 나를 선택했다.


술이라도 함께 마시는 날이면 나는 늘 습관처럼 버릇처럼 그에게 미안해한다.


"괜히 나나 애들 때문에 당신 하고싶은 일도 못하게 하고, 당신 앞길 막은 것 같아. 미안해. 내가 미안해."


자신의 경력이나 이력보다 가족과 가정을 선택한 건 그였지만 나는 그것이 자의로만은 아닌 것 같아 미안했다. 그에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 나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미안하다고 할 때 가만히나 있으면 진짜 미안해서라도 내가 더 잘 해줄텐데.

전남편은 영화라면 해 볼 만큼 해 봤고 가 볼 만큼 가 봐서 미련이 없다 했다. 그가 꺼낸 진심이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텐데 꼭 한 마디를 덧붙여서 사달을 냈다.


"그때 버틸 수 있으면 좀 더 버텨봤겠지."


그 말이 영화에 대한 그의 미련 같아서, 정말 내가 그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 것 같아서 나는 자기방어를 핑계삼아 팩트를 날려준다.


"뻥치네! 아무도 당신 안찾아서 영화 일 계속 못한 거잖아. 당신 존심 세워주느라 내가 미안하다 미안하다니까 진짠줄 착각하고 있어!"


라인을 잘못탔든 선택을 잘못했든 결국엔 본인의 결정에 의한 결과였으면서! 일이 들어오지 않던 그 때를 버티지 못하게 한 내 원망 같아서 더더욱 나는 뾰족한 말로 그를 찌르게 된다.


[그는 참 남 탓을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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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녀이자 가장이 된 나는 현재 두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이다. 그리고 전남편은 내 회사의 직원이다. 이혼 전에도 후에도, 우리는 남편이 직장생할을 하던 기간 외에는 지난 10년동안 손발을 맞춰 둘이서 함께 사업을 운영하며 안팎에서 일해왔다.


사업체 둘과 다섯 명이 사는 우리 집에 필요힌 고정지출이 월 천 만원 가까이 된다. 필요한 수준만큼 버는 달이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열심히는 했지만 수익이 그렇게 나지 못하는 달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내 명의로 된 대출로 겨우 버텨낸다. 정말 몸뚱이 하나 열정 하나로 겁 없이 돈 없이 시작한 일들이었고, 이만큼까지 덩치를 키운 것은 순전히 빚의 힘이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멈춘 듯 우리의 일도 가다 서다를 반복해왔고, 매 번 대출을 실행만 하고 있지 갚는 것은 그에 훨씬 못미치고있는 수준이다.


시즌별로 매출의 기복이 심한 일을 전남편이 맡아서 하고 있고, 나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꾸준히 버는 일을 하고 있다. 나와 그의 수익 차가 양극화가 되는 날은 자연히 그에게 돈돈돈 거리며 히스테릭해진다.


"언제 얼마가 나가야 되고, 집 대출이 얼마고 어쩌고 저쩌고!"


원래부터 나는 통장 잔고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눈 앞에서 돈이 보일듯 잡힐듯 할 땐 더 했다. 그렇게 안달복달하며 조바심 많은 내가 떠는 유난에도 늘 별 말이 없던 사람이 어느 순간 바뀌었다.


"네 이름으로 된 네 집이잖아! 네가 알아서 해."


그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지 않았단 걸 안다. 내 성에는 못미치지만 그가 나름 최선을 다 했단 것도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내게 이렇게 얘기해서는 안되었다. 나는 덕분에 슈퍼우먼 코스프레를 하며 육아도 살림도 일도 모두 다 하며 전남편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안고 이고 끌고 가는 중이니까.


그의 말 한마디에 오만정이 똑 하고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사랑할 때 귓가에서 댕댕댕 울리던 종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달그덕 덜그덕 빈 깡통이 내는 요란한 소리만 남았다.


합의 이혼을 하며 얼마 없는 재산은 아이 셋의 양육권과 친권과 함께 모두 내가 가지고 왔다. 유책 배우자로서 그리고 10년의 혼인기간동안 재산증식기여도에 따라 그 역시 인정한 바이다. 그러나 이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같은 집에서 동거를 하고 있고, 우리의 아이 셋을 함께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물질적, 정서적 모든 면에서 여전히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속으로라도 네것 내것을 따지고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니. 내 머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들으니 내 마음이 도래질부터 쳐댔다.


[그는 참 책임감이 없어!]


나는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가?


윗돌 빼서 아래에 괴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로 올리며 나는 매 번 이 공든탑이 무너질까 쓰러질까 불안해한다.

그렇게 매 회 돌아오는 결제일마다 깔딱 고개를 넘듯 숨이 차게 살고 있는 내게 그의 말은 크나 큰 충격이자 상처였다.


그동안 그가 해결해주지 못할 걸 알기 때문에 모든 방법을 모색해왔고 해결해 왔는데, 나는 말도 못하나? 한탄도 하면 안되는 건가?


본인보다 더 열심히 사는 내게 응원과 지지를 줄 수 없다면, 하다 못해 말뿐인 위로라도 건냈어야지. 내 명의로된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하나? 한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사는 본인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방관자이자 무임승차자이고? 그래서 그렇게 뻔뻔하고 당당하게 내게 직면한 이 문제들에서 비켜서있어도 된다는 식인가?


그런 거라면 곤란하다. 적어도 우리가 버릇처럼 말하는 재혼을 하려면,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런 생각조차 하면 안돼지!


변해버린 것이 이혼으로 인한 우리의 관계인건지 아니면 그의 마음이나 생각인건지 모르겠어서 말문이 막혔다. 이혼 후에도 변함없는 사랑이라 한 것은 그저 나의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기분 좋고 분위기 좋을 때만 나오는 잠시동안의 눈속임이었던 걸까?



이혼 후 조금 떨어지자 제대로 보인다, 그의 진심이.

이런 그를 믿고 나 정말 이 사람과의 재혼을 꿈꿔도 되는 걸까?

이렇게 전남편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힌 날이면 이혼과 재혼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이 이혼쪽으로 훅 기운다.


싸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그가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실언이라고 하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하며 나를 안는다. 두툼한 그의 허리에 내 팔을 둘러 작아진 그를 안아주면서도 내 마음은 어쩐지 헛헛하다.


먹으면 입에서 불이 나는 매운 비빔 밀면, 또 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밀면. 마치 너와 내가 있는 이혼과 재혼 사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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